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편의점 점주 오부천님

2024. 9. 4. 14:18기린 Life

논산시 편의점 점주 오부천님

위로와 공감의 편의점

 

 

 

2023년 11월 한국NVC센터 악플세탁소 개소식이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 편의점을 하신다는 오부천님이 참석하셨는데, 힘든 고객도 공감하는 말 한 마디면 순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실전대화 현장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베스트셀러인 ‘불편한 편의점’을 읽은 후부터 편의점 사장님들을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차라 더욱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드디어 2024년 8월, 그분을 만나러 논산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논산시청 정류장에 내리니 건너편에 **편의점이 보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부천님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곧 이어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계산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누구신지 물었더니 잠깐 가게를 봐주러 왔다고 합니다. 이모라고 하기에 친척인가 싶었습니다.

 

 

ㅇ 조카신가요?

고객으로 자주 오면서 친해진 분이에요. 40대인데 혼자 살아요. 결혼을 했었는데 아내가 집을 나갔다고 하네요. 저를 이모라고 불러요.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이모, 삼촌이라고들 부르죠. 장애가 있지만 부모님이 따듯하게 잘 돌봐주셔서 그런지 사회 활동에 아무 지장없이 잘하는 것 같아요.

 

ㅇ 선생님이 먼저 도와달라고 하셨나요?

여기 경영이 되게 어려워요. 생각보다 방문객 수도 적고, 경기도 워낙 안 좋잖아요. 그래서 저 혼자 운영하는데 저 친구가 혼자 어떻게 하냐고 그러면서 자기도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없어서 맨날 방황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서 일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어요.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고, 상황따라 편하게 해 보라고 했죠. 그렇게 5월 말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요.

 

ㅇ 논산이 고향이신가요?

친정은 인천이고 결혼 후부터 인근 부여에 25년 째 살고 있어요. 편의점을 이곳에 연 이유는 오빠 때문이에요. 오빠가 인천에 살다가 조용한 곳에서 저랑 가까이 살고 싶다고 해서 근방에서 옛날 시골집을 찾았는데 2020년 여름쯤 논산에서 집을 구하게 되었어요. 오빠는 삼성 에어컨서비스 기사로 20년 이상 일을 했는데 정신적으로 힘들어 술을 마시면서부터 이혼도 하고 가족들도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래서 마음편한 곳에서 지내면서 본인 기술로 살아보겠다고 내려와 1년은 회복되는 듯 했는데 겨울에 일이 없어지면서 다시 술을 찾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부랴부랴 편의점을 시작했어요.

 

편의점 하기 전에는 고정적인 직장이 없었어요. 상담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긴 했는데 저하고는 안 맞더라고요. 상담을 하고 싶은데 책상에 앉아 서류만 챙기는 일이라 3개월 하고 그만두었어요. 그 후에는 그냥 봉사활동만 했는데, 신랑이 애도 컸으니 직장생활 좀 해보라고 하면서, 자기 친구 와이프가 대전에서 편의점을 하는데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자리 알아보고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그때 오빠도 불면증이 있어서 밤에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편의점이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싶어 같이 시작했지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얻은 건 하나도 없어요. 경제적인 손실도 엄청나게 입었고 오빠도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오빠는 사는 걸 되게 힘들어하면서 술로 이겨내려다가 알콜 중독에 빠졌어요. 알콜중독을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무지 애를 썼는데, 너무 오랜 세월 방황을 하다 보니까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넘어지더라고요. 제가 약물 치료도 권해서 시작했는데 사실은 치료가 아니라 그냥 그 상태에서 머물게 하는 거였지요. 그런데 더 안 좋아지더라고요. 결국 술을 많이 마시고 자다가 그냥 하늘나라로 가버렸어요. 이제 3개월 됐네요.

