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래

2022. 5. 3. 23:28기린 Life

프롤로그 : 함께 산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이 뭘까? 내 삶이 편안할 때 보다는 힘들 때 더 자주 묻게 되는 질문이다.

함께 살아 좋은 것만 취하고 싶은 것이, 최소한 밑지는 장사는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 아닐까? 어찌하다보니, 나는 20년 가까운 시간을 친정부모와 우리 부부, 그리고 딸들 3대와 함께 살고 있다. 그 1/3의 시간은 엄마가 우리 아이들을 돌봐 주고, 1/3의 시간은 각자 어울려 함께 살고, 1/3의 시간은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 살고 있다. ‘부모의 보호자’로 함께 산다는 것,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며 마주치는 애도와 축하, 나의 시간여행이 가져다 준 선물과 기억의 편린들을 나눠보려 한다.

 

‘치매와 함께하는 삶’은 내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나?

지금에 안주할 수 없게 한다. 뭔가 적응한 것 같고, 알 것 같은 상황이었다가 또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만나게 되고,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흔들고, 다시 변화에 적응할 것이 밀려오고, 안정을 추구하려는 나를 자극한다. 나의 창조성을 일깨운다. 예측가능하기를 바라고, 계획대로 되기를 바라는 나의 안정추구를 흔들어 놓는다. 나는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고 하고, 조화를 찾으려고 애를 쓴다. 변화에 맡기고 그 순간순간 살기는 여전히 도전이 된다.

도전, 자극, 창조성, 균형, 조화, 안정, 그 흔들림과 함께하며 얻게 되는 깨달음, 자각, 명료함은 때로 가벼움으로 변하고, 연결, 존중, 사랑, 감사가 나에게 선물처럼 오고 있다.

 

치매를 처음 접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을 한마디로 함축하자면, 걱정되고 ‘혼란스럽고 막막하다’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 당황스럽고’, ‘한 순간도 예측가능하지 않아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불안하다’로 표현된다. 거기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마주해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되어 무력함 속에서 맥이 빠지고, 기운이 빠져나갔다.

 

8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에게 치매는?

엄마에게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며, 엄마가 원하는 것에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단순해지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을 맞이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자기가 살고 싶은 나이에 살 수 있는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기회라고 해야 할까. 인생의 퍼즐을 완성해 가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자기가 살지 못했던, 살고 싶었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의 퍼즐을 찾아 완성해 가는 시간처럼 보인다.

 

평생 타인을 의식하면서 산 엄마는 이제, 자기가 어떤지를 말한다. “나 배고파” “나 뭐 먹고 싶어” “나 맛있는 거 줘” “차 타고 어디가자” “나 어디가고 싶어” “맛있는 밥해줘서 고마워” “차 태워줘서 고마워” “병원에 데려다 줘서 고마워” “일찍 와서 고마워” “도와줘서 고마워” “옷 갈아입혀줘서 고마워” “머리 감겨줘서 고마워” “세수시켜줘서 고마워” “맛있는 반찬 만들어 줘서 고마워”. 넘쳐나는 감사의 표현으로 함께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감사로 채워준다.

 


 

01 엄마의 노래

 

주말 오후 엄마를 혼자 두고 어디를 나갈 수가 없는 형편이다.

답답한 마음에 얼마 전 핸드폰을 바꾸며 둘째 딸이 깔아준 음악 앱이 생각나서

이적, 안치환, 이문세 노래를 듣고 있는데, 엄마가 ‘쓰윽’ 식탁의자에 마주 앉으신다.

 

"그건 무슨 노래냐? 나는 모르는 노래네..."

"응 그래? 엄마는 무슨 노래 좋아해? 김상희,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엄마가 가끔 부르던 노래를 찾아본다.

 

"옛날 노래는 곡이 우리 삶에 젖어 있어 부른 거 같아. 맞는지는 몰라도. 더 재미가 있어"

하며 따라 부르신다.

 

"엄마 이건 김건모가 부른 거야 들어봐. 같은 곡을 여러 사람이 노래했네!"

"곡도 잘 만들었어. 작가가 잘 한 거지."

 

엄마는 식탁을 두드리며 따라 부르신다.

 

"때가 어느 때인지 모르지. 우리 때도 불렀어."

 

박인수의 '비목'이 나오니

"아, 이 노래 좋아!"

 

홍 민의 '나 혼자만의 사랑, 송민도의 '꽃 중의 꽃'

나는 어느새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기억을 더듬으며 찾고,

엄마는 따라 부르기를 하고 있다.

아, 엄마는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구나!

 

신기하다. 노래를 다 따라 부르신다. 센치한 감성까지 되살아난다.

더듬어 마음이 그 세상으로 떠난다.

 

유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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