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3. 21:57ㆍ기린 Life
일터에서의 비폭력대화 #4
연민의 마음을 가진 공공기관장, 서종균 (전 주택관리공단 사장)
서종균님은 저의 대학원 동문으로서, 한국도시연구소라는 민간연구소 소장을 거쳐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주거복지처장과 주택관리공단의 사장을 역임했습니다. 2015년, 아는 분으로부터 서울시에 위치한 노인공동주택의 갈등 중재를 의뢰받았었는데, 그때 퍼뜩 공공임대주택에서도 갈등중재를 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서울주택도시공사 주거복지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서종균님에게 연락을 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비폭력대화를 통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요청하니 저희 비폭력대화교육원으로 직접 방문해 주셨습니다.
ㅇ 올 초 주택관리공단을 그만두셨죠? 현재 근황이 궁금하네요.
경기도에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가 있는데, 그곳에서 발주한 연구과제를 하고 있어요.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집주인이 없어서 유지관리가 안 돼요. 집주인들은 피해당한 사람들이 고발해서 조사를 받거나 감옥에 간 상태라 주택 관리를 못하는 거죠. 건물에 문제가 생겨도 그냥 방치되니 입주민들이 굉장히 힘들어해요. 물론 입주자들이 관리비를 내니까 무난하게 관리되는 곳도 있지만, 누수 등 뭔가 큰 고장이 나면 집주인이 해결해야 되는데 주인이 없으니 물이 줄줄 새는데도 그냥 사는 곳이 많아요. 이사가고 싶어도 보증금이 걸려 있으니 이사도 못 나갑니다. 경매가 끝나야 임차인들의 권리 관계가 정리되니까 그 전까지는 보증금에 대한 채권자로서 권리 주장을 하면서 그 집에서 버텨야 하는 거죠.
현재 지방정부가 나서서 주택관리에 대한 지원을 하라는 법안을 만들고 있는데, 곧 통과될 것 같아요. 지금 하는 연구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사는 주택의 관리 실태를 파악하고 지방정부가 지원하거나 주민들이 합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면서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찾는 거에요. 조사 대상이 수원시라 수원시에 있는 피해주택에 대한 설문조사도 하고 찾아가서 관리실태를 조사하고 있어요.
ㅇ 비폭력대화를 꽤 오래전에 배우기 시작하셨네요. 어떻게 배우셨는지 궁금해요.
2005년 즈음, 유학간 아내를 따라 6년 정도 영국에서 살았는데, 그때 상담 교육을 받았어요. 집에 돌아와 교육 내용을 와이프와 대화할 때 적용해보니 재밌더군요. 그리고 2008년 영국에서 돌아온 얼마 후에 NVC1 교육을 받았어요. 교육을 받은 이유는 당시 연구하던 홈리스와의 대화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속마음은 아내와의 대화를 개선하고 싶은 욕구가 컸어요. 영국에 있을 때부터 아내와의 대화가 쉽지 않았거든요.
선릉교육원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기린인형 가지고 딸에게 고함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강사가 젊은 분이었는데 되게 즐거웠어요. NVC2는 7년 후인 2016년 서울주택도시공사에 있을 때 들었고, NVC3는 또 7년 정도 후인 2024년 초에 들었어요 그러고 보니 7년마다 들었네요. 그쯤 되니까 업그레이드할 필요를 느낀 것 같아요.
ㅇ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어떠셨어요?
부부관계 개선에 큰 계기를 주었어요. 수업을 들을 때마다 내가 조금씩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부부관계의 변화가 제일 중요했고,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야기 듣는 방식 등이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여유있게 사람들을 만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지요. 비폭력대화 덕을 많이 본 것 같아요.
ㅇ 서울주택도시공사 주거복지처장으로 계시던 2016년, 한국NVC센터에서 갈등중재 활동을 하니 공사에서 관리하는 임대아파트에서도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제가 제안을 했었죠. 그때 “그게 가능할까요?” 라면서 회의적 반응을 보이셨는데, 재밌게도 얼마 있다가 전화를 주셨잖아요. “혹시 이런 문제도 해볼 수 있나요?” 라고요.