 

편의점은 5년 계약인데 내년 12월이 만기예요. 경영이 되게 어려워요. 나아지는 게 아니라 자꾸 기우는 추세로 가니까 가족과 신랑이 다 접자고 해요. 한 6개월 운영을 해보니까 전혀 안되더라구요. 그래서 이 자리는 아닌 것 같아서 폐업을 해야 될 것 같다고 회사에 말했더니 위약금이 엄청나더라고요. 결국 폐업을 못하고 그냥 하고 있어요. 계속 적자인데 위약금 내는 거 보다는 지금 생기는 적자가 더 적으니까 그냥 끌고 가는 거에요. 편의점은 모르고 하면 진짜 지옥을 왔다 갔다 해요. 편의점 중에 살아남는 곳은 그닥 많지 않아요. 열 명이 시작하면 6, 7명은 쓰러져요. 폐업이 줄줄이 밀려 있어서 폐업하고 싶어도 빨리 안 된데요.

 

 

ㅇ 비폭력대화는 언제 처음 배우기 시작하셨어요?

2016년 대전에서 김도현 샘에게 처음 배웠어요. 책으로 먼저 접했지요. 애가 하나인데 학교에 보내게 되니까 아이한테 엄청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초등학교 입학 후 차로 아이를 등하교 시켰는데 걸어서 데리고 다니라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아침에 아이와 학교 가는 김에 아이들 교통지도 봉사를 6년간 했어요. 교통봉사를 하면서 놀란 건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 보이는 거였어요. 아이들이 왜 이럴까? 아이들의 그런 모습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때 최성애 교수님 책을 접하게 되었고, 박근혜 정부 때 4대 악 근절 정책이 세워지면서 거기에 관심이 갔어요, 마침 우리 지역에 성폭력상담소가 있었는데 봉사하러 찾아가서 같이 공부하다가 비폭력대화를 만나게 되었어요.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상담이 다는 아닌 것 같았어요. 뭔가 답답했어요. 계속 책을 보고 교육을 받는데도 뭔가 자꾸 부족한 거예요. 뭐지? 하면서 대화방법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엄청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비폭력대화’ 라는 문구가 확 와닿더라구요. 그래서 비폭력대화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NVC1 과정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죠.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은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방법을 찾으려고 많이 애썼던 것 같아요. 일상 언어로 아무리 응원해주고 좋은 말을 해주고 칭찬을 해줘도 그때뿐인 거잖아요. 솜사탕 먹고 사라지듯이. 그런데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대화를 하니까 사람들 얼굴에 화색이 확 도는 게 느껴졌어요. 여기에는 이야기 하러 마실 오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인근 논산시청 아동학대 팀 직원도 자주 오는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해봤고 본인도 비폭력대화 교육을 받았지만 그렇게 깊이 있게 배우지는 못한 것 같다고, 저랑 대화하면서 힘을 많이 얻는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분도 그걸 느끼시고 본인들 팀에 사례자 대상 교육이 필요하다며 저한테 부탁을 하셨어요. 그래서 근처 홍성에 사는 김순임 선생님을 연결해 드렸어요.

 

 

ㅇ 고객과의 짤막한 대화를 통해서도 연결이 되시는가봐요?

고객이 커피를 뽑는 순간에도 고객의 마음 상태가 느껴져요. “오늘 좀 피곤한 날이세요?” 이렇게 얘기를 건네면 그 한마디가 관심을 가져주는 말로 느껴지나봐요. 얼굴이 확 펴지면서, “오늘 좀 그러네요.” 그렇게 대답하는 분들이 있어요.

 

오래된 단골 한 분은 며칠 연속 성당에 가신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는 가서 엄청난 축복을 받으셨나 봐요. 그분을 뵌 이래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과 환한 안색은 처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맞다고, 정말 너무 행복한 날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감정을 추측해서 말해줄 때 사람들이 편안해 하는 거 같아요

 

힘들게 하는 고객들도 많아요. 때에 따라서 표현방법을 달리하는데, 빨리 알아차릴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하기도 해요. 정말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분에게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고객님” 하고는 좀 있다가 “오늘 좀 편하게 보내시라고요.” 그러면 웃으면서 그냥 가요.

 

 

ㅇ 어떤 분들이 주로 힘든가요?

