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8. 15:18ㆍ기린 Life
돌덩이는 모래가 되어 흩날리고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 인트로와 첫 번째 인터뷰, 경기도의 이은희님
인터뷰어 : 이진희(기린언니)
인터뷰이 : 이은희(가명)
2023년 한국의 출생률 0.72. 이 숫자가 얼마나 염려스럽고 놀라운지 굳이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제 관심은 양육자로 향합니다. 이렇게 출생률이 낮은 와중에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그래서 양육자들을 만나면 순수한 호기심을 담아 묻곤 했습니다.
“왜 아이를 낳게 되었나요?”
70년대 혹은 그 이전에 태어난 양육자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시대엔 다들 당연하게 결혼했고, 결혼하면 애 낳는 건 줄 알았다.'고요. 8-90년대에 태어난 소위 밀레니얼 세대 양육자들은 입장이 조금 다릅니다.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기 시작한 세대니까요. 그들 중 제법 많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든 줄 모르고 낳았다'라고 대답합니다. 후회하진 않지만 다시 태어나면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삶에 들인 양육자들은 어떨까요? 특히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나 아이의 사춘기 이전에 양육자가 비폭력대화를 배웠다면 배우지 않은 경우에 비해 양육의 풍경이 조금 다르진 않을까요?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같이 배워서, 기린가족으로 살아가고 있다면요? 비폭력대화가 가족 안에서는 가능하지만 사회로 나아가면 갈등이 생기진 않을까요? 생긴다면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뜬구름 잡는 듯한 궁금증들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기린양육자 인터뷰 프로젝트'라는 빗방울이 되었습니다.
육아 콘텐츠를 보면 우리의 관심은 종종 아이가 '성공적'으로 자라고 있는 지로 옮겨갑니다. 물론 공감을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사춘기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심지어 공부를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 비폭력대화를 배울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결과로서의 아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부모'에 주목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성격이 좋은지, 사춘기에 부모 고생을 안 시켰는지, 공부는 잘하는지. 사이사이 언급될 수 있지만 다만 거들뿐, 인터뷰의 주인공은 양육자 본인입니다. 더불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학교-이름 등은 모두 적절히 바꾸었습니다.
비폭력대화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양육자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처음으로 만난 기린 양육자는 경기도에 사는 기린엄마, 이은희 님입니다. 9살, 7살, 3살배기 세 아이를 돌보는 은희 님은 현재 육아휴직 중이고 하루에 네다섯 시간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시댁이나 친정 식구 그리고 남편이 함께 하지만 주 양육자는 은희 님입니다.
은희 님은 부모 교육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첫 아이 생후 10개월 즈음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아이는 아직 어려서 '아이와 어떻게 소통할 것이냐' 보다 자기 자신과 연결되고 남편이 주는 자극을 잘 다루고 싶었다고 합니다. 비폭력대화를 처음 배웠을 때의 느낌을 물었습니다.
너무 놀랐죠. 이거를 내가 왜 지금 한 거야? 어렸을 때 알았으면 어땠을까!
수업 시간에 돌아다녀도 된다, 누워도 되고, 먹어도 된다.
일단 거기서부터 빗장이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낯설면서도 기뻤어요.
은희 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도 교육 시간에 종종 누워 있던 기억이 나서요. 비폭력대화를 만나기 전엔 그런 자유를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자유롭게 대하려 할 때 느껴지는 저항은 어쩌면 우리가 그런 허용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비폭력대화는 관찰-느낌-욕구-부탁 같은 말의 형식이 아니라 의식이자 세계관임을 실감합니다.
은희 님이 육아 중에 들은 수업은 배움 이상의 돌봄과 휴식이었습니다. 남편과 서로 지원해 가며 교육원에 다녀오는 그 자체로 행복했다고 합니다.
비폭력대화와 민관협치에 관심이 있었던 이은희 님은 홍성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로 연습 모임에 참여합니다. 그 경험을 통해 공동체 안에서 꾸준히 이어가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지만 사는 지역에서 같이 연습할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중재나 라이프를 듣기 이전이라 같이 하자고 요청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 삼삼오오 지역 연습모임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둘째를 낳은 후, 중재와 스마일키퍼스 과정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다양한 감정 표현 활동, 탐정 놀이 등 배운 것을 아이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나눴습니다. 아이가 자기감정을 메타인지하고, 자신도 모르던 욕구를 발견한 경험담을 들으며 경이롭고 떨렸습니다. 사춘기 등을 겪으며 갈라진 관계를 회복한 경험담은 들어봤지만 애초에 비폭력대화(NVC)로 아이를 키운 사례는 흔치 않았거든요. 아이가 어릴 때는 말을 길게 하면 실패하기 일쑤라 몸과 단순한 표현으로 전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비폭력대화를 어떻게 경험했는지 은희 님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까불면서 ‘장난이었다’고 ‘괜찮다’고 했던 경험도
놀이를 하다 보면 애 눈빛이 달라지는 게 느껴져요.