비폭력대화를 배우긴 했지만 조직적인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었어요. 현장의 갈등은 주민과 관리자들간의 갈등, 주인과 주민 사이의 갈등인데, 그런 갈등하고 비폭력대화가 연결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던 것 같아요. 임대단지의 갈등 양상은 좀 힘들어요. 사람들도 이야기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생각했구요. 그래서 중재가 그 문제의 해결수단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비폭력대화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모든 현장에 다 적용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직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가 생기면 이 방법, 저 방법을 생각해보고,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하죠. 그렇게 해결방법을 찾다가 그 중에 나은 것을 고르게 되는데, 그때 번쩍 생각이 난 거에요. 다행히 잘 진행해 주셔서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되었지요
ㅇ 그 일을 중재하는데 성공한 이후 회사에서 힘들어하던 악성 민원 사례 열개를 저희에게 의뢰해 주셨지요. 하나는 하다 중단되었고 나머지는 아예 주민들을 만나지도 못했어요. 공사가 갈등상황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저희를 공사가 보낸 대변인처럼 생각하더라구요. 그 일을 통해 저는 중재가 가능한 구조에 대해 교훈을 얻었지만, 하나도 해결 못해서 참으로 민망했어요. 당시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는데, 회사에 중재를 제안한 처장으로서도 민망하지 않으셨을지 걱정되요.
꼭 그렇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이 세상에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스쳐서라도 경험해 보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었고, 꼭 해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비폭력대화 중재가 문제 해결 수단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직원들이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도 한 번 해보고 나중에라도 기억하면 좋겠다 정도로 생각했어요.
- 아, 다행입니다. 그 일 이후 고맙게도 다른 건으로 다시 연락을 주셔서 기업 관련 전문가인 권영선 선생님을 연결해 드렸었죠.
그랬었죠. 공사에는 12개 지역센터가 있는데 센터장이 있고 그 밑에 팀장이 있어요. 어떤 센터에서 한 팀장 때문에 나머지 직원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는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태도를 바꾸거나 영향력을 줄여서 나머지 직원들을 덜 피곤하게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팀장과 조직의 문제를 풀고 싶어서 뭔가 방법을 찾다가 다시 연락을 드렸고 교육보다는 코칭을 제안받았지요. 그런데 내부 논의 결과 한 명만 코칭을 하거나 한 센터만 교육을 하면 그 사람한테 과도하게 주목하게 될까봐 염려가 되었어요. 그래서 팀장 훈련의 일환으로 ‘리더십코칭’이란 표현을 쓰고 진행을 하기로 했죠. 저도 코칭을 받기로 했구요.
교육대상을 지역센터 팀장으로 했지만 강제적이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처음엔 다 참가하되 자신과 안 맞으면 중간에 그만둘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랬더니 그 팀장은 초기에 그만두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절반 이상이 한두 번 하고 그만뒀어요. 끝까지 한 사람은 저 밖에 없었어요.
- 코칭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나요?
1인당 10회기로 한 번에 2시간 동안 대화했어요. 권영선 선생님이 모든 센터를 돌아가면서 진행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저만 남았어요. 저는 코칭대화가 굉장히 좋았어요. 이야기하면서 눈물도 두어 번 흘렸지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저의 본질, 저의 깊은 특징에 대한 것이었어요. 제 특징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연민’이라고 말했어요. 그때 발견을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내 힘이라고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일을 할 때 힘이 느껴졌어요. ‘내가 그런 인간이구나’ 생각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풀기도 하고 문제를 바라보게도 되더라고요.
- 와, 비폭력대화의 핵심이 바로 연민인데, 그걸 인식하면서부터 내면의 힘이 느껴지셨다니 놀라워요. 듣다 보니 의문이 드는데요, 팀장들은 왜 중간에 대화를 중단했을까요?
50대 남성, 조직 문화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특성일 것 같아요. 공사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소시민으로서의 안전한 삶이었을 거에요. 조직에는 변화를 원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50대 정도 되면 대부분 호기심 같은 게 거의 없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굉장히 예외적이죠.