제일 힘들었던 건 성추행이에요. 부여에서는 성폭력 예방활동을 많이 하고 상담도 하고 가족이나 다문화 가정에 들어가서 교육도 많이 했는데, 여기는 성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한번은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시는 분이 제가 물건을 냉장고 안에 정리하는데 뒤에서 제 허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그분을 상담소로 연결해서 교육을 받게 해드렸어요. 지역에는 그런 문화가 너무 깊이 뿌리 박혀 있다는 걸 그때 피부로 알게 되었지요.

 

ㅇ 그 순간 어떻게 반응을 하셨어요?

우선 빨리 피한 후 불쾌하다는 표현을 했죠. 그리고 다음날 또 왔을 때, 저와 편안한 관계라고 해서 이런 행동을 하시는 거는 성추행이나 성희롱 범죄로 갈 수 있다고 말하니 그분이 좀 당황해하셨어요. 마음이 불편할까봐 그 순간에는 그냥 가시게 했는데, 다음 날 또 오셨을 때 제가 말했어요. 부탁이 있다, 선생님이 성 관념에 대해 아셔야 될 거 같아서 교육 기관으로 연결을 해드리고 싶은데 그렇게 하실 수 있냐 그랬더니 처음에는 멈칫 하면서 생각해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는 다음 날 와서 본인한테 왜 그런 얘기를 했냐고 물어보셨어요. 다른 분이었으면 성범죄로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처벌이 굉장히 강화된 거를 아셔야 한다, 저도 솔직히 굉장히 불편하다. 그러나 선생님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사람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이 과정을 거치고 싶다고 얘기를 했죠. 그랬더니 흔쾌히 가서 교육을 받으셨어요.

 

ㅇ 불쾌하다고 표현했는데 계속 오고 교육도 받다니, 좀 놀랍네요.

대상에 따라 다르게 대처하는 게 되게 중요해요. 그분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그분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육을 하는 분이고 그 정도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본인도 교육을 받으면서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어서 엄청난 도움이 됐다고 하셨어요. 성추행으로 경찰서에 갔으면 학교 일을 못하는 거잖아요. 직업을 박탈당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단골로 오세요.

 

ㅇ 알콜중독자들도 오나요?

많이 오죠. 그분들도 저를 신뢰하는 거 같아요. 제가 어떤 차별도 하지 않고 일반인과 똑같이 대하니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알콜중독자들은 자신들이 피해자고 전혀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오면 존중해 주고 따뜻한 말로 대해줘요. 아이든 어른이든 할머니든 장애인이든 알콜중독자든 일관성 있는 태도로 고객을 맞이하니까 그분들도 저를 그렇게 대해줘요.

 

알콜중독자들은 말을 길게 안 하고 자기 감정을 화로 표현해 버려요. 항상 남들에게 무시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말을 길게 안 해요. 다른 분들은 “이건 얼마에요? 저건 얼마에요” 하면서 말을 이어가는데, 그분들은 “여깄어요”가 다예요. 그러면 계속 말을 걸어요. “고객님, 이거는 이러저러 해서 5000원이고요, 이거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4000원인데 어떤 게 더 좋을 것 같으세요?“ 그러면 “몰라요. 아무거나” 그래요. “고객님,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으세요? 안색이 좀 그러시네요” 이렇게 얘기하면 “아닌데...” 그러면서 말이 조금씩 많아지고 자기의 속 이야기를 해요.

 

근처 아파트가 시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인데, 거기 사는 수급자들은 마음의 문을 꼭 닫고 살면서 바로 옆집에도 자기 이야기를 전혀 안하는데 여기 와서는 해요. 어떤 분은 사업을 크게 하다 망해서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하고, 어떤 분은 자신도 의사였고 아들도 의사였는데 어느 순간 자식이 먼저 갔다고 그러더라고요. 이렇게 삶의 끝까지 떨어져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는 그냥 들어만 주는 거죠.

