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공감과 소통의 씨앗을 심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장, 이준정 교수

2025. 1. 4. 14:22기린 Life

『일터에서 NVC』 

대학에 공감과 소통의 씨앗을 심는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장, 이준정 교수

 

 

이준정 교수님은 2019년, 충주에 있는 아침편지명상센터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습니다. 20여 명이 일주일간 참여한 프로그램을 마치면서 참여자들 간에는 깊은 연결이 생겼습니다. 마지막 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산청간디숲속마을에서 비폭력대화를 같이 나누고 싶다고요. 이준정 교수님을 포함한 열 명이 이틀간 마을회관을 빌려 밥을 직접 해먹고, 짬짬이 서로를 돌보면서 비폭력대화를 공부했습니다. 이 교수님은 그때를 계기로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더욱 깊이 배우신 후, 2023년 초 인권센터장 제안을 받아 지금까지 2년간 인권센터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 비폭력대화의 시작이 산청에서였죠?

2019년 1월에 배운 게 너무 좋아서 그해 8월 주변 사람들을 모아 방배동의 메종인디아 북카페에서 인숙 님과 이틀간 더 공부를 했죠. 그 해 가을, 교육원에서 NVC2를 들으려고 했더니 교육원 강사한테 들은 게 아니라고 해서 NVC1을 다시 들어야 했어요. 2019년에 NVC1만 세 번 들은 거죠.

 

그리고 나서 2020년 초에 NVC2를 들었고, 첫 연습모임 이후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연습모임을 못했어요.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저는 너무 좋았어요. 제 전공 분야가 워낙 출장이 많은데 출장이 확 줄어서 시간이 많아졌고, 비폭력대화교육원에서 줌강의를 주제별로 많이 열어서 들을 수 있는 강의를 거의 다 들었던 것 같아요. 어떤 날은 오전, 오후, 저녁에도 들었지요.


직접 듣는 것과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주제별 온라인 강의를 들으면서 비폭력대화를 많이 익혔고, 집합교육이 열릴 때 시간을 잘 맞춰서 NVC3를 들었고, 2021년 중재과정을 들었지요. 이렇게 코로나가 저에게는 비폭력대화를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어요.

- 배움에 시기적인 행운이 있었군요.

네. 코로나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푹 빠져서 집중적으로 공부하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 푹 빠져서 공부를 했는데, 비폭력대화의 어떤 점이 끌렸나요?

느낌과 욕구를 배울 때, 저 자신이 제 욕구를 얼마나 억누르고 살았는지를 안 것이 굉장히 충격이면서 많이 도움이 됐어요. 한국 사회의 여성이자 맏딸로서, 또 사회적인 위치 때문에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는 틀이 제 안에 많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나쁜 거야, 이런 걸 바라는 건 욕심이 너무 많은 거야, 잘못된 거야’, 이런 식으로 욕구를 굉장히 억누르고 살았고, 제 감정도 굉장히 부정하고 살았더라구요.

모든 느낌은 다 아름답고, 느낌 뒤에는 아름다운 욕구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자신 안에 눌려있던 것들이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느낌, NVC는 바로 그거였어요. 이럴 때 나는 이런 감정을 느껴,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이럴 때는 슬퍼, 이럴 때는 화가 나, 이럴 땐 질투가 느껴져, 나도 사랑받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 이런 게 너무나 당연한데, 그동안은 부인하면서 항상 희생적이고 착하고 남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실제로는 그렇게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감정과 욕구를 엄청 억누르면서 산 거죠.

50년 넘게 그렇게 살다보니 굉장히 버거웠는데, 느낌과 욕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니 깨달음이라고 할까요? ‘아, 이거구나’ 확 알아차려지면서 굉장히 놀랍고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해방감이 느껴지고 자유로워졌던 거 같아요.

- 서울대 나와서 유학 갔다 오고 서울대 교수를 하고 있으니 나름 원하는 대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게 아니었어요. 주변 분들도 다들 그러신 것 같아요. 여성들은 더 그렇고, 남성들에게서도 그런게 많이 느껴져요. 자기 욕구를 솔직히 드러내고 추구하면서 사는 분들은 극소수고, 대부분 저처럼 많이 누르면서 사는 것 같아요.

- 자신의 욕구를 알게 된 후 어떤 게 제일 아쉬웠나요?

