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8) - 단단한 부천 씨

2025. 4. 3. 16:53기린 Life

단단한 부천 씨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8) - 오부천 님

 

 

오부천 선생님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들의 양육자입니다. 제가 한 특강(악플세탁소)에 참가했을 때 아이 이야기를 하신 게 기억에 남아 인터뷰를 청했습니다.

 

부천 님의 아들은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부천 님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 비폭력대화를 만났는데요. 지역 상담소에서 봉사하며 교통지도를 할 때, 아이들에게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배우던 상담으로는 충분치 않아 인터넷으로 더 좋은 걸 찾던 중에 비폭력대화의 문구가 큐피드 화살처럼 와닿았다고 합니다.

 

초반엔 인터넷과 책으로 비폭력대화를 공부했고,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에 접어들 때 대전에서 열린 NVC1 수업을 수강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중재 1년 과정을 비롯해 여러 특강과 연습모임에 참석합니다. 그 와중에 사춘기가 지나갑니다. 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던가, 아빠와 갈등하기도 했지만, 관계 자체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부천 님은 회고합니다. 아이에게 아빠가 자라온 환경이나 서로의 욕구를 설명해 준 것이 도움이 되었다고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부천 님에겐 편안하게 일상을 이야기해 주고, 고3 즈음엔 아이가 '아빠를 이해한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나갈 수 있게 도울까

 

자립심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본인의 의지가 분명한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아이가 크면서 비폭력대화가 지향하는 바가 '일반적'이거나 '통용'되는 것과 다를 때 고민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이렇게(=연민과 평화의 마음으로) 키워도 되는 건가 싶은 의구심, 그게 제가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기도 해서 부천 님의 고민이 반가웠습니다.

 

가령 아이가 학교를 다니며 학업능력보다 추억이 더 중요하다며 시험 때 백지를 냈을 때는 아이의 욕구에 머물면서도 엄마로서 안타깝고 씁쓸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그 마음을 내려놓고 조금 더 노력하길 바라기도 했지만 자신의 계획대로 해 나갈 거라 믿고 존중하며 수용합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에게 더 맞고 좋아하는 걸 기반으로 대안을 생각합니다.

 

평범할 줄 알았던 아들은 학창 시절 내내 눈에 제법 띄는 아이였습니다. 학교 행사에 참여한다거나 친구들의 환호를 얻기 위한 제스처를 취하는데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공부가 곧 존재가치인 사회에서 공부가 아닌 걸로 자신을 드러내고, 못하는 것 못한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고 든든했습니다. 부천 님의 걱정도 녹아내립니다.

 

“저 아이는 스스로 잘 걸어가겠구나.“

 

남편은 착하지만 욱하는 성격에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부천 님과 아이를 쫓아내기도 했다고요. 집 근처 저수지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부천 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의 자리, 아빠의 자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대로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안심시키는 데 집중합니다.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에 흔들리지 않고 그저 잘 자라거라 영양분을 준 게 본인의 역할이었다고요. 자신의 가정은 일반 가정과 다를 바 없지만 비폭력대화 덕분에 위기의 순간에도 다시 중심을 잡고, 좀 더 빠르게 회복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덕분에 아이와 남편은 평화롭게 상호작용하고 서로 존중합니다. 남편과의 대화도 늘었습니다. 부천 님의 말에 묵묵부답이던 남편이 이제는 한두 마디씩 되묻습니다. 관심과 연결이 느껴집니다.

 

손님이 무섭지 않냐고? 내가 더 무섭다.

 

부천 님은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처럼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죠. '밤새 혼자 가게 보기 무섭지 않냐'는 주변의 질문에 '내가 더 무섭다'라고 답하는 부천 님. 어떤 상황, 어떤 손님도 환대할 수 있다는 말에서 그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두려움이나 걱정이 일렁일 때, 상대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앞설 때 부천 님은 관찰로 주의를 돌리고 몸과 마음에 집중합니다. 그러면서 '고목나무에서도 꽃이 핀다.'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생기나 촉촉함이 없어 보이는 고목나무에서도 다시 생기가 돋을 수 있다는 희망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고요. 무인점포로 운영되는 시간에도 신뢰와 안전이 실현됩니다. 오랜 시간 신뢰를 쌓은 손님들은 서로를 결제를 해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방학에 놀다 가고, 다른 손님들이 이모처럼 도와주기도 한다고요.

 

제 안에 사랑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부천 님은 할머니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도 폭력 이면에 사랑을 많이 주셨고, 늘 말을 예쁘게 하라고 가르쳐주시던 엄마는 여전히 항상 우리 딸 고맙다 사랑한다 표현해 주십니다. 이런 사랑의 힘으로 부천 님은 용기 있게 나아갑니다.

 

부천 님은 비폭력대화를 나누는 일에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비폭력대화가 온전히 자기 존재를 믿고 사랑하는데 기둥 역할을 해준다고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전 국민이 다 활용할 수 있게 센터가 계속 확산 노력을 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부천 님은 아들의 입대 소식과 가족 카톡방의 일상을 전해왔습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앳된 얼굴에 머리카락이 짧습니다.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를 안쓰럽게 생각할 법도 한데, 스스로 결정하고 잘 준비했기에 아이와 엄마 모두 설레며 기대하고 입소식을 치렀다고요.

 

군대 가기 전 엄마 밥을 먹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고기 듬뿍 김치찌개를 끓여주었습니다. '휘~ 웃는아이'가 앞으로도 웃으며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 단단한 부천 씨가 있으니까요.

 

 

 

이진희

KBS에서 라디오PD로 일하며 두 아이를 돌봅니다.

비폭력대화와 대중의 접점을 늘리고자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를 썼습니다.

생애초기 양육자들과 비폭력대화를 나누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