 

술을 사면서 “내가 한심해 보이죠?” 이렇게 먼저 얘기를 꺼내기도 해요. 그러면 제가 “술도 음식이고 드실 만하니까 드시겠죠.” 이렇게 얘기하다가 조금 기분이 좋아 보이면 “그래도 즐겁고 기쁜 날도 있으셨을 텐데, 해보고 싶은 거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 좋겠어요.” 이렇게 얘기하면 좋아해요. 그분들은 힘든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냈음에도 적절한 지원이 안 돼서 삶을 포기하는 것 같아요. 만약 그분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누군가가 손을 잡아줬더라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제 마음 안에 있어요.

 

ㅇ 오빠가 알콜에 의존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우울 성향도 있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해야 되나, 군대에 가서 느닷없이 엄청 맞았나봐요. 그리고 에어컨 설치 일을 하다가 아파트 15층에서 할머니가 투신하는 거를 보고 신고를 한 적이 있어요. 마음이 원래 약한데 그런 일을 경험하면서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서 그걸 이겨내려고 술을 먹지 않았을까 싶어요.

 

ㅇ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오빠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겠네요.

비폭력대화는 저희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되었어요. 친정 가족들한테 어마어마한 힘을 주었죠. 이로 말할 수 없이 드라마틱한 가족이었어요. 손을 쓸래야 쓸 수 없는 가족이었는데 지금은 평화롭게 정리가 되었고, 각자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자리를 잡았어요.

 

ㅇ 선생님 한 명이 비폭력대화를 배웠는데 온 가족이 변화했군요.

그래서 가족들이 저를 굉장히 신뢰해요. 어렸을 때부터 제가 착하고 온순하기는 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단지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거에요. 그거는 비폭력대화에서 배운 관찰, 느낌, 욕구, 부탁 이 네 가지 요소의 힘이었어요.

 

우선, 친정 엄마를 많이 공감해 드렸어여. 엄마도 이제는 본인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아셔요. 가슴에 한은 계속 남아 있지만 그 한을 조금 녹여내는 역할을 한 거 같아요. 오빠를 일찍 보낸 게 엄마한테 한이 되기는 했지만 가족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했어요. 오빠가 이렇게 갈 거를 예측하고 계속 얘기를 해줘서 마음의 준비를 하게 했고, 보낼 때도 아쉽지 않게 잘 보내줬어요. 그런 힘들이 결국은 다 비폭력대화에서 나온 거죠.

 

남편과의 관계에도 엄청난 도움을 받았죠. 남편하고는 너무 멀리 돌아온 거 같아서 정말 너무 안타까워요. 남들은 다 인정하는데 신랑은 저를 인정 안 했어요. 제가 하는 말들이 와 닿지가 않았나봐요. 전에는 외식을 가도 자기 밥 다 먹으면 혼자 나가요. 사실 외식도 안 하는 사람이었어요. 남편은 왜 밥을 굳이 밖에서 먹어야 되냐, 배고프면 허기만 때우면 되지, 그래요. 저는 밥 먹으면서 서로 이야기도 하고 볼 거 있으면 보고 들을 거 있으면 듣고 해야 되는데, 남편은 그런 걸 왜 해야 되냐고 하는 건 사람이에요. 생각의 차이가 너무 컸어요. 집 근처에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가야 시내가 나와요. 그런데 남편은 절대 그 다리를 건너지 않는 사람이라고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어요. 그런 사람이 이제는 그 다리를 아주 가볍게 건너요. 공감해 주기도 하고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기도 하고 수많은 방법을 쓰다보니 조금씩 변하더군요. 지금은 제 말을 잘 들어줘요.

 

 

ㅇ 여기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책을 하나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불편한 편의점’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어요? 그 책 너무 재미있게 봤거든요. 읽고 나서 편의점 사장님들을 존경의 눈으로 보게 됐죠. 그 책에는 종업원들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고객과의 스토리도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고객들한테 비폭력대화 방식으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네요. 혹시 험악하게 말하는 사람들은 무섭지 않으세요?