처음 교육받을 때 가장 크게 알아차린 욕구는 ‘돌봄을 받고 싶다’였어요. 항상 누군가를 돌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사실은 나도 돌봄을 받고 싶었던 거죠. 누군가가 나를 토닥토닥 해주고, 나를 위해서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내 감정도 보살펴주기를 정말 원했는데, 그런 게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굉장히 누르고 살았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같이 공부한 사람들에게 제 욕구가 ‘돌봄’이라고 했더니 “다른 사람을 돌봐주고 싶으시군요?” 그러더라구요. 저의 이미지가 그런 거였죠. 그래서 그게 아니라, 내가 돌봄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뭐라고요?” 하면서 사람들이 놀라던 기억이 나요.


- K-장녀로서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충실히 하면서 살아온 거네요. 그걸 발견했을 때 억울하셨나요?

억울하다기보다는 기뻤어요. ‘그렇구나, 나도 정말 이런 게 필요해’하고 아는 순간 정말 기뻤어요. 그래, 이제부터는 나를 돌봐달라고 해야지, 주변에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지, 그랬어요. 그 다음부터 부탁을 많이 했어요. 특히 남편하고 딸에게요. 항상 집안일은 내가 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왜 항상 나만 해야 되느냐고 불만이었지요. 그런데 ‘나도 이제 늙어서 혼자 하기 힘들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 없다, 너무 바쁘다, 이거 좀 해달라’ 이렇게 부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 결과는 어땠나요?

일이 많이 쉬워진 거 같아요. 최근에도 딸 아이한테 “무겁고 힘든 건 네가 좀 해라.” 이랬더니 딸 아이가 벌떡 일어나서 하더군요. 그 전에는 ‘왜 안 하느냐? 왜 나만 하느냐?’고 하면서 내가 힘들다는 표현을 안 한 거 같아요. 무의식 중에 ‘나는 힘들면 안 돼’, ‘내가 다 책임져야 돼’라든가, 불만을 이야기 하면서도 ‘사실 내가 다 할 수 있는데 괜히 남에게 떠넘기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 딸 얘기가 나온 김에 저는 아들만 둘인데, 아들과 대화하려면 요즘 2030 세대의 젠더 갈등을 좀 깊이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센터에도 젠더갈등 사건이 있나요? 젊은이들 간에 왜 이렇게 갈등을 있을까요?

젊은 남성들이 나름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인 20대까지는 남성들이 더 손해를 본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자라면서 한 번도 남자라서 더 유리하다는 경험을 하지 못했는데, 중간에 군대에 가야 되잖아요. 이게 엄청나게 큰일이죠. 군대 갔다오면 여학생들은 벌써 다 앞서 나가 있고, 남학생들 입장에서는 많이 뒤처지고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손해다, 불평등하다고 하니까 공감이 안 되고, 반발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10대, 20대 남성들이 느끼는 부분을 인정하고 충분히 공감해 주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 여학생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여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 조금씩 차별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알게 모르게 교수님들이 남학생을 선호하고, 여학생 제자가 많은 것보다 남학생 제자가 더 많은 걸 좋아하는 경향이 있죠. 고등학교까지는 전혀 차별을 못 느끼다가 대학 와서 밑바닥에 있는 차별적 기류를 느끼기 시작해요. 대학원에 가면 그게 조금 심해지고, 직장 가면 더 심해지고, 결혼하고 출산하면 더더욱 힘들어지는 거죠. 그리고 여학생들은 성희롱, 성추행, 특히 요즘에는 몰래카메라나 딥페이크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커요. 평등한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성적 대상이 돼버리니 너무나 커다란 불평등 구조를 갑자기 느끼게 되는 거죠.


서로가 다르게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상대를 비난하고, 정치인들은 이걸 이용하고, 사회도 계속 문제를 키우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저는 학생들이 서로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고, 인권센터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도입하면서 조금씩 시도해 보고 있어요.

- 요즘 인권센터의 주요 이슈는 어떤 건가요?

 

가장 커다란 이슈는 ‘갈등’이에요. 상대가 자신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권 침해라기보다는 갈등 사안이 많아요. 함께 팀 과제를 하고, 실험하고, 연구실을 공유하고, 일하면서 서로 간에 성향이 안 맞을 수도 있고 말투가 마음에 안 들 수도 있고, 이런 차이가 점점 심각한 갈등이 되면서 쌓이고 쌓여서 돌이킬 수 없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까지 심각해지기 전에 서로 간에 풀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텐데, 누군가 도와줄 수도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상황이 많아요. 주고받은 말로 인한 게 제일 많죠.

