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양육자 인터뷰] 아쉬워도 사뿐히, 다음 걸음 내딛기

2024. 5. 1. 17:44기린 Life

아쉬워도 사뿐히, 다음 걸음 내딛기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 (1-2) 경기도의 이은희님

 

 

 

비폭력대화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자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배경과, 인터뷰이의 앞선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을 먼저 읽어 주세요.


https://giraffeground.tistory.com/1594

 

[기린양육자 인터뷰] 돌덩이는 모래가 되어 흩날리고

돌덩이는 모래가 되어 흩날리고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인트로와 첫 번째 인터뷰, 경기도의 이은희님 인터뷰어 : 이진희(기린언니) 인터뷰이 : 이은희(가명) 2023년 한국의 출생률 0.72. 이 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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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돌보는 은희(가명) 님의 이야기 이어갑니다. 첫째 아이(이하 사랑이/가명)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교실에서 모임을 갖고 있는데 예비 1학년 여자아이가 울면서 뛰어 들어옵니다. 누가 자길 때렸다고 지목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은희 님의 아이, 사랑이였지요. 은희 님은 다른 양육자들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살펴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가 입학할 학교가 대안학교였고, 은희 님은 다른 학부모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사랑이도 들어옵니다. 근데 여자 아이의 엄마가 '어떡해? 괜찮아?' 그러더니 사랑이에게 '그래도 때리면 안 되는데'라고 말합니다. 지켜보던 은희 님은 사랑이가 어떤 아이인지, 상황이 어땠는지 듣지도 않고 단정 짓는 다는 생각에 자극을 받습니다. 마침 옆에 있던 학부모 회장도 '사랑아, 많이 속상했어? 화났어? 그래도 때리면 안 돼.'라고 말합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은희 님은 '잠시만요! 제가 밖에 나가서 애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라고 말하고 사랑이를 데리고 나옵니다.

 

 

니가 분명히 화나거나 억울한 게 있을 텐데
그게 몸으로 나가면 엄마는 니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누구보다 엄마가 이해해 주길 바랄 텐데
네가 말로 표현해 주면 엄마 정말 단숨에 알 수 있어.
그러니까 말로 표현해 줄 수 있니? 이건 되게 중요한 거야.

 

 

사랑이는 어렵게 상황을 이야기했고, 사과할 수 있겠냐고 묻자 들어가서 머쓱해하며 사과합니다. 여자 아이의 엄마는 '그래 괜찮아. 사과하는 거 봐.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답하고, 은희 님도 '많이 놀라셨죠?' 말하며 돌아섰지만 찝찝했다고요.

 

저녁에 남편과 공유하면서 상대 부모와 다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이 재차 사과합니다. 은희 님도 입학식 때 상대 엄마와 다시 만나 죄송하다 마음이 어떠시냐 물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이따금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은희 님은 가슴이 조이고 긴장됐다고 합니다. 듣던 저는 궁금했습니다. 상대가 그 일을 자꾸 언급할 때 기분이 어땠는지.

 

은희 님은 계속 찜찜했다고 합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보면서 마음으론 공감하지만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사랑이에게 주먹밥을 먹이고 있는데 저 멀리 여자 아이의 엄마가 옷자락을 날리며 걸어와서 선생님과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봅니다. 여러 움직임과 표정으로 '뭔가 일이 생겼구나' 느낌이 왔다고요. 뒷자리 아이에게 묻습니다. '사랑아! 그 친구 잘 지내니?' 그랬더니 '어, 잘 지내~'그러면서 주먹밥을 잘 먹습니다.

 

그날 밤 10시,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선생님은 사랑이가 친구를 때린 상황만 전하고 아무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은희 님이 '선생님, 제가 아이 엄마랑 소통하길 바라셔서 이 시간에 전화하셨나요?'하고 물으니 그렇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예전 경험이 떠오르면서 빠른 대처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은희 님은 자기 연결을 시도하지만 감정이 잘 정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려봅니다. 진짜 미안하고, 여자 아이 엄마가 무척 속상하고 불안할 것 같고, 또 사랑이가 계속 때릴까 봐 걱정될 것 같고, 지칠 것 같았다고요. 이 키워드들을 가지고 고민하다 밤 11시에 카톡을 보냅니다. 다음날 보낼까 하다가 잠을 못 잘 것 같아 용기 내어 보냈더니 여자 아이 엄마로부터 너무 감사하다고 바로 답이 옵니다. 학기 초에 있었던 일도 다 녹아난다면서요.

