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의 비폭력대화 _ 정신과 전문의 이승민

2024. 6. 28. 14:28기린 Life

일터에서의 비폭력대화 :

이번 달부터 자신의 전문분야에 비폭력대화를 접목한 회원의 인터뷰 글을 올립니다

 

 

정신과 전문의 이승민

(이승민정신건강의학과 원장 / 인지행동치료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환자를 효과적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인지행동치료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인지행동치료는 정신과 치료 중에서 효과가 검증된 치료방법이에요. 그 치료방법을 배우려고 선생님들을 찾아다닐 때 같이 배우던 한 동료가 “이 책이 좋데” 하면서 소개해준 책이 바로 ‘비폭력대화’였어요. 읽어보니 너무 재밌었어요.

 

인지행동치료에는 힘들었던 상황과 그때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찾아내는 과정이 있어요. 그것이 비폭력대화에서 말하는 관찰. 느낌과 거의 유사한데, 욕구는 인지행동치료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비폭력대화의 욕구 파트를 읽으니까 뭔가 확 풀리는 느낌,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명상도 배우고 있었는데 관찰이 명상과 너무 비슷해서 관심이 갔죠. 그래서 당시 신촌에 있던 비폭력대화센터를 찾아가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는 빨리 배울 생각은 없었어요. 한 단계씩 배우면서 적용하고 효과를 체득해가면서 천천히 배웠어요.

 

책은 2010년도에 읽었고 센터에 가서 배우기 시작한 것은 2011년이에요. 홈페이지에서 NVC1과정을 신청하고 신촌센터에서 이연미 선생님에게 수강했어요. 비폭력대화를 배우면서 좋았던 건 카드를 펼쳐놓고 느낌, 욕구를 찾아가는 것이었어요. 환자를 도와드리는 조력자 입장에서 적용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저는 심리 상담을 할 때 내담자들에게 느낌, 욕구 카드를 보여주면서 혹시 이런 느낌인가요? 하고 물어봐요. 지금은 벽지 안에 자석판을 넣어서 자석카드를 붙여두었는데 예전에는 우표수집할 때 쓰는 것 같은 포켓을 걸어두고 환자분들에게 가서 뽑아 보시라고 했어요. 그러면 환자분이 자기 마음을 직접 뽑으면서 너무 좋아했어요. 제가 말하지 않아도 혼자서 자기 마음을 쉽게 알게 되는 거죠. 그래서 환자분이 호기심을 가지고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요.

 

치료의 기본 틀은 인지행동치료지만 비폭력대화의 느낌, 욕구 카드를 이용하니 환자들이 훨씬 더 자기 이야기를 잘 하고 자기 공감하기가 쉬웠어요. 저는 환자분들을 도와서 자기 마음을 발견하고 스스로 표현하는 것을 보는게 너무 좋았어요. 상담하기도 훨씬 쉬워졌지요.

 

제 병원을 개원하기 전에는 조현병이나 알콜중독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진료하면서, 입원환자분들을 대상으로 명상진행도 하고 집단인지행동치료도 했는데, 어느 날 비폭력대화 강의를 했더니 환자분들의 반응이 기존 프로그램보다 매우 좋았어요. 조현병 환자들의 경우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배우면서 사회성이 발달되었어요. 알콜중독 환자들의 경우는 강제로 감금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교육을 해도 시큰둥한 경우가 많은데, 술 마시는 상황에서의 느낌과 가족 간의 사랑, 관심 같은 욕구들을 찾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개인 상담이 아니라 병동내 집단 상담에서는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은데, 비폭력대화는 자신의 깊은 마음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데 분명한 효과가 있고 내담자의 마음에 다가가기 쉬운 도구에요.

 

정신과의원을 개원하고 나서는 우울증이나 불안증,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오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자녀와의 관계가 어려운 분, 너무 착해서 눈치를 많이 보고 자기표현을 못하는 분들이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왔지만 좌절이 많았는데, 비폭력대화를 하면서 재미를 느껴요. 그리고 자신이 환자라서 대단한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소통방법에 대한 수업을 받으러 왔다가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감동을 느끼고 변화를 경험해요.

 

“생각을 이렇게 바꾸세요, 행동을 저렇게 바꾸세요” 라고 해도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긴 해요. 그런데 더 깊은 변화는 자기 내면의 변화이고, 내면의 변화에는 따뜻함이 원동력이 되요. 비폭력대화는 대화기법만으로도 훌륭하지만, 비폭력대화의 정신인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담자를 대하면 그 사랑이 전달되어 깊은 변화가 일어나요. 세상의 많은 치료자들이 내담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있고, 비폭력대화도 사랑이 기본이기 때문에 깊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찾아오시는 분들 중에는 처음부터 커플 치료를 부탁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 상담을 받다 보니 좋아서 파트너와 같이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갈등 상황에서 오시죠. 이분들은 비폭력대화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바로 커플 치료로 들어가지 않고 느낌, 욕구를 찾는 방법부터 알려드려요. 그 후 두 사람의 상황을 꺼내서 비폭력대화(NVC)중재하는 방식으로 상담을 하는데, 커플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요. 이혼할 뻔한 커플도 효과를 보았지요.