- 주로 비난하고 강요하는 말들인가요?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투로 했는지가 문제가 많이 돼요. 여러 사람 앞에서 나무라는 말을 들으면,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되죠.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의도로 하는 말도, 상황에 따라 말투에 따라 정말 결과가 달라져요. 말을 잘 하면 해결될 일인데, 말을 잘 못 해서 인권 침해가 되고 갈등이 심화 되요. 의도와 다르게 말이 나가서 생기는 문제가 참 많아요, 그런 게 안타깝죠.

- 그렇게밖에 표현 못 하는 언어의 한계를 많이 보면서 비폭력대화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실 거 같네요. 인권센터에서는 어떻게 갈등을 중재하고 있나요?


갈등적인 요소가 많으면 ‘회복적 대화’를 통해서 풀어보려고 해요. 잘잘못을 가린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잖아요. ‘회복적 대화’를 작년부터 시도하고 있는데, 아직 시행착오를 많이 하고 있어요. 갈등 상황에서 인권센터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은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왜 서로 간에 ‘대화’하고 ‘회복’하라고 하냐, 인권센터가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조심스러워요.

지금까지 다섯 건 정도 회복적 대화를 시도해 보았는데, 아주 아름답게 잘 마무리되어 뿌듯했던 경우도 있고 본모임까지 가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자체적으로 피드백을 나누고, 중재자들하고도 피드백을 나누고 있어요. 어떻게 접근하고 활용해야 할지 계속 고민 중이에요.

 

제가 비폭력대화를 배워서 인권센터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 부분이 있다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도 다시 제자리로 잘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잘잘못을 가리는 것과 제자리로 잘 돌아올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 두 부분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인권센터 직원들도 비폭력대화를 배우셨나요?


인권센터 구성원 가운데 개인적으로 비폭력대화를 배우신 분이 이미 두 분이나 계셨어요. 교육담당 전문위원과 심리상담 전문위원이 각자 필요에 의해 배우셨더라고요. 한 분은 중재과정까지 마치셨고요. 그리고 인권센터의 교육프로그램 중에도 비폭력대화가 들어와 있었어요.

‘회복적 대화’에 대한 필요성도 인권센터 내부에서 이미 논의되고 있었어요. 대학 인권센터는 ‘응보적 정의’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 ‘회복적 정의’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연구가 이미 되어 있었더라고요. 이미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제가 인권센터장을 맡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뜻을 모을 수 있었어요.

 

작년에 직원 전체를 대상으로 박기원 선생님이 오셔서 NVC1 교육을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좀 낯설어하는 분들도 있었고, 특히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 전문위원들은 이런 방향이 사건 처리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어요.

 

제가 NVC1 교육을 주선한 이유는 업무에서 비폭력대화를 잘 활용하자는 것보다는 힘든 일을 담당하는 직원들을 돌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인권센터 사건을 처리하고 민원에 응대하다 보면 감정적인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고, 때로는 공격이나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인권센터니까 참고 감내하고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든 감정을 억누르고 묵묵히 일을 맡아서 해요. 항상 감정을 억누르면서 일하다 보니까 힘들고 보람도 못 느끼고, 1년 정도 일하면 떠나곤 했어요.

 

이제는 힘들다, 두렵다, 위협을 느낀다는 표현을 솔직히 하도록 독려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낼 프로그램도 실행하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도 함께 마련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 경찰이나 소방관들도 직업 스트레스로 인한 트라우마가 굉장히 심하다고 들었어요. 인권센터도 그렇군요.

네, 아주 힘든 일들이 종종 일어나요. 그런데 사건 당사자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있는지, 무슨 일을 겪는지 어디 가서 얘기할 수가 없어요. 우리끼리라도 서로 보듬어 주어야 해요. 서로서로 힘들다고 솔직히 표현하고 이해받고 돌봄 받으면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일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인권센터 역사 12년 동안 사건 담당 전문위원 평균 재직 기간이 1년 미만이었어요.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분들의 느낌과 욕구가 충분히 공감받아야 해요.


요즘 인권센터에 있으면서 제일 뿌듯하고 행복할 때는, 센터장실에 있는데 복도에서 직원분들이 크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소리를 들을 때예요. 예전에는 각자 방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복도는 늘 썰렁했거든요. 서로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즐거워하는 소리를 들으면, 일은 여전히 힘들어도 조금은 편안해지셨구나 싶어 안도가 돼요.