 

은희 님은 정말 준비 되었을 때 진심을 담아 표현하고 싶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다른 배움을 얻습니다. 준비가 좀 덜 되었다하더라도 알아차림의 템포를 좀 빠르게 해서 후폭풍을 막고, 또 새로운 일이 닥치면 겪어내는 용기 말입니다. 자기 연결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차근차근 상대에게 표현하고 난 뒤의 홀가분함은 얼마나 값진가요. 하지만 그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요. 당시의 경험을 떠올렸을 때 지금은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억울함도 있어요. 제가 충분히 준비가 됐을 때 표현하면 행복하죠.
그걸 계속 연습하고 있는 상태인데 허용이 안 되니까. 묵히면 더 큰 도화선이 되니까.

예전엔 섣부르게 공감하는 게 너무 싫었는데 그 경험을 통해 흘려보내는 연습이 되었어요. 완전히 만족스러운 사과는 아니어도 발 빠른 대처가 주는 에너지도 있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괜찮았던 것 같아요.
매 순간 그렇게 버텨요. 그렇게 지내요.

 

 

내 삶은 내 삶대로 흘러가고, 아이라는 또 하나의 사람이 의도치 않은 사건을 자꾸 만들어냅니다. 그때그때 해결하지 못한 채 겹쳐지는 갈등과 아쉬움. 어쩌면 육아는 이것들을 견뎌내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키지는 않지만 연초의 경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 다소 아쉽더라도 표현한 은희 님의 용기에서 저도 배웁니다.

 

켜켜이 사건이 쌓여가는 와중에 은희 님의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 우정이(가명)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생깁니다. 은희 님은 우선 지켜봅니다. 학교의 대처를 기다리면서요. '갈등은 꽃'이라고 생각하고 소통을 중요시하는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은희 님 부부는 이 경험이 아이에게도 중요하고, 사회에 나가면 숱한 갈등 속에 살아가게 될테니 맞닥뜨리기로 합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걸 찾아 나섭니다. 당장 우정이나 우정이의 부모를 만날 마음은 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오며가며 우정이와 상대 부모를 볼 때마다 사랑이의 상황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 모습에 답답했고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은희 님이 계속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며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중에 주변 학부모들은 왜 가만히 있냐고 부추깁니다. 은희 님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말이 없으니까 괜찮은 줄 아나


저도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집중하고 상대를 공감하느라 바로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제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여기니까요. 은희 님은 이해받지 못해 힘들었다기보다는 의아하고 불안해졌다고 합니다. 일일이 다 얘기를 해야 알아주는 건가 답답하기도 하고요.

 

더불어 아이는 자발적으로 성장한다는 모토 하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아도 잘 큰다는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양날의 칼인지, 판단하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다만 우정이와 그 부모에게 감정을 쏟고 싶지는 않아서 거듭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은희 님은 학교 운동장에서 은희 님의 아이와 우정이를 포함한 여러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멀리서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이야기 합니다.

 

선생님, 아까 우정이를 포함해서 아이들이 진짜 신나게 노는 걸 봤어요.
아이들이 맞고 때리고 하는 일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아이들이 합심해서 노는 것도 자주 보셨을 테죠. 
그래서 학부모들이 보이는 반응이 안타까우셨을 것 같아요.
계속 갈등하는 게 아니라 저렇게 어울리는 모습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선생님은 '네'라고 대답합니다.

 

선생님, 저도 그걸 봤어요.

 

은희 님은 비로소 내 아이를 때리고 놀리는 우정이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듭니다. 뭐가 문제인지를 알고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게 돕고 싶은 마음도요. 아이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한 구절 한 구절을 살핀지도 며칠. 담임 선생님과 우정이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고 우정이와 만날 약속을 잡습니다.

 

은희 님은 막상 시간이 정해지자 취소하고 싶기도 하고, 아이에게 상처주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까 무척 떨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말을 잘 못할까봐 두렵다'는 내면의 소리를 발견해 누그러뜨리는 작업도 합니다. 조리 있게 논리적으로 아이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고, 좀 서툴더라도 직면하기로요. 그렇게 우정이와 단둘이 만납니다.

