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10. 14:55ㆍ기린 학교 /교육 후기
까빠시따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의 일부를 만나다
우리 마을은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아이들 250여명이 살았던 곳이다. 내가 살던 곳이 이런 비극의 마을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길거리에서도, 슈퍼에서 장을 보다가도 세월호 희생 학생 부모들을 만난다. 어떤 분은 인사를 하고 어떤 분은 내 눈을 피해 버린다. 또 어떤 분들은 밤늦게 전화해서 아이를 잃고 자신의 가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절규하듯이 이야기를 한다. 또 어떤 분은 그날의 충격으로 현실의 세계와 비현실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시는 분들도 있다. 돌보는 분들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가와 같이 그 분을 만나기도 한다. 마을에서 나는 글만 쓰고 있을 수 없어 닥치는 대로 다양한 일들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7월에 ‘치유와 공동체 성장을 위한 안산 0416 공감 사랑방’모임에서 ‘이웃 대화 진행자’ 프로그램을 할 때 인연을 맺었던 한국NVC센터 박성일 선생이 모임 카톡에 ‘트라우마 치유 진행자 워크숍’이 있으니 안산에 있는 분들은 참여해 보라고 권했다. 나는 ‘트라우마 치유 진행자’라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잖아도 마을에서 세월호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많은 부모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 글만 써온 사람으로 그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그냥 함께 만나 그 분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수다 떨고, 위로해 주고 그런 일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 더 부모님들과 잘 만나가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참여하게 되었다. 어떤 내용과 형태로 수업이 이루어질지 아무 예상도 하지 못한 채 기초수업과 심화수업으로 나뉜 4차례에 걸친 수업에 참여하였다.
1. 몸을 통한 트리우마 치유는 가능하다
수업을 진행해 준 패트리샤 케인선생은 그동안 세계의 수많은 전쟁과 재난이 일어나는 고통스런 현장에서 이런 작업을 50여년 동안 해온 분이었다. 에이즈와 내전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몇 백만명이 학살을 당한 르완다, 내전 상태인 아프카니스탄, 동티모르, 전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팔레스티나, 재난지역인 일본이나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4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이런 고통 속에 있는 분들을 만나왔다고 했다.
선생은 다른 군더더기 설명없이 바로 몸동작(바디워크)으로 들어갔다. 자기영역 확보, 빛 샤워, 손가락 감싸기, 감정자유기법(EFT) 등 몸동작을 계속했다. 이 점이 신기했다. 왜 이렇게 몸동작에 몰입하는가. 쉬는 시간에 패트리샤 선생에게 물어보았다. 상대에게 말을 걸거나 마음 안에 있는 말들을 꺼내게 하는 작업도 중요하겠지만 그냥 아무런 말없이 몸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힘들고 어려운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해 왔다. 그 분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말을 함으로써 고통을 덜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꼭 말을 하게 할 필요 없다니,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생은 피해자들의 몸을 보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몸은 심리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들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었다. 몸을 잘 움직여 줌으로써 트라우마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불안, 위기, 분노, 공황 등 많은 심리적인 요소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몸 안에 있는 ‘치유본능’을 깨우는 것이다. 살해 위협을 당할 정도의 정치적인 억압이 심한 곳이나 인간의 힘을 뛰어넘어버리는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파괴되지 않게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적인 상황이나 자연적인 재난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 상황에서 자신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교의 수련방식과 인도의 힌두교 교도들의 수련방식과 비슷한데 (실제로 정치적 억압을 당한 티벳 스님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것들이 스님들의 전문적인 수련방식이라면 패트리샤 선생의 몸동작은 아주 일상적인, 평범한 사람들 누구나 할 수 있는 쉽고 단순한 몸동작이었다. 그 동작들을 통해 우리가 언제든지 몸 안에 안심하고 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감정자유기법 할 때 나는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너무 깊어서인지 몇 번 반복하는 것 가지고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단지 마지막 프로그램 할 때 옆 자리에 앉은 젊은 친구가 내 파트너였는데 내 머리와 몸에 따뜻한 손을 올려주자 아주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평화로움을 체험하였다. 솔직히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수련을 했는데 평상시와 별 나아지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중간에 손 스위치를 할 때는 가슴이 답답하여 힘들기조차 했다. 수업 끝나고 안산에 내려와서 세월호 어머니를 만났다. 2시간 정도 밥먹고 이야기 하다가 함께 간 작가랑 같이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몸이 피곤하지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효과 본 건 없지만 전체적으로는 몸이 시원하고 가벼워진 것 같다.