 

상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저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 같아요. 상대의 분노에 대응하는 방법은 알지만 제 에너지가 안 되는 게 두려워요. 여기서 18시간씩 일하면 잠이 부족해서 몸이 말을 안 들어요. 저녁 9시 넘어가면 우울해지고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들고 말도 헛 나가고 머릿속에서 벌떼들이 웽웽대는 것처럼 정신이 없어요. 평균 수면 시간이 4시간에서 4시간 반이고, 가게를 1년 365일 열어야 돼요. 자기를 잘 돌봐가면서 일해야 되는데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편의점 5년 계약을 흔히 전자발찌라고 하죠.

 

ㅇ 편의점이 고객들에게는 되게 좋은 공간인데 점주들이 노동의 대가를 전혀 못 받고 있다는 게 너무 슬프네요. 제가 진행한 회복경찰활동 중에 야간에 편의점 주인과 고객이 다툰 사례가 있었어요. 여기도 그런 일이 있나요?

 

여기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가 소리를 좀 높였어요. 어떤 분이 음료수를 사면서 기분이 안 좋게 나갔는데 담배꽁초를 여기다 버리고 가더라고요. 그래서 어른이 기분이 안 좋다고 그런 행동을 보이면 어떡하냐고 그랬더니 욕을 하더라구요. 근데 결국 그분도 화해하고 다시 와요. 또 한 분은 밖에서 술을 마신 후 치우지 않고 갔길래 다음에 왔을 때 말했죠. “고객님, 드셨으면 뒷정리를 하고 가시는 거예요.” 그랬더니 열을 내면서 뭐라고 하더니 다시는 안 올 것처럼 하고 갔어요. 그런데 또 오더라구요. 그래서 ”고객님 지난번에 화 많이 나셨죠? 근데 그게 어른으로서 맞는 거예요? 고객님은 사회질서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늘 그런 얘기 하시잖아요.” 그랬더니 “맞아요. 맞네요.” 그러더라구요.

 

ㅇ 고객들이 안 올 것처럼 하고는 또 오네요.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것 같아요.

바쁠 때는 무인운영을 하는데 고객들이 알아서 계산을 하고 가요. 다른 곳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해요. 제가 무인운영 신청을 안 했기 때문에 하면 안 되는데, 의외로 고객들이 되게 잘 해요. 물건을 함부로 가져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무인을 돌리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제가 그 사람을 찾아냈어요. 제가 처음부터 무조건 한 건 아니고 미리 안내를 했어요. 제가 없을 때는 무인운영을 할 건데 무인운영을 하면 CCTV로 찍을 거고 자동으로 카운터가 되기 때문에 재고 현황도 다 뜬다고 고객에게 계속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잘 하는 분들은 잘하시고 처음 온 분들은 전화로 물어보기도 해요. 학생들은 현금 결제를 많이 하는데 본인들이 방법을 찾아서 하더라고요. 학생들이 계산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제가 동영상을 저장해둔 게 있어요. 초등학생들이 현금통이 없으니 CCTV에 대고 물건 가져가고 돈은 여기에 둔다고 말하는 동영상이에요.

 

ㅇ 이런 건 유튜브 쇼츠로 올려도 재밌을거 같아요. 스토리가 많네요

편의점 경영주 밴드가 있는데, 이 밴드에도 ‘불편한 편의점’ 책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사실 밴드에는 경영주들의 온갖 스트레스가 다 올라와요. 밴드가 감정 쓰레기통이지요. 그래서 제가 긍정의 에너지를 주려고 비폭력대화에 대한 것들을 올렸는데 워낙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태라 역효과가 나서 지금은 멈추었어요.

 

제가 조금 여유가 있다면 그런 점주들을 찾아가서 공감해주고 본사와의 갈등을 풀어갈 방법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좋은 방법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근데 지금은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어요. 오빠가 내려온 후 5년 동안은 제 생활보다 오빠에게 집중을 해서 많이 지쳤어요. 몸도 지쳐있고 잠을 못 자서 지쳐있고 가게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 지쳐 있어요. 잠을 못 자는 게 제일 큰 문제에요. 점주들은 편의점 만기 되면 다들 어디 가서 잠만 잘 거라고 해요. 저희 가게는 하루 6시간만 문을 닫아요. 편의점 계약이 16시간, 18시간, 24시간 그렇게 되어있는데 우리 가게는 18시간 계약이에요.