- 그렇군요. 웃음소리 들으면 정말 보람되시겠어요. 인권센터 오기 전에는 비폭력대화가 교수로서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제 감정과 욕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다른 사람들의 느낌과 욕구도 알게 되었어요. 옛날엔 판단을 참 많이 했죠. ‘저럴 때 왜 저런 걸 느껴? 저 사람은 왜 저런 거를 바래?’ 그랬는데 이제는 많은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제가 굉장히 날카롭고 비판적이고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그런 면이 바뀐 것 같고, 학생과의 관계도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교수는 항상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쳐주고 지도해 주고 지적해 주고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굉장히 일방적이었죠. NVC1에서 공감이 아닌 열 가지를 배우잖아요. 그동안 한 게 다 그 열 가지였더라고요.

교수가 왜 학생을 공감해? 좋은 길로 이끌어주고, 잘못한 걸 지적해 주고, 특히 학문적인 영역에서 엄정하게 지도하는 게 학생들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비판적이고 날카롭게 대했어요. 나는 그냥 잘못을 바로 잡아준다고 지적한 거지만 학생들에게는 정말 평생에 남는 상처가 되는 말, 칼날처럼 꽂히는 말들을 굉장히 많이 했죠.

 

그러다가 비폭력대화 교육을 받고 나서는 처음으로 들으려는 시도를 했어요.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학생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 집에서 줌으로 수업을 듣는 기간에 학생들 면담을 많이 했어요. 가능하면 1대 1로 만나서 밥도 먹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전에는 그런 적이 거의 없었죠. 만나서 학생들한테 물어봤어요. “잘 지내니? 괜찮니? 어떠니?” 그냥 이런 정도만 했는데도 학생들이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더라고요.

 

학생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중간에 좀 겁이 났어요. ‘이런 얘기까지 다 하면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 처음 만났는데 이런 얘기까지 왜 하지?’ 그냥 괜찮니, 힘든 일 없니, 하면서 안부 물어주고 그냥 들어주는데, 어느 누구에게도 못한 힘든 얘기를 하고, 어떤 때는 펑펑 울기도 해서 당황하고 힘들었던 적도 있어요. 그러면서 느끼게 되었죠.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 얘기를 들어주기를 원하는구나, 그냥 들어주면 친하지도 않고 어려운 교수한테도 속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살았나, 학생들을 난도질하고 살았구나,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지적하면서 학생들 가슴에 비수를 꽂으면서 살았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학생들과 세대차가 많이 나서 대화하는 게 쉽지 않은데, 어떤지 물어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참 많이 소통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참 좋아요.

- 요즘 서울대 학생들의 고민은 어떤 건가요?

장래에 뭘 하고 살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아요. 조급해 하는 게 많이 느껴져요. 사회가 불안정하니 그렇겠죠. 우리 때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헤매다가도 뭔가 길이 열렸는데, 요새는 경쟁도 심하고 상황도 힘들다 보니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안타까운 건,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거를 찾는다기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아요. 누구는 벌써 로스쿨에 갔고, 회계사 되어 있고, 공무원 시험 합격했는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간 낭비하다 보면 완전히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해볼 만한 시도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 10여 년 전에 서울대 교수하는 선배한테 서울대 학생의 30%가 우울증이라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었는데, 지금은 더 높아졌을 거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학생들이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학생들은 지금 경쟁 사회의 최대 희생자잖아요.

지금의 입시제도로 볼 때 서울대 학생들은 약간 순응적인 성향이 강할 수 있어요. 자기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면서 부모님과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잘 따라온 학생일수록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측면이 있어요. 그러다 대학에 와서 억눌렸던 부분이 나타날 수도 있고,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부모님과 갈등할 수도 있죠.

- 어제 비폭력대화 책을 읽다가 ‘사람들은 자기의 욕구를 찾는 걸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욕구를 찾는 순간 그걸 책임져야 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에 밑줄을 그었는데, 요즘 대학생들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저는 학생들이 NVC를 배워서 자기 욕구를 발견하고 충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비폭력대화가 교양과목에 포함되기를 바라는데, 학교 상황은 어떤가요?