새로운 교육에 뭔가 다른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어야 하는데 원치 않게 끌려온 거고, 1대 1로 자기 이야기를 계속 해야 되잖아요. “지난주에 뭐 했어요?” 또는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라고 질문을 받으면 “이런 일이 있었는데 이건 좀 후회돼요.” 이렇게 얘기를 해야되잖아요. 자신을 드러낼 각오를 해야 되는데, 단계적으로 들어간다 해도 그런 의지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편한 과정이 아니었을 거 같아요.
저는 굉장히 즐거웠고 일주일이 기다려졌어요. “오늘은 어떤 느낌일까?” 늘 설레임이 있었죠. 그런 교육이 거의 없으니까요. 보통 리더십 교육 받으러 가면 강사들이 유머를 섞어 재미난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같이 하하 웃고 약간의 교훈적 메시지 주고 일찍 끝내잖아요. 그런 교육에 익숙한 이들이 코칭을 좋아했을 것이라고는 짐작이 잘 안 되네요. 그래서 참 어려웠겠다 이해가 됐어요. 개인적으로 기회일 수도 있는데,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 다들 그만두어서 당시는 실망스러웠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들에게 참 힘든 과정이었겠다 싶어요.
- 그렇죠. 자발적으로 참석해도 마음 얘기하기가 어려운데, 강제로 시키면 더 어렵죠. 뭔가 해보려고 하는 30~40대도 아니고 50대는 한계가 있었겠네요. 혹시 그 팀장은 이후 어땠나요?
그 분은 어디서나 힘든 사람이었어요. 말이 많은데 일은 안 하고 다 떠넘겼죠. 직원들에 대한 비난도 심하구요. 해코지와 이간질도 하고 윗사람 얘기도 안 들었지요. 짜증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으니까 밑에 있는 직원들이 굉장히 힘들어 했어요.
그 사람을 다른 부서에 보내려고 하는데 도저히 보낼 데가 없다고 인사부에서 말하길래 주거복지센터에 보내자고 했어요. 지역 주거복지센터는 규모가 작아요. 작은 곳은 직원 2명에 기간제 한 명 등 센터장까지 포함해서 4명 정도가 근무해요. 사람이 적고 남자 직원이 있는 곳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면 컨트롤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죠. 보내면서 직원들한테 미안하다고 말했어요. “다들 짐작하시겠지만 어렵게 결정한 거니 잘 버텨주고 큰 문제없이 지내주면 좋겠다”고. 그 분이 나이가 있어서 조금 높은 자리로 갈 수밖에 없었는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그 분이 바뀌지는 않았어요.
- 권영선 선생님도 중단한 걸 아쉽고 안타까워했지요. 최근에 기업 코칭이 붐이라 저도 코칭교육을 다시 들어봤어요. 강사가 기업코칭을 하는 분이라 기업에서 저성과자들도 코칭을 하냐고 물었봤더니 옛날에는 했는데 효과가 없어서 요즘은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뭔가를 하려는 사람한테는 효과가 있는데 저성과자에게는 효과가 없다네요. 그럼 저성과자들은 어떻게 하나요? 물었더니 무조건 ‘공감’ 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제가 뭘 기대했냐 하면, ‘코칭을 통해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들리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랬죠.
- 맞아요. 갈등이 생기면 서로 간에 이야기를 듣도록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회복경찰 활동에서는 행위자와 피해자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중재 활동을 하죠. 마음속 얘기를 안 하면 상대는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조직내 불화를 일으키는 직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참 어렵죠. 사장까지 하셨으니 혹시 다른 방법이 보이시나요?
민간기업이라면 당연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고하겠죠.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한테는 정말 안 좋은 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직이 힘들어지니까요. 그런 사람을 바꿀 수 있는 능력 있는 조직은 별로 없을 거에요. 그런데 공공조직은 해고를 못하지요. 공공조직에서도 그런 사람을 해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긴 했었어요. 특히 이명박 시절에는 직원들을 평가해서 저성과자를 실제로 해고했는데 고용노동부에 고발당했죠. 현재의 우리 사회가 그런 걸 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대안은 일단 주변 사람들이 견디는 힘을 갖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저성과자들에게도 성과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인생을 다르게 볼 기회 같은 거요.