2. 치유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후대에 유전된다
세쨋날 수업 시작하기 전과 쉬는 시간에 나는 40분 정도 패트리샤 선생과 인터뷰를 하였다.
패트리샤 선생에게 까빠시따르(나를 치유하고 세상을 치유하기)의 방법들이 고통을 당한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선생은 한 사례를 소개해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한쪽 몸이 마비된 한 여성이 선생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여성의 몸을 검사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알고 봤더니 이 여성은 자신 앞에서 오빠가 죽임을 당하는 고통을 겼었던 사람이었다. 그 마비는 트라우마 때문에 온 것이다. 선생도 그 상황은 상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여성은 계속 희생자로 남길 원하면서 치료를 거부했다. 그래서 선생이 “계속 이런 상태로 남길 원하는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그 여성은 이렇게 대답을 했다. “선생님, 나 살고 싶어요.” 그 여성은 태핑(두드리기, 바디워크의 한 종류)을 가르쳐준지 사흘만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니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이 태핑을 가르쳐줘서 많은 환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또 르완다에서는 3개월만에 수백만명이 학살당하는 시기에 가족 22명을 잃은 할머니가 있었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가족이 토막나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름이 앙투와네트였는데 그녀는 매일 악몽과 섬광 등 심한 트리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 참여한 몬두리얼(?)프로그램에서는 아무 효과가 없었다, 몇 년후에 시카고에서 우연히 만나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2시간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기분이 좋아진 앙투와네트가 “선생님 언제 르완다에 오실거예요?” 하고 물었다. 선생은 사실 좀 겁이 났다. 그래서 펀딩받으면요, 하고 대답을 했다. 펀딩을 못 받을 것 같아 그렇게 대답을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짧은 시간안에 펀딩이 나와서 다시 르완다에 가게 되었다. 선생은 느낌이 바로 오는 몸으로 하는 작업을 신뢰한다고 했다. (트라우마는 하나로 이루어져 있지만 않다. 우리는 살면서 성적인 학대, 국가 폭력 등 여러 가지 트라우마를 동시에 겪는다. 단지 큰 트리우마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인간의 몸 안에서 트리우마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시스템이 변하지 않으면 효과를 많이 볼 수 없다. 병원, 의학, 행정, 학교 체계가 변화되어야지 진정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은 그걸 잘 치유하기 위해 잘못된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트라우마는 잘 치료되지 않으면 후손들까지 영향을 미친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을 연구하는 학자 중에는 트라우마로 인한 유전자의 변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가 트라우마를 겪으면 자녀들이 트라우마를 회복하는 능력이 약화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도 있다. 실제로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폭력에 견디는 힘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패트리샤는 이 약화된 능력이 회복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뇌에는 뇌탄성력(Neuro plasticity)이 있어서 제대로 된 치유법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뇌의 구조를 변화 시킬 수가 있다. 그래서 그녀는 한국비폭력대화센터의 치유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3. 고통당하는 사람에게서 자기보호를 할 줄 알아야한다
패트리샤는 피해현장을 돌아다니다보니 피해자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스스로를 보살펴야 하며 고통스러워 에너지를 심장까지 빼앗아가는 사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아야한다고 했다. 한번은 선생이 엘살바도르에서 활동할 때 너무 힘든 사람을 만나 그분과 대화하고 팔이 마비되어 4주간 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흡수해 버려 몸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이 이 부분을 좀 빨리 께달았더라면 더 잘 자신을 돌보면서 활동을 했을텐데 넘 늦게 깨달았다고.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도 중요하지만 그 옆에서 돌봐주고 있는 여러분들의 치유도 아주 중요하다. 피해자들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스스로 치유를 할 수 있어야 피해자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다”