‘내가 이렇게 부당한 일을 당했구나!’, ‘내가 나를 지켜야 되는구나’ 에너지가 변해요.
막 부끄럽다고 하지 말라 그러다가 딱 집중하는 순간들이 있죠.
저는 거기에 대해서 코멘트 안 해요. 일단 보고 있어요.
아이들이 판단을 '관찰'로 바꾼 이야기도 옮겨 전합니다.
친구 아들이 저희 집에 놀러 왔는데, 그 아이가 덩치가 좀 있어요.
둘째가 '이 오빠 배 뚱뚱이야' 이랬더니
첫째가 '아니야. 배가 볼록한 거야'라고 말하더라고요.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이 집 비폭력대화 하는 집 맞네'라며 웃습니다. 아이들이 놀리고 놀림받으면서 서로 배우는 일은 흔합니다. 듣고 그냥 참으라 하기도, 너도 같이 놀리라 하기도 참 애매하죠. 이은희 님은 이전에 첫째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은희 님 (엄마) : OO야, 너 먹는 거 좋아한다고 친구들한테 돼지라고 놀림 받은 적이 있지?
넌 지금 뚱뚱한 거야, 뱃살이 튀어나온 거야?
첫째 아이 : (뚱뚱하다고 인정하기 싫음) 뱃살이 튀어나온 거야.
은희 님 (엄마) : 그럼 네가 동생에게 못 생겼다고 놀릴 때 네 마음은 어때?
정말 못 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님 다른 감정이 있는 거야?
첫째 아이 : (잠시 생각) 서운했던 거야.
은희 님 (엄마) : 맞아. 서운한데 그걸 뒤틀어서 외모를 놀리는 쪽으로 말한 거야.
너도 뚱뚱하다고 놀림받았었잖아. 진짜 속상했지?
근데 니가 더 살 있는 형을 만났어. 그럼 니가 뚱뚱한 거야 그 형이 뚱뚱한 거야?
첫째 아이 : (잠시 생각) 저 형이 더 뚱뚱한 거야.
은희 님 (엄마) : 아냐, 니가 뚱뚱하고 형이 더 뚱뚱하고가 아니라, 그건 정답이 없어.
판단인지 아닌지,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걸 놀리는 방식으로 말한 건 아닌지 아이들은 스스로 깨닫습니다. 양육자가 훈육이란 이름으로 섣불리 감정을 차단하고 행동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요즘은 아이들이 자라 서로 느낌을 묻고 욕구로 연결되는 대화가 아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 인터뷰 전에 은희 님이 아이와 통화했는데 우연히 옆에서 듣던 분이 '어떻게 아이들과 그렇게 대화할 수 있냐'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은희 님은 다른 사람들이 놀라는 게 더 놀랍다네요. '기분이 좀 어때?', '아쉬워?', '아빠한테 마음 전해볼 수 있겠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건데 어떻게 그렇게 대화할 수 있냐고 물으니까요. 제게 인터뷰이 제안을 받은 게 이런 이유인가 문득 알아차리셨다고요.
맞습니다. 비폭력대화 양육자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알리고, 심지어는 사회의 다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제가 은희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놀라움과 감동을 반의 반 만이라도 글로 옮겨지면 좋겠습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 2022년, 이 가족의 기억에 크게 남을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아이가 미디어와 관련해서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인 겁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미디어 차단을 권고했습니다. 집에서는 의견이 갈렸습니다. 은희 님은 못 보게 하고, 아이 아빠는 허용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할머니 댁에 가면 아이는 TV에 빨려 들었습니다.
미디어에 대한 부부의 대화는 겉돌았습니다. '된다'-당시 다른 이유를 댔지만 이후에 '내가 쉬고 싶어서 보여준다'라고 인정-는 아빠와, '안 된다'는 엄마의 갈등을 지켜보는 아이의 불안함이 나날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댁에서 TV를 보던 아이가 몸을 털고, 고개를 흔들고, 눈을 깜빡이기 시작합니다. 은희 님은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랐죠. 안 될 일이 왔구나. 저한테 되게 슬픈 얘기죠.
그날 밤, 남편한테 있었던 일을 얘기하니까
아이가 긴장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다고,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하지만 은희 님은 불안한 마음에 인터넷을 검색하며 진단을 내립니다. 많은 부모들이 보이는 반응이지요. 때론 곧바로 치료 기관으로 향하거나 무언가를 사는 등의 솔루션으로 이어집니다. 은희 님은 여기서 멈추고, 우선 아이를 관찰했습니다. 언제 특정 행동을 하는지, 언제 멈추는지, 자극과 관련해 내가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아이가 힘들어할 만한 상황을 내가 만들진 않았는지 돌아보며 애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에 대한 판단 이전에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연민과 연결의 의도를 냅니다.