- 코칭 효과는 어떠셨어요?
생각이 명쾌하게 정리가 됐고, 감정이 굉장히 잘 정리되었어요. 이후 가끔씩 그때 생각이 났어요. 특히 주택관리공단 사장으로 가기 전에 ‘내가 왜 공단에 가야 할까’ 생각을 정리할 때 그랬지요. ‘그곳에는 아픈 사람들이 많다, 그게 내가 사장으로 가야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그 사람들 돕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다. 가서 상처받은 사람들 잘 다독이고 일하자. 그런 기회가 살면서 많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었어요.
- 코칭을 받을 때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권영선 선생님이 법정에서 가사조정하는 일, 교사들과 함께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는데, 법원에서 하는 일이 재밌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직에는 기존의 사고방식이 있는데, 사고방식이 달라져야 다른 시도가 가능하죠. 법원에서 그런 시도를 했다는 게 참 재밌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후에 ‘프리즌 서클’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교도소에서 적용한 이야기였어요. 여기서는 ‘비폭력대화’ 라는 표현보다 ‘서클’ 이란 표현을 쓰는 것 같아요. 그 책을 읽은 후 ‘비폭력대화가 적용 안 되는 사람은 없을 거 같다. 제일 마지막 사람한테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 공사가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는데 내부 관계도 편안한 조직이면 참 좋겠다, 내부 관계가 편안해지면 사람들이 훨씬 여유로울 거고, 그러면 우리 사회가 이 조직의 덕을 참 많이 볼 텐데... ’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있어요. 코칭의 영향인지는 모르나, 서울주택도시공사에서 한 가지 일을 시도한 적이 있어요. 공사 조직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여겼던 게 부서간 업무 협조가 안 되는 핑퐁 문화였어요. ‘이게 조직을 망치고 있다. 부서들 간에 왜 그렇게 싸우는지 참 신기하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뭔가 다른 방식을 경험해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중심이 되어 부서간 쟁점 사안에 대해 같이 모여 이야기 나누고 해결방안을 만들어보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우리가 만든 합의가 깨졌어요. 저쪽에서 먼저 깨니 그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가지고 서로 비난했어요. 그리고 원점으로 되돌아 갔어요. 그래서 그걸 책임진 본부장들을 만나 “돌아가서 거짓말하면 안 된다. 이런 걸 봐주면 말이 되냐, 이대로 안 할 것 같으면 내가 나가겠다, 똑바로 지시해라“ 그랬지요. 저도 싸움꾼이 되어 사람들에게 욕하고 싸우기 시작한 거에요.
그러고 나서 후회한 거죠. ‘조직에서 못할 일도 있구나, 조직이 바뀌면 좋겠다고 좋은 뜻으로 시작했지만, 내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과 감당할 수 없는 게 있는 거 같다. 이 문제는 조직이 갖고 있는 오래되고 견고한 문화였는데, 다른 시도를 한 번 하고 변화를 기대한 게 너무 과했다’ 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양한 시도를 하셨군요. 주택관리공단에서는 그 간의 경험과 비폭력대화가 힘이 되었나요?
서울도시공사에 6년 있다가 6개월 쉰 후 주택관리공단 사장으로 갔어요. 공단에는 2년 8개월 있었는데, 그 동안 축적된 게 있으니 영향을 주었겠죠.
공단에서 일할 때 제일 마음에 두었던 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욕먹는 직원들이었어요. 수시로 욕을 먹으면 너무 불행하게 느껴지겠다 싶었어요.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사람들이 존중받으면서 일한다고 생각할만한 여건이 아니에요. 그런데 욕까지 먹으면 ‘내가 뭘 하려고 여기에 있나’ 하는 느낌을 받겠다 싶었어요. 그것을 바꾸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게 제일 큰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수시로 했죠. 기회될 때마다 열심히 했어요. 사장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들 처지를 이해해 주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직원들이 인정해 주는 듯 했어요. 직원들과 마음이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공단에 가서 제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우선적으로 직원들을 철저하게 보호하겠다는 생각이었지요. 이전의 방식은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서 무조건 친절해라, 입주민하고 문제를 일으키지 마라, 문제를 일으켰으면 빨리 해결해서 민원이 외부로 나가거나 본사로 올라가게 하지 마라.’ 였어요. 소위 ‘갑질 민원’이 있을 때 적용하는 행동 지침이 있기는 한데, 큰 의미는 없었어요.