선생은 한국에 머무는 닷새 동안 이 말을 강조하여 우리처럼 피해자들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포용해주고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지키면서 피해자들을 돌보는 몇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왼발을 오른발위에 올리고 깍지를 낀 손을 자신의 명치 위나 단전에 올려놓으면 되었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가 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몸 안에서 순환한다고 한다. 마지막 날에는 ‘자기보호’를 할 수 있는 심도 깊은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타인의 고통을 밖으로 내 보내고 새로운 에너지로 채우는 방법인데 개인적으로 이 방법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사람에게 있는 에너지 장이라는 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그걸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선생의 친구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는데 이 사람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에너지 색깔로 다른 사람들을 구별한다고 한다. 한번은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앉은 자리에 그 사람이 앉으려고 해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왜 그랬느냐고 물으니 앉아있는 사람에게서는 아무런 에너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알고 봤더니 그 앉아있는 사람은 극심한 트라우마를 앓고 있어서 에너지가 거의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마지막 날 그녀가 안산에 왔다. 안산에서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 생존학생들, 형제자매들을 돌보던 많은 활동가들이 그녀와 함께했다.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마음껏 내 자신을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에는 유가족이 힘든데 내가 뭐가 힘들다고 이렇게 엄살을 떠는가, 내가 힘들어도 그 마음을 보살펴주지 못했다. 피해자들만큼은 아니라도 그에 못지않게 그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힘들었다는 마음을 온전히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 내 고통을 돌보는 일 뿐만이 아니라 피해자 곁에서 지금 많은 일들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들도 더 깊고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이분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자 세월호 유가족들뿐만이 아니라 한 집 걸러 한 집 아이들이 세상을 뜨면서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분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국가는 안산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도 안산시민들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돌봐주지 못한 마음들이 냉소나 경멸로 변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유가족들과 서로 상처주고 상처를 받을까봐 우려가 된 것이다. 이런 안산시민들의 마음도 온전히 보살핌을 받는 작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들은 지금 그런 안산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중심지역인 선부동 동명상가에서 매주 금요일 주민들과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안산시 희망마을 추진 사업단’에서 마을주민 1000명에게 세월호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많은 주민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이웃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고 답을 했다고 한다. 주민들 마음 안에 자연스럽게 이웃과 공동체의 소중함이 자리 잡고 있었고 서로를 위한 마을을 원하고 있었다.
4. 내 안의 성소를 만들겠다
5일간의 패트리샤선생과의 만남은 나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의 일부를 보는 눈을 열어주었으며 나에게 가장 부족했던 ‘자기보호’에 대해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심화과정에서 ‘차크라’할 때 나는 4단계인 가슴형 인간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많지만 3단계인 힘의 중심이 부족했다. 때로는 인간관계 안에서 개인적인 욕구를 추구하려는 의지도 필요한 것인데 나는 그것을 성숙하게 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욕구를 너무 비워놓고 살았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생식과 창조의 힘이든 직관의 힘이든 개인욕망의 힘이든 다 균형 있게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내 안의 성소도 아주 아름답게 만들고 강화시킬 생각이다. 그리하여 세상 살면서 나를 파괴시키는 많은 것들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파괴되더라도 회복의 탄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런 힘으로 고통당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힘을 키우고 그들과 함께 이 지긋지긋한 세상을 함께 건너가야겠다.
김순천
작가이자 르포문학 강사. 젊은 르포작가들과 함께 『부서진 미래』,『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외 여러 권의 책을 펴냈고
르포집으로는 『대한민국 10대를 인터뷰하다』와 『나쁜 기업보고서』가 있다.
최근 작가기록단 단장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다른 작가들과 함께 펴냈다. timeks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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