한번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부터 인권센터에서 대학원생 대상으로 비폭력대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현재 5기까지 진행했는데 학생들 반응이 정말 뜨거워요. “세상에 이런 세계가 있었냐, 어떻게 이걸 이제야 알았냐, 인권센터에서 이런 수업을 마련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정말 반응이 폭발적이에요. 정지선, 이경아 선생님이 진행해 주셨는데, 학생들이 정말 잘 이해하고, 솔직하게 자기 얘기도 잘하고 공감도 잘 한다고, 굉장히 특이하다고 하실 정도예요. 서울대 교육에서 ‘공감’과 ‘소통’이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고, 학생들이 필요성을 직접 느끼고 있으니, 비교과과정으로라도 학생들에게 제공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지난주에 제가 한 대학에서 보직교수님들과 대화시간을 가졌는데, 한 분이 학생 상담을 하고 나면 몸이 너무 아프고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몰라 점점 상담을 안 하게 된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교수님들이 학생들과 상담하는데도 비폭력대화가 굉장히 필요한 거 같아요.

그렇죠. 학생 상담할 때 뭔가를 자꾸 가르쳐주고 답을 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힘든 건데, 그냥 들어만 줘도 되거든요. 저도 처음에는 진짜 겁이 많이 났어요. 너무 힘든 얘기를 많이 하니까 고민되더라고요. 책임도 못 질 건데 이렇게 계속해도 되나 싶었는데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괜찮더라고요. “그래, 그래서 정말 힘들겠구나” 그냥 그 말만 해줘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꼭 답을 주지 않아도 괜찮더라고요.

- 학생들은 그냥 들어주는 걸 원할 뿐이지 해답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해답을 원할 수도 있죠. 제가 직접 해답을 주지 않더라도 학교 안에 도움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이 있으니 가서 상담하고 도움을 받아봐라, 이렇게 정보를 줄 수 있죠. 그런데 부모나 친구에게도 하기 힘든 얘기를 털어놨을 때 “그렇구나, 그런 거 때문에 힘들고 걱정이 되는구나, 힘든 얘기 해줘서 정말 고맙다”라고만 해도, ‘내가 잘못된 거 아닌가’라고 고민하던 학생들이 안도하면서 스스로 해답을 잘 찾아가는 걸 많이 봤어요.

- 처음 비폭력대화 공부하고 밤늦게 집에 간 날, 딸과 나눈 대화도 되게 감명적이었어요.

산청에서 돌아오자마자 딸이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거의 여섯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딸이 지난 몇 달 동안 고민하고 힘들었던 얘기를 하는데, 그때 딱 생각한 게, 비폭력대화 교육을 안 받았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는 거였어요. 아마도 제대로 듣지 않고 도와주고 해답을 주려고 하다가, 힘들게 이야기 꺼낸 딸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가 틀어졌을 거예요. 그런데 몇 시간 전에 배우고 온 비폭력대화 덕분에, ‘그냥 들어주고 공감하자’ 그러면서 들었어요. 여섯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제가 한 말은 많지 않았어요.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서 지금 어떠니?”


- 되게 놀랍네요. 배우고 가서 바로 공감을 실천하셨네요!

 

그만큼 잘 가르쳐 주신 거죠. 바로 적용할 수 있게 아주 잘 가르쳐 주셔서 가능했어요! 딸과 평소에 사이가 좋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는 편이었지만, 그때는 ‘딸하고 엄마 사이에 이렇게 깊은 얘기를 다 해도 되나? 어떻게 이렇게 속 깊은 얘기를 엄마랑 딸이 나눌 수 있나?’ 싶더라구요. 놀라웠죠. 그리고 딸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 “너한테 미안한 게 있는데, 너 어릴 때 내가 이런 상황이라 이렇게 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라고 하니까 딸이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더라고요.