 

ㅇ 점주가 오픈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니 너무하네요.

장사가 잘 되면 직원 세워두고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알고 보면 편의점만큼 편한 직업이 없어요. 근데 수입이 안 나니까 문제죠. 수입이 되는 좋은 자리는 그냥 직원 관리만 하면 되거든요. 모든 점주들이 그 꿈을 꾸어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죠. 주변에 경쟁점이 꽉 차 있어요. 홈플러스, 노브랜드, 식자재마트, 햄버거 가게, 샌드위치 가게, 꽈배기 집 등 경쟁점이 너무 많아요. 한 시간 인건비가 거의 만 원이잖아요. 근데 우리가 한 시간에 벌 수 있는 돈은 2~3천 원이에요. 만 원 어치 팔면 그 중 7~8천 원은 회사 상품 매입가와 운반비로 빠져나가고, 2~3천 원으로 인건비, 임대료, 관리비 내는 거에요.

 

ㅇ 현장 실전대화 경험 많은 분들이 너무 부러워요. 회사 다닐 때 잠깐 활용하다가 그만둔 후 강의와 회복경찰활동을 하고 있는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실전대화 경험이 없다는 게 좀 아쉽죠. 오부천님은 지금 경험을 토대로 다른 일을 하셔도 좋을 것 같은데, 혹시 하고 싶은 일 있으세요?

하고 싶은 거 많죠. 마을 중재도 매력있고. 악플 세탁소도 매력있어요. 제일 하고 싶은 거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는 가슴의 대화, ‘하트스토밍’ 같은 걸 하고 싶어요. 브레인스토밍처럼 머리로 하는 대화 말고 가슴으로 하는 대화, 그런 걸 하려면 열려있는 거리에서 해야겠죠. 거리공연처럼요. 자동차에 상담자리를 마련해서 여행하면서 가슴으로 나누는 대화 같은 거도 좋구요. 사람들이 저랑 대화하면 에너지를 얻는다고 하니까 계속 그런 대화를 하고 싶어요.

 

ㅇ 비폭력대화는 어느 과정까지 하셨어요?

2018년에 중재과정까지 했어요. 라이프도 하고 싶은데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날마다 새로운 힘이 생겨요. 비폭력대화의 네 가지 요소를 마음에 두고 살다보니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너무 좋아요. 상대를 공감하는 것도 좋지만 내 마음을 내가 잘 들여다보는 것도 되게 힘이 되요.

저희 2018 중재동기 밴드에 올려놓은 글이 있어요. “관찰은 지혜를 심어주고, 느낌은 세포 조직을 살피고, 욕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부탁은 나와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계속 관찰, 느낌, 욕구, 부탁을 들여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막 올라오더라고요. 꾸준히 올리고 싶은데 일이 많다 보니 계속 놓쳐요.

 

ㅇ 편의점 점주 밴드에는 주로 어떤 내용을 올리시나요?

그분들이 깊이 갈구하고 있는, 점주와 본사의 갈등에 대응해 어떻게 협업하고 상생해 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제 생각을 전달해요.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은데 한 분이 유독 격하게 반대하셔요. 글을 올리면 그분의 감정을 계속 악화시키는 것 같아서 지금은 안 올리고 있어요.

 

ㅇ 선생님은 본사와 대화하실 생각이 있으신 건가요?

