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같은 말 대잔치

2022. 6. 1. 12:08기린 Life

02 같은 말 대잔치

 

“재윤이는? 재윤아빠는 어디 갔어?”

“통영어머니 보러 갔어요”

“무슨 날인가?”

“어버이날도 가까이 있고, 어머니 생신도 있고 해서요”

“잘했다! 겸사겸사 갔구나!”

잘했다! 기특해 하는 엄마는 조금 있다 다시 묻는다.

“재윤아빠는 어디 갔어? 재윤이는?”

무한반복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도전이 오늘도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5년, 딸이 결혼하여 출가한지 1년이 되어오지만 엄마에게 그 변화는 좀처럼 입력되지 않는다.

“재윤아빠는 언제 오냐?” “아버지는 어디 가셨냐?” “아버지는 언제 오냐?” “재경이는?”

 

“저기 간 사람은 언제 오냐?” 융합이 되고 변형이 되고, 오늘도 엄마는 엄마의 일을 하느라 하루가 길다. 요양보호사님이 오시지 않는 주말 오후쯤이 되면, 나는 반복되는 질문에 답하는 수고를 하다 마음이 지치고,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엄마는 눈치를 살핀다.

“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하나 봐. 그럼 아무도 간 사람이 없어?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냐?”

아마도 다른 식구들이 안보여 ‘무슨 일이 있는가?’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면서 걱정되고, 불안해 지는 모양이다.

 

“엄마 아무 일도 없어요. 재윤이랑 재윤아빠랑 지금 통영에서 올라오는 중이고요, 6시쯤 들어온대요!” “아, 연락이 왔어?” “그럼 됐다!” “그럼 아버지가 오시나?” “재경이는?”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5년 됐구요, 재경이는 결혼해서 자기 집에 살아요.”

나는 또 다시 설명을 해드리며 저녁 준비를 한다.

호박을 볶고, 사촌언니가 보내준 오가피 순을 데치고, 시금치를 무치며 내 마음을 다독인다.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깊이 내쉬고 호흡을 의식 하면서 노래를 듣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순간이 있지.

그렇지만 나는 제자리로 오지 못했어.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모르니.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 두었지.

이젠 이런 모습 나조차 불안해 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비상’ 노랫말처럼, 엄마는 되돌아 나오는 길을 몰라 묻고 또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에 온통 자신을 가둬 두고, 불안해하는 엄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여기가 어딘지 물으면,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로 나가면 된다고, 알려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리라. 간단해 보이는 이것은 내가 치매 돌봄 가족으로 엄마와 함께 살면서 가장 도전받는 일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과의 연결을 깊이 할 수 있게 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같은 말을 계속 물어볼 때, 처음에는 버럭 화를 냈고, 그러면 엄마는 ‘내가 언제 물어 봤냐 처음 물어보는 거다!’라며 더 크게 화를 내신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아무 감정을 싣지 않고 대답하는 것을 반복하니, 그 표정을 읽으신다. “뭐 기분 나쁜 일이 있냐? 표정이 왜 그러냐?” 나를 돌보면서 엄마를 돌보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 방 화장대 거울에 A4용지를 붙이고 엄마의 질문에 답을 커다란 글씨로 써놓는다. 어디를 가거나, 누군가 찾아오면 사진을 찍는다. 자주 물어보시는 내용을 사진에 설명하듯 이야기를 담아 사진 책을 만들어 보여드린다.

 

“아, 그래”

“그런데 왜 내가 몰라?”

“그걸 잊어버려서 그래요”

 

유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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