또 한 가지, 비폭력대화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던 일이 있어요. 몇 년 전 제자 하나가 스스로 세상을 하직한 일이 있었어요. 코로나 상황이라서 세상을 떠난 후 열흘 정도 지나서 소식이 전해졌는데, 너무 놀라고 충격을 받아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인숙 님에게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김혜정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잖아요. 김혜정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코로나 상황이라 학생들이 각자 집에서 소식을 듣고 있다, 이런 일이 주변에 얼마나 큰 영향이 미치는지 알기 때문에 너무 걱정된다, 장례 치르고 열흘이나 지나서 알았는데 학생 부모님께 연락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모르겠다, 학과 교수들도 우왕좌왕하고 굉장히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 이런저런 얘기를 막 쏟아냈어요. 그런데 김혜정 선생님 첫마디가 “그런데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였어요.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에게 전화로 그 한마디를 들었는데, 정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아니요. 너무 힘들어요. 저 안 괜찮아요.” 그러면서 전화기에 대고 펑펑 울었어요. 사실은 그 학생에 대해 늘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걸 무시하고 외면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저를 깊이 공감해 주시고, 그 후에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셨어요. 구체적인 조언도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괜찮으세요?”하고 물어봐 주신 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공감받고 나니 다른 사람들을 돌볼 수 있게 되었고, 그 후에 추모 모임을 하면서 참석한 학생들을 한명 한명 만나면서 “소식 듣고 놀랐지? 괜찮니?”라고 다가갔어요. 이렇게 몇 마디만 했는데, 학생들이 “선생님, 그 친구랑 마지막 만났을 때 제 얘기만 하고 헤어졌어요, 그때 제가 얘기를 들어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과 힘듦을 얘기하면서 다들 펑펑 우는 거예요. 김혜정 선생님이 저에게 ‘그런데 선생님 괜찮으세요?’ 했던 것처럼, 제가 학생들에게 “많이 놀랐지? 괜찮니?”라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애도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이 한마디가 다른 어떤 것보다 힘이 있었어요. “괜찮니?”라고 이야기하면서 “나 안 괜찮아, 우리 모두 안 괜찮아, 나도 너무 힘들고, 너희들도 너무 힘들고, 모두 너무 힘들어.” 이런 얘기를 함께 솔직히 나눈 게 참 많이 도움이 됐어요. 그 일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솔직한 것, 다른 사람들을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의 중요성을 깊이 알아간 것 같아요.


- 이런저런 경험이 많으셨네요. ‘내가 그때 내 말을 들어줬더라면’라는 책을 쓴 미국 정신과 의사 나종호 선생님 책을 보니, 그분도 자살한 레지던트 동기가 있는데, 매년 모여서 대화 모임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의 좋았던 점, 옛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계속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요.

 

그 일 이후에도 제자 둘을 병으로 잃고, 동료 한 명이 또 스스로 떠났어요. 그 얘기 하니까 심장이 막 아프네요. 애도가 쉽지 않아요. 시간이 많이 필요해요...

- 전에 명상센터에서 만난 사람들과 모임을 할 때, 자신이 하는 많은 명상 프로그램의 맨 앞에 비폭력대화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비폭력대화를 배우라고 권하셨잖아요. 그 표현이 참 와닿았어요.

 

제가 여러 명상 프로그램을 배웠는데, 그렇게 배우고 제 안에 쌓인 것들을 구체적으로 현실 세계에 나타내는 가장 즉각적인 방법이 비폭력대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겉으로 드러나는 첫 번째라서 맨 앞에 있다고 표현했어요. 일단 누구에게나 배우라고 권하고 싶었고요!

- 그렇죠. 명상을 해서 마음을 알아차려도 그걸 표현할 언어가 내 안에 없으면 표현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비폭력대화를 하고 명상을 하면서 오히려 화가 많아졌어요. ‘나 지금 화났어, 힘들어’ 이렇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나면 상대에 대한 미움이나 감정이 쌓이지 않고, 어려운 일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더라고요. ‘힘들어도 화내면 안 돼, 욕하면 안 돼, 미워하면 안 돼, 잘해야 돼’, 이러면 오히려 마음속이 더 엉망이 되고요. 당연히 화나고 속상하니까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또 일은 일대로 하고, 그러면서 힘든 일들을 해나갈 수 있었어요.

 

다양한 명상수행과 비폭력대화를 깊이 공부하던 중 제안받은 대학 인권센터장을 맡아, 직원들이 일 년도 못 버티고 나가는 힘든 일터를 ‘공감’과 ‘돌봄’을 통해 복도에서 웃음소리가 넘치는 밝은 직장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스토리가 감동적입니다. 퇴사를 꿈꾸고 퇴사를 실행한 직장인들은 말합니다.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인간관계가 힘든 거라구요. 고고학 교수에서 인권센터장으로 자리를 옮겨, 서울대에 공감과 소통의 씨앗을 심고 있는 이준정 교수님에게 감사와 응원을 보냅니다.

 

 

인터뷰 : 윤인숙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공동대표)

 

(좌측: 윤인숙 공동대표, 우측: 이준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