 

우정아 아줌마랑 마주보고 앉으니 어색하지. 아줌마는 너를 만나서 기뻐.
좀 더 일찍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에서야 만났네.
아줌마가 오늘 너에게 아주 중요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왔어. 잘 들어줘.
학교 들어와서 지금까지 지내는 동안 우정이가 아줌마 아들인 사랑이 발로 차고 돼지라고 놀리고 그랬지? 
사랑이 모자 더럽혀진 날에는 냄새 난다고 가까이 가지 말라고 놀지 말라고 했지.

 

 

아이는 '맞아요.' 대답합니다.

 

아줌마가 우정이 더 일찍 만나고 싶었지만
너에게 맞거나 놀림 당하는 사랑이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럴 수가 없었어.
근데 어느 날인가 우정이가 사랑이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딱 우정이가 친구들과 엄청 재밌고 잘 놀고 싶어 하는 걸 감지했지.
우정이도 친구들과 재밌고 즐겁고 편하게 놀고 싶지? (네)
그래서 만나러 왔어. 우정이도 배우면 진짜 좋은 거 가르쳐 주려고.

 

 

우정아, 우정이가 재밌고 싶고 장난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이 있을 거야. 

그럴 때 먼저 그 말과 행동을 하면 친구 기분이 어떤지 상상해 보고 그걸 네 가슴에 넣어보는 거야. 만약에 니 가슴이 불편하면 멈춰야 돼. 우리 연습해 보자. 사랑이를 돼지라고 놀리는 걸로 한번 해볼까?
우정이가 사랑이를 돼지라고 놀릴 때 사랑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우정이 마음에 넣어보자, 어때? (짜증나요)
그럼 멈추는 거야. 한 번 더 천천히 말할게.

 

 

이렇게 우정이와 사례를 들어 같이 연습합니다. 그리고 덧붙이죠.

 

 

이 연습을 왜 하냐면, 우정이가 친구들이 불편할 행동을 계속하면 너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가려져. 니가 얼마나 사랑스럽고 멋지냐! 축구도 잘하고. 아줌마는 친구들에게 네 모습이 잘 보여졌으면 좋겠어. 
이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쌓이고 쌓여서 2학년 3학년 훨씬 편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거야. 무슨 일 있으면 아줌마 또 널 만나러 올 거야. 왜냐하면 이거 가르쳐주러.
대화하니까 어때? (좋아요)

 

 

이야기를 마치고 우정이가 떠나려는 찰나, 아줌마가 한번 안아 봐도 되겠냐고 우정이에게 묻습니다. 아이가 좋다고 하자 은희 님은 우정이를 꼬옥 안아줍니다. 만남이 끝나자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묻습니다.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이 눈물을 흘립니다. '감사합니다. 애가 엄청 좋았겠네요. 행복했겠네요.' 하면서요.

 

다음 날 사랑이의 생일파티를 반 아이들이 함께 준비하는데 우정이가 제일 열심히 했다고 전해 듣습니다. 하지만 은희 님은 알고 있습니다. 단발성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주말이 지나자 우정이가 다시 사랑이에게 냄새 난다고 놀리거나 때리는 행동이 시작됩니다.

 

예상했어요. 저도 아들 키우니까 알잖아요.
한두 번으로 확 바뀌는 게 아니라는 거.
그래서 이제 우정이 부모님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기회는 오지 않았습니다. 우정이의 부모님은 예전부터 이어지던 가정 내의 고민 끝에 전학을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생님이 비폭력대화에 대해 호기심과 관심을 보입니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비폭력대화로 잘 녹여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수업을 듣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은희 님은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가령 전체서클이 대화를 나누는데 고학년 학부모들이 저학년 학부모들에게 '애가 크면 다 괜찮아진다'는 충고와 조언을 하는 걸 보면서요.

 

은희 님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자'는 마음으로 버팁니다. 그러다 비폭력대화센터의 선생님을 통해 '모두 모자란 상태에서 그냥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더 잘하고, 무언가 이루려고 하면 마음이 어려워져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고요. 그래서 다른 지역의 선생님과 연습모임을 시작했는데, 그 분이 은희 님의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홀가분하게 깃털처럼 제안합니다.

 

학교 아이들이 보고 싶어요

 

은희 님은 그 에너지를 받아서 교장선생님을 만나고 작은 장소를 배정받습니다. 기린학교의 시작입니다. 학기 중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 학부모와 교사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NVC 세션을 함께 합니다. 일부긴 하지만 스스로 갈등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자각하는 분들이 생겨납니다.

