[연재] 할머니의 말 걸기

2022. 7. 4. 11:03기린 Life

03 할머니의 말 걸기

 

“할머니, 할머니가 나온 사진 보고 사람들이 멋있대!”

“더 멋있게 해야지!”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좋다! (박수) 돈 잘 버냐? 너 몇 살이냐?”

“서른 한 살!”

“나이 먹었네! 그래도 신랑 하나는 구했구나."

“남편은 사랑 표현을 잘 해. 잘 들어주고.”

“어디 살아?”

“요 옆 동네.”

“너하고 걔 하고는 회사가 다르냐?”

구체적으로 물으신다.

“달라.”

“같이 일 보려면 같이 있어야지. 남편은 하던 거 하고, 너는 다른 거 하고? 걔는 몇 살이야? 걔 엄마는 몇 살이야?”

연신 딸에게 말을 건네시던 엄마는 나를 쳐다보면서 다시 묻는다.

“쟤네 신랑은 회사 다녀?”

“네.”

 

“너는 옷 장사하려고? 그럼 괜찮네! 너는 언제 결혼 하냐?”

“결혼했어.”

“언제? 그런데 난 왜 몰라?”

할머니의 반복된 질문에 딸이 다른 길로 안내한다.

“나 옷 장사 할 거야, 할머니.”

“그래? 그럼 나도 할 거야!”

이야기가 도돌이표 읽듯, 돌며 또 돌며 이어진다.

 

 

 

 

“할머니는 맞는 말만 해!”

“너 장사할 때 내가 맞는 말만 할게!”

엄마에게 손녀딸이 장사할거라는 말이 엄청 흥분되는 모양이다.

“너는 막내가 와서 좋은 소리하니까 좋으냐? 얼만큼 좋냐?”

손녀와 나누던 둘만의 대화에 나를 끼워주더니, 딸(손녀)에게 다시 물으신다.

“나는 너 장사하는데 뭐 할 거 없어?”

“모델해!”

엄마는 딸이 운영하는 브랜드‘오래’(@orae_official)의 모델이시다.

 

 

 

 

“할머니, 나 장사 잘 할 거 같아?”

“응! 잘 할 거 같아!”

“할머니, 고민 안 돼?”

“고민은 뭐, 너 잘하는 거 아는데 뭐 고민해! 사람들은 벌써 알 거야. 한 가지 한 가지 하는 거 보면 알지!”

요즘 유행어처럼 '추앙'이다. 존재자체를 그대로 응원하신다.

나는 어려워하는 걸 엄마는 가뿐히 하신다.

 

“뭐가 그렇게 많냐? 영수증이야?”

“내 물건을 유명한 사람한테 보내고, 홍보하는 투자야. 20명에게 가방 보내주는 거야.”

“보내줄만 해?”

“한번 해 보는 거야.”

“그게 문제지!”

“사람들이 컴퓨터 보고 사니까 입소문이 나면 좋은거고!”

“나 너한테 가서 할 일이 뭐가 있냐?”

“모델!”

“늙은이가 그렇게 되나?”

“너희 회사가 크냐?”

“큰 회사 다녔어. 7년 다녔는데, 큰 회사에서 일 잘해서 내가 그만 둔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아쉬워 해.”

“네 엄마는? 아쉬워 안하냐?”

“앞으로 바쁘게 생겼네. 장사. 장사니까 바쁘지!”

 

“내 팔이 늙응 늙응 해!”

“할머니. 운동해야겠네! 단단해지게.”

“그건 거꾸로 사는 거지!”

“두고 봐야겠다. 얼마나 잘하나. 우리 재경이가 하는 게 다르단 말이야.”

 

손녀딸과 함께하는 엄마의 저녁은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듯 벅차다. 자신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묻고 또 묻고. 엄마의 머릿속에‘장사’는 기운참인가보다. 바쁘고, 뭔가 기대가 되고.

 

결혼 한지 1년이 되도록, 만날 때 마다 ‘결혼했어? 언제?’ 물으시는 할머니의‘말 걸기’를 노래의 후렴구처럼 익숙하게 들으며, 일상을 나누는 딸과 할머니의 이어지는 대화의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던 나는, 딸이 대견하고,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그래서 벅차다. 고맙다.

 

“모든 나이는 아름답다(Beautiful as you are)”는 '오래'의 브랜드 철학처럼 우리의 삶이 어떤 자리에 있든 그 모든 자리에서 우리 안에 있는 아름다움을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문향

 

‘함께 산다는 것’이 뭘까?

내 삶이 편안할 때 보다는 힘들 때 더 자주 묻게 되는 질문이다.

함께 살아 좋은 것만 취하고 싶은 것이, 최소한 밑지는 장사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 아닐까? 어찌하다보니, 나는 20년 가까운 시간을 친정부모와 우리 부부, 그리고 딸들 3대와 함께 살고 있다. 그 1/3의 시간은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돌봐 주고, 1/3의 시간은 각자 어울려 함께 살고, 1/3의 시간은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살고 있다. ‘부모의 보호자’로 함께 산다는 것,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며 마주치는 애도와 축하, 나의 시간여행이 가져다 준 선물과 기억의 편린들을 나눠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