제가 직원보호를 첫 번째로 삼게 된 계기는 신입사원과의 대화였어요. 40명과 온라인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한 명이 ‘저 억울해요’ 하면서 울었어요. 그 후 억울한 직원 안 나오게 만들자고 2년에 걸쳐 반복해서 이야기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제일 좋은 무기였어요.
-그 직원은 어떤 게 억울한 거 였나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욕 먹은 거. 내부에서 욕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비중으로 따지면 99 대 1로 주민들한테 욕 먹는 게 많아요. 업무 스트레스보다 민원 스트레스가 더 많다고 생각해요. 이게 줄면 업무 효율도 굉장히 높아질 거라고 생각하고요. 욕을 한 시간 정도 듣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져서 반나절이나 하루가 날아가요. 직장에서 의미있는 일을 한다고 느껴야 하는데, 직원 보호가 안 되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욕을 안 먹게, 적어도 뚜드려 맞지는 않게 만드는 게 첫번째다, 그거부터 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 후 아파트단지를 방문하면 비상벨이 설치되어 있냐, 불쑥불쑥 안 들어오게 출입문에 차단장치가 있냐, CCTV는 잘 녹화되냐, 전화기에 녹음 장치가 달려 있냐. 녹음 장치 실행해 본 적 있냐 등을 확인했어요. 그리고 콜센터에 들어오는 민원들을 보면서 관리소에 전화해서 관심을 보이고 상처받은 직원은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또 악성 민원대장을 읽어보면서 작년에 당한 직원이 현재 같은 단지에 계속 근무하냐, 이런 걸 자꾸 물어보고 대책을 수립하도록 했어요.
처음 6개월 동안은 과거에 만든 대책을 그대로 갖고 왔어요. 그런데 1년 정도 지나니 다른 대책을 가지고 오기 시작했어요. 이런 사안과 관련해서 소송을 하거나 민원이 다른 곳으로 올라가도 큰 문제 없다고 이야기 했어요. 그래서 소송할 일 있으면 개인이 하지 말고 우선 지사에 이야기한 후 본사에 이야기하라고 했어요. 실제로 소송을 진행한 건 없지만 많이 달라졌어요. 그런 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조직이 직원 보호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조직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직원들이 가졌어요. 그건 조직에서 제일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그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 임대아파트에는 왜 그렇게 소위 ‘악성민원인’이 많은 걸까요?
저는 예전에 임대주택 관리사무소에서 인간 취급 못 받고 무시당했던 입주민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을 조직해서 임대주택법을 바꾸고 임차인대표회의를 도입하는 일도 했어요. 그러다가 완전히 반대쪽으로 간 거죠.
악성민원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입주민들 상태가 어렵기 때문일 거에요. 대부분 가난, 소외, 질병 등이 결합되어 있는 현상들일 것 같아요. 폭력을 당한 경험이 많은 사람도 있고, 젊을 때부터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고, 치매 초기라 계속 민원을 넣는 경우도 있고, 젊었을 때 잘 나가던 사람들이 나이 들고 가난해져서 성격이 험악해진 경우, 그 안에서 소위 ‘대장질’하고 싶어서 그런 경우 등, 여러 가지가 섞여 있어요. 어디선가 인정받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안 그럴 분들이 제법 많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먼저 우리 직원을 돕는 게 입주민 돕는 일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원들 마음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껴야 주민들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지, 늘 공격받는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대응 밖에 할 수 없어요. 언제든지 고함과 행패를 당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 주민을 대하면 관계도 안 풀리고 도울 수도 없어요. 직원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여건이 되면 얼굴도 풀리고 말도 편하게 나눌 수 있고, 혹시 민원인이 뭐라고 하더라도 여유 있게 대응을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임대료 연체로 퇴거절차를 진행하는 직원들은 임대료가 연체된 사정까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여유가 생기면 그게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우리의 업무는 임대료 납부 독려나 퇴거조치가 아니라 체납 원인을 확인하고 필요한 지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걸 목표로 우리 조직이 임대료와 관련해서 어떻게 반응하나를 지켜봤어요. 2년 반이 지나니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여유가 생기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 직원들을 보호하는 게 궁극적으로 입주민을 돕는 방법이었던 거에요.
