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 09:58ㆍ기린 Life
엄마의 호기심
오후 6시, 엄마의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울린다. '배가 고프다', '아무것도 안 먹었다' 하시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엄마 덕분에 우리 집은 6시에 이른 저녁을 먹는다. 요즘처럼 해가 긴 때는 대낮이다. 저녁식사를 하고 우두커니 식탁에 앉아 계신 엄마를 사위가 부른다.
"어머니, 이리 오세요. 같이 이거 봐요."
점점 더 많이 흔들리는 몸을 천천히 움직여 어느새 사위 옆에 가 앉으신다.
엄마: "저 잔디밭은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니고.. 뭐야?"
사위: "골프장이에요!"
엄마: "골프장 하려면 땅이 많이 필요해?"
사위: "30만평이 필요해요."
엄마: "지금은 만드는 사람이 없나? 이런 땅은 주인이 자기 땅이야? 그 사람은 저것만 가지고 도 가만히 앉아 돈 벌겠네! "
줄줄이 사탕처럼 엄마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엄마: "골프공은 이것만 해?"
탁자위에 있던 '물린디' 뚜겅을 보여주신다.
사위: "이런 거예요."
골프공을 보여 드린다.
엄마: "뿅~ 저렇게 넣으면 점수가 적어? 점수가 적은대로 1등이야?"
사위: "적게 쳐서 넣어야 1등이예요. 어떤 사람은 2번에 넣고, 어떤 사람은 3번..4번..5번에."
엄마: "응. 6번이면 초보구나. 여자가 골프 치는 거 멋있다. 우리나라에 저런 땅이 많아?"
사위: "우리나라에 500개쯤 있어요."
엄마: "나이든 사람도 골프 치나?"
사위: "85세 되신 분이 골프 치는 것 봤어요."
나는 생각지도 못한, 궁금해 본적 없는 질문을 엄마가 하신다. 사위는 성실히 답해 드린다.
엄마: "저 사람은 나이도 어린데 잘 치나보다. 이런 경기는 단체 팀이야, 개인이야?"
사위: "다 개인 이예요."
엄마: "재경이도 재윤이도 해 보면 좋겠다. 쟤네들은 몇 살부터 배운대?"
사위: "5살이요."
엄마: "거리를 얼마만큼 측량하는가가 문제일거야." "바나나 먹네! 또로록 휘딱 지나네."
"골프하는 애들은 그래도 까매지지 않나 봐."
사위: "얼굴에 많이 발라요."
집중해서 보고, 새로운 질문을 이어간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본인이 묻는 질문에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사위의 답이 신나고 재미있으신 모양이다. 누구나 자신이 묻는 말에 상대가 잘 듣고 반응해 주면 신이나지 않던가?
엄마: "땅 없는 나라에서는 저런 거 못하겠다. 어떤 사람이 저런 땅 하나 갖고 있음 세 받아?그럼 돈 많이 벌겠네."
"어휴 잘나가다 지나가네. 아따 잘했다!"
"쑝! 아이고 조금만 힘을 더 줬어야 하는데."
"와아, 거리가 멀다. 거기다 표시를 하나보지?"
사위: "고운 잔디에서는 표시해 놓고 쳐요."
엄마: "짜안 들어갔다."
사위: "한 번 만에 들어갔잖아요? 그럼 O쳐 주는 거예요."
엄마: "짧은 거 하는 게 더 어려워? 짠, 아이고! 뭐라고 하나보다 웃는걸 보니까."
"흥 와와 높이 올라간다. 지났구나. 너무 높으게 쳤어!"
‘난 TV 안 봐!’ 하던 엄마는 사위와 무한대를 그리며, ‘핑퐁’ 대화 속에 푹 빠져 기운이 뿜뿜 살아난다. 엄마의 호기심은 대화 속에서 피어난다.
며칠 후 남편은 창고에서 퍼팅판을 꺼내 놓는다. 엄마는 슬며시 보더니, 아무도 없을 때 퍼터면을 반대로 한 채 공을 쳐본다. 엄마의 어느 한 켠에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호기심을 마주하니 내 마음이 뭉클하다.
유문향
‘함께 산다는 것’이 뭘까?
내 삶이 편안할 때 보다는 힘들 때 더 자주 묻게 되는 질문이다.
함께 살아 좋은 것만 취하고 싶은 것이, 최소한 밑지는 장사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 아닐까? 어찌하다보니, 나는 20년 가까운 시간을 친정부모와 우리 부부, 그리고 딸들 3대와 함께 살고 있다. 그 1/3의 시간은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돌봐 주고, 1/3의 시간은 각자 어울려 함께 살고, 1/3의 시간은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살고 있다. ‘부모의 보호자’로 함께 산다는 것,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며 마주치는 애도와 축하, 나의 시간여행이 가져다 준 선물과 기억의 편린들을 나눠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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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4 - [기린 Life] - [연재] 할머니의 말 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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