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LA IIT 살아가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 처럼 _ 윤인숙

2017. 3. 3. 15:55기린 Life


2017 LA IIT 참가 후기

 

호기심, 도전, 창조성의 시간



 

2.10일부터 19일까지 엘에이에서 열린 IIT에 참석했습니다. 작년말, LA에서 IIT가 열리고 캐서린샘이 트레이너로 참여하신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외국사람들은 어떻게 NVC를 할까? 외국의 워크샵 분위기는 어떨까? 이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살까?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숙식비, 교육비가 꽤나 비쌌습니다. 항공료까지 합치면 벌이가 시원찮은 저에겐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NVC에는 훌륭한 장학금 제도가 있으니 나도 한번 이용해보자 싶었습니다. 신청서 제출 후 벼락치기 영어공부를 위해 유튜브로 마셜선생님 강의를 매일 들었습니다. 역시나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냐.....’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지금으로서는 장학금을 줄 수 없을 것 같은데, 조만간 확답을 주겠다CNVC의 편지가 왔습니다. ‘앗싸, 잘 됐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장학금을 받으려던 사람이 참가를 취소해서 저에게 전액을 줄 수 있다는 답장이 얼마 후 왔습니다. ‘에고고... , 그래도 LA니까 교민들이 좀 오겠지. 그들과 대화하면 될거야.’ 그렇게 흐름에 몸을 맡긴 채 LA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다행히 이연미샘과 한승희샘이 나중에 신청하셔서 공항에서 두 분을 만나고 캘리포니아 오하이에 사는 캐서린샘 조카를 만나 워크샵 장소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워크샵 장소는 LA시가지가 저 멀리 한눈에 내다보이는 바닷가 근처의 아담한 피정의집이었습니다. 2015IIT만 경험했던 제게 IIT란 대규모 행사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곳은 장소도 아담하고 참가자도 40여명 정도도 적었습니다. 참가자 중 외국인은 일본인 4, 핀랜드인 1, 한국인 3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미국인이었습니다. 외국인 참가자도 일본인 두 명과 저, 이렇게 세명 이외에는 모두 영어에 능숙했습니다. 당연히 언어는 한가지, 영어였습니다. ‘미국인들은 참 좋겠다, 통역과정을 거치지 않으니 배움도 두배겠구나.’ 하는 생각에 좀 서글펐습니다.

 

열흘간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비폭력대화를 더 깊이 배우는 것이 목적인 이 워크샵에서 제가 지속적으로 연습한 것은 자기공감이었습니다. 영어가 너무도 안들려서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혼란스럽고 한스럽고 목이메는 느낌 속에서 배려와 도움이 절실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어가 안들리는 저를 자기비난 없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필요했습니다.


머리가 만땅이 되어 기능이 정지되면 땡땡이 치고 낮잠도 자면서 자기돌보기를 했습니다. 자기공감과 자기돌보기를 해서 다시 에너지를 얻고 나면 안 들려도 현존할 수 있는 힘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틀째 부터는 승희샘과 연미샘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서 항상 두 분 중 한 분과 같은 세션에 들어갔고, 전체 모임에서는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으면서 10일을 지냈습니다. 외국 IIT는 순간순간 올라오는 두려움과 막연함 속에서 자기연결하는 장소로 아주 딱인거 같았습니다.


 


재밌는 소식은 트레이너 중 한 분인 캐서린샘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발랄하고 가벼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NVC를 함께 나눈 친구들이 함께 하니 그렇기도 하겠고, 또 미국인들의 분위기가 자유로운 것도 그 이유일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과의 배움이 처음인 제 눈에 가장 신기했던 건 그들의 질문이었습니다. 트레이너가 몇 마디 시작하고 나면 바로 손을 들고 이어지는 질문들. ‘일단 좀 들어보고 나서 질문해야 하는 거 아냐?‘ 싶었지만 트레이너들은 일일이 답변을 하면서 세션을 진행해 나갔습니다