 

부모자식간의 경우도 참 힘든데, 내원자 한 명이 엄마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았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가 제가 알려 드린 비폭력대화 책을 읽은 후 말이 바뀌셨어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작은 기회의 창이 보여서 책을 소개했는데, 그 책 한권으로 딸과의 관계가 달라진 거에요.

 

 

 

 

 

비폭력대화를 권유한 의사 친구들도 몇 명 있는데, 제가 너무 기대를 많이 올려놨는지 그렇게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어요. 사람마다 선호하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정신분석을 전공하고 어떤 사람은 인지행동치료를 전공하면서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르니까요.

 

인지행동치료는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켜서 치료하는 방법이에요. 물컵에 물이 반이 있을 경우 반 밖에 없다는 생각을 반이나 남았다는 생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인지치료라고 하고, 무서워서 피하고 싶을 때 피하지 말고 한번 부딪혀 보도록 행동을 바꿔주는 걸 행동치료라고 해요.

 

인지행동치료는 데이터로 효과가 검증된 방법이에요. 우울증 환자의 50%에게 효과가 있다는 것이 데이터로 검증되었기 때문에 인기가 있어요. 그러나 한 가지 치료방법이 모든 걸 다 커버하는 건 아니에요. 훌륭한 치료자들은 폭넓은 공감을 기반으로 하시겠지만, 생각을 바꾸고 정답을 찾아주는 작업을 하다보면 공감이 약할 수 있어요. 그런데 비폭력대화는 상대의 욕구를 찾아주면서 정서공감을 함께하기 때문에 따뜻하게 접근할 수 있어요.

 

저희 병원에서는 비폭력대화 수업도 하는데 코로나 시기에 잠시 멈췄다가 두달 전 오프라인으로 다시 열었어요. 이 수업은 환자분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세요. 정신과 치료는 주로 개인 상담을 하는데 비폭력대화 수업은 그룹으로 하잖아요. 열명이 모여 공감받지 못한 순간, 폭력을 당했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듣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요. 내가 폭력을 당해 힘들었는데 이 사람도 당하고 저 사람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치유가 된다고 해요. 참여자들의 공감은 너무너무 도움이 되고요. 그렇게 비폭력대화 수업을 하면서 그룹 전체가 치유가 되지요.

 

6주 동안 비폭력대화 수업을 하다보면 서로가 아주 끈끈해져요. 수업이 끝날 무렵 자기를 알아주는 집단이 없어진다고 너무나 아쉬워 하시기에 연습모임으로 6번을 더 만나고 있어요. 한 시간 반 예정된 시간이 하다 보면 두 시간을 넘어가요. 이렇게 이어나가는 과정에서도 변화가 생겨나요. 아마 추가로 4번 더 할 것 같아요. 모임은 명상으로 시작하는데, 명상하고 공감만 해도 도움이 되고 변화가 일어나요. 이렇게 개인상담, 커플상담, 집단치료에 비폭력대화를 적용하면서 마법 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어요.

 

 



비폭력대화를 만난 건 너무 행운이에요. 마음이 힘든 사람일수록 마음 열기가 힘든데 비폭력대화의 따뜻하고 정중한 태도가 마음을 녹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비폭력대화는 네 가지 단계를 배워서 자기 것이 되니까 힘이 생기시는 것 같아요. 비폭력대화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상담 중에 “내가 지금 나를 공감하고 있지 않는 거네요” 라고 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병원 주변에는 IT기업이 많아서 젊은 직장인들이 많이 오고, 뒤쪽에 아파트가 있어서 학부모나 학생들도 와요. 직장인들은 주로 내적인 문제가 많아요. 자기를 희생하면서 너무 참고 일을 하고 무리하다 보면 공황장애가 생기거든요. 열심히 하다 하다 못 견디면 심장이 빨리 뛰는 증상이 생기는데, 이런 분들은 대개 자기표현을 못하고 자신을 아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인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는데 자기표현을 두려워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부모님과의 관계도 들여다 보게 되는데, 성장과정에서 만들어진 코어자칼이 있어요. 그래서 코어자칼 작업까지 들어가게 돼요. 코어자칼 레벨에서 생각이 바뀌면 많은 게 바뀌어요. 정신과의사로서 그런 변화 과정을 도와줄 수 있어서 매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상담 이외에 번역도 하고 있는데, 홈페이지에 책자들이 올려져 있어요. 지금 4권이 나와 있고 한 두 권 정도 더 나올 예정이에요. 내공이 쌓이면 제 책을 쓸 때가 오겠지요. 비폭력대화 책 한권을 보고 한 가정이 바뀌는 사례가 있었잖아요. 그렇게 도움을 주는 책을 쓰고 싶어요.

 

저의 비전은 많은 동료 정신과의사들에게 비폭력대화의 진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한분 한분을 따뜻하게 만나려고 합니다.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그런 날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뚜벅뚜벅 나아가려 합니다.

 

 

 

글_윤인숙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공동대표
산청간디숲속마을 귀촌 10년차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연구위원
저서 "마음을정하다"  "고도원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