- 지난 달에 인터뷰한 분은 논산 영구임대단지 주변에서 편의점을 하는 분이었어요. 고객들을 공감으로 대해주시는 분인데 편의점 장사가 안 돼서 내년에는 접을 계획이셔요. 문을 닫으면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지금 퍼뜩 드는 생각이 임대아파트에서 입주민을 공감해 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싶네요
그 얘기를 들으니 공단에서 있었던 즐거운 일이 생각나네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는 109명의 주거복지 전담 인력이 있어요. 단지마다 한 명씩 배치되어 정신질환자나 알콜중독자, 퇴거위기가구 상담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 분들 역할 중 제일 중요한 게 관리소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이었어요. 술 먹고 깽판 치는 사람,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는 사람, 집에 쓰레기 쌓아놓은 사람들을 관리소에서 제일 어려워하는데, 이런 일을 대응해주면 민원의 양이나 질이 확 내려갈 거다, 그리고 관리소에서 제일 어려워하는 일을 해주기 때문에 관리소 직원들도 이분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생각으로 직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을 먼저 맡겼는데, 그로 인해 관리소 직원들과의 관계도 잘 만들어졌고, 입주민들과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면서 동네 문제가 조금씩 줄어드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 주거복지 전담인력 파견제도를 서종균님이 만드신 거군요.?
그건 아니고, 제가 오기 전에 시범사업으로 10개 단지에서 하고 있었는데, 체계가 잡혔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그런데 체계화된 계기가 있었지요. 제가 부임한 직후 영구임대단지에서 정신질환자로 인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 일에 대해 ‘국민의힘’ 에서 관심을 가졌어요, 당시 정책위원장이 임대단지에 정신질환자가 많다는 말을 해서 욕을 먹는 일이 있었거든요. 그 후 논의과정에서 영구임대단지에 주거복지 전담인력을 파견하면 정신질환자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고 저희가 이야기를 했고, 그걸 국회에서 밀어줘서 기재부로부터 예산을 받았어요. 그 예산으로 영구임대단지에 전담인력을 한 명씩 배치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눈에 띄는 성과가 나왔어요.
- 올 초에 임대단지 관리자 대상 ‘공감소통교육’을 했는데. 민원대응이 제일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 중 몇 분이 자신들을 위해 대화법이 정말 필요하다며 배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저소득층일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서 불만이 많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셔요?
폭력적인 사람도 있지만 착하고 친절한 분들이 더 많아요. 조용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많지요. 그런데 폭력적이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만 눈에 보이잖아요. 관리소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거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임대아파트 주민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 캐서린 선생님에게 소위 ‘갑질 민원인’ 같은 사람들이 전 인구의 몇 퍼센트나 될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8% 라고 수치를 말씀하시데요.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은 비폭력대화를 하는 사람들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욕하는 민원인이 하루에 한 번은 꼭 온다고 이야기 하는 관리소들이 많아요. 그 숫자를 아파트단지에 갈 때마다 물어봤어요. 와서 고함지르는 사람들이 줄었냐, 얼마나 줄었냐, 일주일에 몇 번 오냐는 식으로 물어봤거든요. 공통적으로 주거복지 전담인력이 배치되고 나서 줄었다고 했어요. 많이 줄었다, 한결 좋아졌다고 아주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는 데가 많아요. 숫자로 따지면 10이었던 게 적어도 5 이하로 준 것 같아요.