그러자 아이를 바라보는 에너지가 달라집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왜 그럴까 같이 찾아보자.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옆에 있어줄게'라는 양육자의 눈빛을 아이도 오롯이 받았겠지요. 그리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훨씬 더 많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동시에 조부모님들과 어린이집에 상황을 공유하고, 놀라지 말고 평소처럼 대해 달라 부탁합니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은희 님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됩니다. '미디어 너무 많이 보여준 거 아니냐' 혹은 '그게 뭐라고 좀 보여주지. 안 보여줘서 이렇게 된 거다' 같은 평가와 비난이었으니까요. 가장 가깝게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있던 돌봄 선생님도 단번에 '소아 정신과 데려가요', '엄마가 집에 없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걸요' 같은 섣부른 충고를 보탭니다.
다행히 은희 님은 연습모임에서 마음 놓고 울 수 있었습니다. 남편 역시 중재 과정을 듣던 중이라 같이 공부하는 분들에게 공감 받으며 이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두 사람은 의견이 다른 데다 당사자라 서로 공감하기 힘들었는데, 각자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룹이 있어 든든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대단한 알아차림을 경험합니다. 연습 모임 안에 심한 틱을 가진, 20대 자녀를 키운 선배 양육자가 있었는데 그분 덕분에 은희 님이 더 살아있는 감정을 토해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야기를 마치고 피드백을 나누며 그분으로부터 '얼른 병원 가'라는 말을 듣습니다. 주변의 말을 들으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아는 이가 건넨 '병원 가'라는 말은 은희 님의 마음을 굳게 하고 몸을 긴장하게 합니다.
한편 그게 그분의 진짜 마음은 아니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아이가 무조건 괜찮아질 거다!'까진 아니었지만 '병원 가기 전에 내가 먼저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믿고 지지해 준 친구의 말도 도움이 되었다고요.
은희아! 세상에서 병원 가는 게 제일 쉽다.
이런 상황에 근데 사람들이 제일 못하는 게 뭔지 아냐?
아이 믿고, 자기 돌아보는 거.
그걸 대부분의 부모들이 안 하고 병원에 간다.
그래서 은희 님은 남편과 함께 스스로를 먼저 살핍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지? 우리가 점검해야 될 건 뭐지? 그렇게 온 주의를 자신들에게 기울입니다. 그러다 다음 주 연습모임에서 선배 양육자를 다시 만납니다. 그는 지난 연습 모임이 끝나고 뭔가 찝찝했다고 합니다. 계속 들여다보니, '병원 가'라는 말을 왜 했을까 싶었다고요. 은희 님은 순간 당황했지만 주의 깊게 들으며 '그러셨어요'라고 반응합니다. 이어서 선배 양육자는 답합니다.
내가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며 주마등처럼
둘째-틱을 가진 자녀-생각이 났어요.
그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 말을 한 것 같아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 그 안엔 여러 가지 의도와 욕구가 있습니다. 기여와 도움, 때로는 인정 욕구도 숨겨져 있죠. 하지만 회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음을 선배 양육자는 알아채고 표현한 겁니다. 은희 님이 이 대화를 기록해 두었는데, 옮기지 않을 수 없네요.
지난주 선생님 말씀을 듣자마자
제 가슴에 돌덩이가 얹혀 지고 머릿속에서는 비상벨이 울린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번 주에 선생님이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조언을 선택했다'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선생님 스스로를 보호하고 감정적으로 편해지길 원하신 거예요?' 이렇게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짧은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이시더라고요.
그때 제 가슴의 돌덩이가 모래가 돼서 흩날리고, 비상벨은 종소리가 되더라고요.
무겁게 가슴을 누르던 돌덩이가 가벼운 모래가 되어 날아가고, 경종을 울리던 사이렌이 은은하고 평화로운 종소리로 바뀌는 경험. 비폭력대화를 공부하고 연습한 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겁니다. 은희 님이 나눠주신 경험 덕분에 저도 새삼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아이가 지내는 상황을 보면서 양육자들도 힘을 냅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면서 알아차리고 깨닫는 것에 대한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겠다는 의지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이의 눈에 띄던 행동은 빠른 시간에 소모됩니다. 잦아들었다가 이따금 올라오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다시 부부가 '우리가 뭔가 빠뜨렸나'라며 스스로를 돌아본다고 합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본인의 긴장을 해소하는 다양한 방법을 알게 돕고요.
비폭력대화가 은희 님에게 힘이 된 경험은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2편 계속)
이진희
KBS에서 라디오PD로 일하며 두 아이를 돌봅니다.
비폭력대화와 대중의 접점을 늘리고자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를 썼습니다.
생애초기 양육자들과 비폭력대화를 나누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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