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6) - 정희라 님

2025. 1. 3. 15:51기린 Life

오늘도 파티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6) - 정희라 님

 

 

 

정희라 님은 세 아들의 양육자입니다. 2018년 'NVC 패밀리 캠프' 때 찍은 단체사진을 보다 기억이 나서 연락처를 수소문했습니다. 당시 딩크였던 저희 부부는 자원봉사자로 참가했었는데요. 강당 한편에서 남자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노는 듯하더니 이내 목소리가 커지는 걸 들었습니다. 그 해 NVC 중재 과정을 수강 중이던 저는, '저기 갈등이다. 실전연습이야!' 하면서 다가갔습니다. 

 

  나 : 너희 무슨 일이니? 선생님이 도와줄까? 
  아이 1 : 아니오. 잠시만요. 저희끼리 해 볼게요.
  나 : 아... 그래? (=뭐라고? 난 어른이고, 중재도 배웠다고!)

 

보란 듯이 '해결'해 보이려던 저는 멀찍이 서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듣자 하니, 한 아이가 매트를 가지고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온 '형'들이 맘대로 형태를 바꾸려 해서 언성이 높아진 겁니다. 아이 1이 먼저 놀던 동생의 불편함을 공감해 줬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차분히 묻고 듣습니다. 어느 아이도 힘, 나이, 가위바위보, 다수결 같은 도구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하더니 그걸 실현할 방법을 찾아 어느새 같이 신나게 놉니다.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 그것도 남자아이들이 '너 몇 살이야'를 묻지 않고 갈등을 다루는 것을 저는 처음 봤습니다. 어른을 옆에 세워두고 스스로 중심을 잡은 아이 1이 바로 정희라 님의 둘째 아들입니다. 이 아이를 비롯해 다른 두 아이는 어떻게 컸을지, 그들을 낳아 돌본 정희라 님은 어떤 분인지 이따금 궁금했습니다. 그 사이 저도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고요. 


비 오는 주말 저녁, 용산역 근처에서 정희라 님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커서 주말에도 약속을 잡을 수 있다며 홀가분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정희라 님은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비폭력대화를 만났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마음공부를 위해 시작하셨다고요. 나를 잘 이해하고 싶어서 집단상담과 코칭 등을 배웠고, 비폭력대화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부부 모두가 기린 부모학교를 비롯해 라이프와 중재과정을 두루 이수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반응이 '나한테 나쁜 마음을 가져서'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를 미워하고 대립하는 대신 자신의 패턴과 상처를 돌봅니다.

 

패밀리 캠프 때도 그랬지만 희라 님의 가족에게 비폭력대화는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은 듯 보였습니다. 이번 인터뷰 앞두고 희라 님이 둘째 아이에게 'NVC 배워서 좋은 점이 뭐야?' 물어보니 '비폭력대화? 그게 뭐야?' 되물었다고 합니다. 설명을 해 주니 그제야 '아~ 그거? 나는 상대를 비난하고 평가하기보단 내 감정을 표현하려고 해요.'라고 대답했다고요.

 

동시에 두 아이를 만난 저도 시간과 체력이 매번 반토막 나는 것을 실감하는데 세 아이의 엄마는 어떨까요? 사랑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결국 아이는 결핍과 단절 속에 자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부모 입장엔 다자녀이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는 하나뿐이니까요. 희라 님은 이 문제를 긴 호흡으로 바라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건이 되는대로 한 명 한 명과 1:1로 연결되는 시간을 가지면서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손 안 가는 무던한 첫째, 원하는 바가 정확한 둘째, 기쁨으로 온 셋째. 아이들은 사춘기의 터널을 각자의 속도대로 통과합니다. 막내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첫째는 성인이 되는 문턱에 닿아있습니다. 비폭력대화로 키운 아이들의 사춘기는 어떨까요? 양육자와 아이의 관계가 조금은 평화롭고 안정되지 않을까요?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통해 밝혀내고 싶은 가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희라 님은 아들 셋이 모두 큰 탈 없이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건강과 안전이 중요한 이 부부는 귀가 시간과 자는 시간, 이 두 가지만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억압과 자율 사이에서 비폭력대화를 뿌리 삼아 계속 균형을 잡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울타리에 부딪히면 울타리를 넓혀주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학교에 상담하러 가면 첫째 둘째 셋째할 것 없이 이 이야기를 들으셨다고요.

 

어머니, 너무 뵙고 싶었어요. OO는 교사를 잘 도와주는 고마운 학생이에요.

 

담임교사는 물론, 담임이 아닌 선생님이 학기 말에 아이에게 선물을 챙겨줄 정도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희라 님의 표정에서 봄날 햇살처럼 기운이 솟아납니다. 듣는 저도 가슴이 뜨끈해집니다. 허나 학업성취도는 별개라는 말에 다 같이 큰 웃음을 터뜨립니다.

 

세 아이를 키우며 부부 사이의 갈등도 많았을 텐데요. 평가 없이 신뢰하고, '그럴만하겠지' 이해를 바탕으로 관찰에 머무르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각자가 각자의 연습 모임을 기둥 삼아 공감할 힘을 끌어내고요. 비폭력대화를 좀 더 일찍 배웠다면 내가 나 자신의 욕구를 더 잘 알아줬을 텐데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집은 편안한 곳, 양육자들이 지켜주는 안전기지입니다. 아이들이 커서 제 갈길을 잘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면 정서적으로 자립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또 잠시나마 돌아오고 싶어지면 언제든 쉬어갈 수 있게 곁을 내줍니다. 그러기 위해 두 사람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아이의 반응이 나를 힘들게 하는 도발이 아니라 각자의 욕구(호기심, 재미, 자율성)에 기반함을 늘 기억하려 애씁니다. 비폭력대화와 멀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긴 시간, 세 아이를 키우면서 당장 효율적이지 않아 보이는 일이 결국 효율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희라 님을 잡아주는 존재입니다. 희라 님의 휴대전화에 세 아이들은 'OO 선생님', 'OO 선생님', 'OO 선생님'으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희라 님이 스스로에 대해 배우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 

 

희라 님 집엔 파티가 잦습니다. 두 양육자와 세 아이들이 축하할 거리를 들고 오니까요. 파티의 단골 메뉴는 치킨입니다. 모두 잘 먹고, 각자의 욕구를 존중하다 보면 기본이 세 마리 이상이고 다 다른 치킨 집에서 시킬 때도 있다고요. 이 글이 발행되면 또 축하할 거리가 생겼다며 모여서 치킨파티를 벌이겠지요?

 

 

 

이진희

KBS에서 라디오PD로 일하며 두 아이를 돌봅니다.

비폭력대화와 대중의 접점을 늘리고자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를 썼습니다.

생애초기 양육자들과 비폭력대화를 나누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