- 이 정책을 적극 홍보해서 인원을 더 늘리면 좋겠네요. 이 분들이 소위 ‘공감사’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그렇죠. 이 분들이 만든 아주 극적인 상황이 있어요. 아파트단지 앞에서 늘 술을 마시던 남자분 6명과 이분들이 꽃꽂이를 했데요. 술 먹는 남자들이 꽃꽂이를 했다니 상상이 잘 안 되는데, 꽃꽂이를 너무 좋아했대요. 그리고 다신 술 안 먹겠다며 술 마시던 자리에 화단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 대단하네요. 그 분들하고 인터뷰 한번 하고 싶네요.
소위 ‘문제주민들’, 늘 화가 나 있고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동네에 한 명만이라도 있으면 동네가 달라져요. 동네에 복지관도 있고 사회복지사도 있지만 그 분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동네에는 복지관이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주거복지 전담인력에게 당신들 과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되든 안 되든 계속 가봐라. 문을 안 열어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안부라도 물어 봐라, 그러면 서서히 관계가 생기고 서너 달 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거다, 그렇게 말하고 역할을 주었는데, 정말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낸 거죠.
- 그 분들이 어떻게 대화를 진행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아마 비폭력대화 방식으로 대응을 했을 것 같아요. 제가 남성 연습모임을 진행하는데 보험회사에서 민원담당자로 오래 일하신 분이 오셔요. 어떻게 응대하셨길래 그 일을 오래하셨냐고 물어보니, 일단은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무조건 공감한 후, 최대한 빨리 처리하겠다고 말하면 악성 민원인이 오히려 고객으로 바뀐다고 하더군요. 선물이나 식사대접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초기 대응을 잘못하면 민원이 민원을 불러오는 사태가 생긴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규정상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라고 하면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 추가 민원을 더 넣는데요. NVC1 수업에 나오는 ‘공감을 방해하는 10가지’가 바로 민원이 민원을 불러오는 말이더라구요. 그런데 공감하는 말을 하면 고객의 반응이 금방 달라진다고 해요.
저도 주택관리공단에 있을 때 사람들이 비폭력대화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비폭력대화를 배운 사람들이 조직내 군데군데 있으면 조직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겠다 싶었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 권영선 선생님이 특강을 한 번 가셨죠?
네. 권영선 선생님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고, 그 다음에 교육팀에게 비폭력대화 프로그램을 하나 넣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죠. 특히 우리 직원 중에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직원들만 모아서 몇 차례 정도 대화수업을 하면 마음의 위로를 받지 않겠냐고 교육부서에 제안했는데, 추진하는 걸 못보고 나왔네요. 또 한가지 시도한 방법은 직원들하고 식사하면서 개인 이야기를 하게 될 때 제가 대화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면서 비폭력대화 이야기도 했죠. 그랬더니 사람들이 굉장히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 서울도시공사에서 6년, 주택관리공단에서 3년, 총 9년을 공공기관에서 일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신가요?
기관에 들어가 일한 건 굉장히 잘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다 한 거 같아요. 저는 대학원 졸업 후 1994년부터 사단법인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일했어요. 중간에 휴직하고 6년 영국 갔다 와서 다시 일한 거까지 합쳐서 20년 정도를 민간연구소에서 일했어요. 도시연구소에 들어갈 때는 거기서 70살까지 연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우리 분야 연구를 다른 데서는 거의 안 하니까 우리라도 꾸준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에요. 잠간 현장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지금 마음은 예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연구를 하려고 해요. 지금 하는 조사연구 같은 거요.
인터뷰의 묘미는 사람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아는 사이였는데도 인터뷰를 통해 완전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남자들보다 부드러운 사람이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특성이 ‘연민’ 임을 발견했다니요. 그걸 인식한 이후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단단한 힘을 느끼게 되었다는 말도 놀라웠습니다. 임대단지에서 대하기 힘든 사람을 공감으로 대해주는 주거복지 전담인력 이야기도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매일 술만 마시던 사람들을 꽃꽂이를 하게 만들고 술 마시던 자리를 화단으로 바꾸게 할 정도로 공감에는 아름다운 힘이 있음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이 널리 널리 퍼져서 외롭고 분노에 찬 사람들을 공감으로 돌보는 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그래서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하고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합니다.
인터뷰 : 윤인숙 (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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