 

그 이후로도 학교에서 여러 갈등이 벌어집니다. 그때마다 낙심하고 또 다시 할 수 있는 걸 찾기를 반복합니다. NVC에서는 갈등을 기회라고 하는데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갈등이 기회가 될까 은희 님은 생각합니다.

 

저는 잘 연결되고 싶어요.
다른 분들하고 그리고 잘 소통하고 싶어요.
근데 여러분들은 아세요? 지금 이 상황에 여러분들은 뭘 원하고 계신지 아세요?

 

 

침묵이 돌아옵니다.

 

이게 무척 중요해요. 저는 연결하고 소통이 중요하거든요.
어떤 분은 재정적인 문제도 중요할 거예요.
어떤 분은 안전이, 어떤 분은 인정이 중요하실 수도 있어요. 

이렇게 다 다르니까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방법만 계속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는 문득 이 연습모임에 참여한 분들의 반응이 궁금했습니다.

 

생각을 계속 하시는 것 같았어요. 되게 숙연해져요.
본인들이 원하는 이상이 있으니 배움의 욕구가 크신 거죠.
진지하셨어요. 저는 그게 되게 감사했어요.

 

 

갈등이 고조되며 사랑이의 몇몇 친구들이 전학을 가게 됩니다. 은희 님은 상징적이고 또 아쉬운 상황에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문득 아이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사랑이에게 'OO랑 XX가 다른 학교로 간대. 그 이야기 들으니까 어때?'라고 물어봅니다. 아이들이 서운해 할 줄 알고 말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는데 사랑이는 대답합니다.

 

엄마, 우정이가 전학 갔을 때도 걱정했거든?
근데 나머지 애들이랑 재밌게 잘 지냈어.
OO랑 XX가 가도 나머지 애들이랑 신나게 놀면 되지.

 

그 이야기를 듣자 은희 님의 마음이 스르르 풀립니다. 내 아이의 학교생활이 망가질까 걱정하는 건 어른들의 마음이었을 지도요. 예민하게 문제를 크게 보고 있는 것은 아닌 가 돌아봅니다. 이 대화를 통해 에너지가 좀 바뀌었다고요. 그러면서 문득 알아차립니다. 내가 왜 이 모든 걸 학교 탓을 하고 있지?

 

이 대목에서 저는 야트막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은희 님이 답답하냐고 물어옵니다. 저는 가슴이 벅차올라서 압력을 줄이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은희 님은 학교 탓을 하는 대신 학부모 회의를 어떻게 다르게 할지, 본인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최근엔 어떤 분을 보며 '담담함'을 배웠다고 합니다. 그 분도 대안학교와 마을에서 비폭력대화를 나누셨다 기에 경험을 여쭈어보니 '중재나 연습모임을 해봤는데 실패했어요'란 답이 돌아옵니다.

 

은희 님은 결과에 대한 태도가 다름을 느낍니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큰 사람은 그런 얘기를 할 때 떨림이 있습니다. 안타까움이나 부끄러움, 후회나 타인에 대한 비난도 곁들여질 수 있지요. 하지만 그 분은 그냥 허허 웃으면서 얘기하시더라고요. 순간 은희 님은 지난 시간동안 너무 잘 해내고 싶었고, 사람들에게 NVC가 쏙쏙 들어가길 바랐음을 알아차립니다. '했는데 안 되면 어쩌나', 'NVC 해도 소용없네.' 같은 말이 공동체 안에서 나올까 봐 두려워하고 있구나. 깨닫습니다.

 

실패를 생각하면 애초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안전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두려움과 걱정을 디디고 우리는 계속 나아갑니다. 비폭력대화나 육아 뿐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가 그런 지도요.

 

꽤 여러 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도 막바지로 향해갑니다. 은희 님은 지난 몇 년을 떠올리며 재미있었고, 정리하는 기회가 되어 의미 있었다고요. 자신의 경험이 나눌만한 이야기인지 약간 염려하는 듯 보였습니다. 첫 번째 청자였던 저는 무척 많은 걸 느끼고 배웠는데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저 역시 인터뷰를 글로 옮기는 게 아직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뿐하게 다음 섭외 전화를 겁니다.

 

 

 

이진희

KBS에서 라디오PD로 일하며 두 아이를 돌봅니다.

비폭력대화와 대중의 접점을 늘리고자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를 썼습니다.

생애초기 양육자들과 비폭력대화를 나누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