또 다른 모습은 세션 중간에 들어오고 나가는데 전혀 미안해 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중간에 나가면서 바이~” 하기도 했습니다. 전체 모임 시간에 발언할 때는 마이크를 들고 자기 자리로 가지 않고 중간에 서서 강사가 말하듯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자기표현에 자연스럽고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참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사는구나,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워크샵의 보람을 말하자면, 첫째는 홈그룹을 통해 공감과 재미를 나누는 친구들을 만난 것입니다. 롱비치에 사는 30대 대학원생 피터, 한국에서 온 40대 트레이너 연미, 내시빌에서 온 50NVC 자원봉사자 지나, 헐리웃 피디출신의 NVC 생초보자 50대 케빈, 롱비치에서 장애아클리닉을 운영하는 60대 로리. 연령이 고루 섞였지만 나이를 넘어서는 친근함이 있었습니다


존대말을 안 쓰니 그냥 다 친구였습니다. 그런데다가 사람들이 어찌나 진지하고 착하고 다정하던지요. 점심시간에 연이은 홈그룹시간에는 그날의 세션에 대한 생각을 나누거나 마음이 힘든 사람을 공감하고, 인근 바닷가로 산책이나 소풍을 나가기도 하고, 근처의 한국식당에 초대해서 한국의 맛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밤에 있을 노탈랜트쇼(강남스타일 막춤)를 준비하며 한껏 춤추며 웃었습니다. 그렇게 친해진 우리는 워크샵이 끝나고도 계속 온라인으로 연결하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영어가 고충이지만, 영어를 계속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이혼, 재혼이 흔한 미국사회라 가족관계가 복잡하기는 하겠지만 인간관계는 쿨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가까이서 마음을 나누어보니 이들도 우리처럼 가족관계에 가장 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의 부모는 이태리, 독일, 덴마크, 아일랜드, 멕시코, 스페인, 시리아 등에서 온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참가자 본인이 이란, 페루, 한국 이민자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10일간의 경험을 통해서도 이민자들이 느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짐작되었습니다.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 부모세대가 그들이 가진 두려움과 불안함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물려주었듯이, 그들의 부모들도 이민자로서의 두려움과 불안을 이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의 고통이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공통점을 알게 된 것이 친근감을 더해 주었습니다. 홈그룹간의 공감과 재미를 통해 힐링은 따듯하고 재밌는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보람은 배움에의 도전입니다. 저는 재미와 자유가 중요한데, 재밌고 자유롭게 사는데는 세계인과 마음을 나누는 영어도 참 중요하네요. 다니던 회사도 관두고 자유롭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저는 이 나이에 뭘 힘들여 배운다고 고생하나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70대 트레이너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고나니 제 나이는 이제 한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외국인들과 색다르면서도 비슷한 인간사를 나누다보니 인생후반에 더 많은 만남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 만남과 즐거움을 위해 영어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자극이 생긴 것이 두 번 째 보람(?)입니다. 그리고 NVC 이외에 NVC를 깊게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배우자는 열린 마음도 생겼습니다.

 

세 번 째는 남이 안보는 것 처럼 춤추자는 깨달음입니다. 우리 홈그룹은 노탈랜트쇼를 준비하면서 강남스타일 춤을 추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전전날 저녁에 열린 세계의 기린들시간에 우리나라에도 왔었던 로레인이 초대되었는데, 그의 발표물에는 연미샘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강남스타일 춤을 춘 영상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걸 재밌어 했기 때문에 그걸로 하자고 결정을 했는데, 저는 좀 쑥스러웠습니다. 몸치인지라 춤추는 제 모습이 남들 눈에 어찌 비칠지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런데 연습을 시작하던 날, 피정의집에서 운영하는 서점에 들렀다가 아주 중요한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Dance as if no one were watching.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Sing as if no one were listening.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Live every day as if it were your last. 

살아가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걸 천천히 읽은 후, 몸에 대한 자의식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가끔 몸이 묵지끈 할때면 저도 집에서 혼자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지. .’ 잠간의 깨달음으로 저는 몸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그리고 연습시간과 마지막날 밤,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춤을 추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했습니다. 그걸 항상 기억하려고 액자를 사다가 집에 걸어두었습니다. 어제밤에도 패럴 윌리암스의 해피를 틀어놓고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춤출 수 없다면 삶이 아니랍니다.

 

IIT 첫날 저녁,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충족하고자 하는 각자의 니드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호기심, 도전, 창조성이라고 했습니다. 뉴스레터에 실을 원고청탁을 받고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보니, 그 니드가 다 충족된 듯합니다.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신 캐서린샘, 워크샵 기간동안 도와주고 돌봐주신 승희샘, 연미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도는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윤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