저 나름대로 계속 이야기하죠. 본사 직원들이 점포를 순회할 때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경험하게 해요. 그러면 그분들이 우리 점주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고 회사가 그렇게 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막상 그 생각을 본사에 가서 전달하면 안 먹힌다는 거죠. 본사 직원이라고 하는데 회사랑 연결되어 있지 않은 거 같아요. 본사가 있으면 그 안에 관리조직이 있을텐데 그 조직체계가 투명하지 않아요. 뭔가 유령회사 같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체계가 안 잡히나?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어 관리를 하나? 물류센터가 지금 그런 형국이거든요. 편의점은 물류센터가 제일 중요해요. 실질적으로 상품이 오가는 과정도 중요하고 어떤 상품을 선정해서 팔 것인지 선택하는 것도 되게 중요한데, 그들에게는 현장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점포 수만큼 상품을 깔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점포를 많이 열어서 상품을 많이 넣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재고 관리도 점주 몫이에요. 초보 점주들은 그런 걸 모르잖아요. 회사에서는 초반에 브랜드 가맹비로 770만 원을 받아가요. 저는 그 가맹비 안에 관리비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사가 점주들을 위해 해주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ㅇ 금전적 손해와 여러 가지 힘든 과정을 겪고 계신데, 그래도 이 일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고객들과의 인연이죠.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들의 삶을 폭넓게 들여다봤지요. 그럼으로써 제 삶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제일 큰 문제죠. 그분들이 먹고는 사는데 삶에 확신이 없어요. 그분들이 새로운 걸 계획하고 도전할 때 지지해주고 끝까지 갈 수 있게 힘이 돼 주는 정책이 필요한데, 없죠. 잔혹한 영화 제목만 스쳐 지나가네요.

 

ㅇ 정책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사람들을 회복하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많으신가봐요?

여기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너무 걱정되요. 문제 없는 사람이 없어요. 다 힘들고 그냥 버티고 있긴 한데, 약간의 고통이나 힘든 순간이 오면 그냥 포기해버리는 거에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걱정이 너무 커요.

 

ㅇ 얼마 전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뉴욕의 공공병원에서 노숙자들이나 힘든 사람들을 만난 의사의 이야기예요. 이곳도 그곳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여기서 어려운 분들이 이야기를 하고 가면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어떤가요?

그냥 자신의 상태를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떤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순간 그렇다고 표현하는 거지요. 그런 표현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지요. 얘기하려고 자주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마음이 답답해서 오는데, 한 번 왔다 가면 그냥 편안하고 좋은가 봐요. 잠시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는 그런 장소라고나 할까요?

 

ㅇ 서울 어느 거리를 지나다 보니 미용실 문앞에 ‘마을상담소’라고 붙여놓은 곳이 있더라고요. 여기야 말로 그런 공간이 되고 있는 거 같네요.

저한테 그런 센터를 하나 개설하라고 하는데, 지금은 에너지가 없지만 누군가 하신다면 열심히 서포트는 하고 싶어요.

 

대화를 마치며 NVC출판사의 책과 제가 만든 박하차를 선물로 드리니, 샌드위치와 마트에서 만든 과자를 쇼핑백 가득 싸주십니다. 선물을 받아들고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편의점의 실태를 검색했습니다. 본사가 제공하는 불확실한 정보를 믿고 점포를 열고 경쟁에 내몰려 파산지경에 처한 자영업자들의 처참한 현실에 참으로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다음날 오부천님의 카톡을 받았습니다. 밑줄 그으며 읽고 있는 책에 있는 한 구절, ‘고통을 가하는 당신의 능력에 고통을 견디는 능력으로 맞설 것입니다“ 라는 마틴루터킹의 글, 그리고 본사와 점주들의 갈등을 비폭력대화로 풀어보고자 몇몇 점주들과 생각을 모으고 있다며 짬짬이 소식을 공유해주신다는 글이었습니다.

 

하루 18시간 일해도 적자만 쌓여가는 고통스런 삶의 현장에서 비폭력대화를 등불삼아 주변의 힘든 분들에게 빛을 비추고 있는 오부천님의 글을 마무리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돈 내고 잠 못자가면서 18시간 ‘마을공감센터‘를 운영하고 계시는구나.’

 

점주의 상생대화를 준비하는 오부천님에게 NVC회원님들이 든든한 에너지를 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2024.8.5. / 윤인숙(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