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6. 12:08ㆍ기린 활동_NGO/활동 현장
제주도에 온 예멘 친구들과의 만남
예멘이라는 나라는 최근 난민 관련 뉴스로 알려졌을 뿐, 내게는 여전히 낯선 곳이다. 그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무슨 말을 쓰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먹고 어떻게 입는지, 그곳의 자연환경은 어떤지, 그곳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지난 8월말 우리는 제주도에서 MT 중이었는데, 그런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 두 명이 우리 숙소를 찾아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과 조국을 떠나온 사람들
한 명은 카렛(가명)이고 한 명은 아브라함(가명)이었다. 카렛은 두 아이를 둔 30대의 아버지다. 예멘에서는 IT업체에서 일했다고 한다. 전쟁이 벌어졌을 때, 누가 왜 전쟁을 일으켰는지도 알 수 없었고, 전쟁은 자신들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안전을 위해, 살기 위해 예멘을 떠났다. 그 과정에서 학교에 들어가는 딸과 어린 아들 그리고 아내는 예멘에 남았다. 20대의 아브라함은 예멘에서의 직업이 제빵사라고 했다. 전쟁이 벌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징집하는 사람들이 집에 왔으니 형네 집으로 피신하라는 전화였다. 아브라함은 그 전화를 받고 형네 집으로 피신했고 그 역시 안전을 위해 태어난 나라를 떠나야 했다.
이렇게 예멘을 떠난 사람들 중 약 500여 명이 제주도에 입국했다. 제주도로 온 이유는 제주도가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낯선 모습과 낯선 문화의 사람들이 들어오자 여기저기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이 커져 두려움이 되고 공포가 되고, 급기야 혐오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나 역시 예멘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반가움과 함께 긴장도 있었다.
폭력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 난민
우리의 이런 두려움과 공포가 생긴 것은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의 영향이 크다. 알카에다와 IS와 같은 단체의 이름은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이런 한국 사회의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카렛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부분의 무슬림은 평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테러 등으로 무슬림에 대한 나쁜 이미지, 나쁜 가면을 씌운 것은 소수의 무슬림이고, 그런 소수의 무슬림의 가장 큰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다른 모든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무슬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설명을 들었을 때,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그 전까지는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인데, 같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옳지 않아.’라고 막연히 생각했다면, 저 설명을 들은 후에는 ‘우리가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서만 전해듣는 폭력의 가장 큰 피해자가 저들이구나. 그 폭력으로 인해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으면, 가족들과 헤어지면서까지 나고 자란 곳을 떠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카렛의 아내와 두 아이는 예멘에서 살던 곳을 떠나, 지방의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인터넷이 되면 때로는 화상 통화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가족을 지켜줄 수도 없고,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도 없는 그의 심정이 어떨까. 누군가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묻자, 카렛은 두 딸과 아내를, 아브라함은 어머니를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이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현지인 친구만 있으면 시민권이 발급되는 예멘의 난민 심사
세계 지도를 보니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남단에 위치한다. 위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이 있고 아래로는 아프리카 대륙의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등이 있다. 카렛의 설명에 따르면 예멘 주변에는 전쟁을 겪는 나라가 많았고, 전쟁을 피해 예멘으로 온 난민들이 많았다. 예멘은 이들을 수용했다. 난민이 현지인 두 사람과 함께 해당 관공서로 가서 친구임을 입증하면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수년이 걸리는 우리의 난민심사와 비교하면 정말 간소한 절차다. 이렇게 쉽게 난민을 수용해주던 나라에 있던 이들이 난민이 되었을 때, 난민으로 인정받아 난민으로서 지위를 누리며 사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들은 “직업”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들의 기본적인 숙식은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있고, 거리를 걸을 때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을 보면, 처음보다는 경계심과 적대감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이고 생계를 유지하고, 조국의 가족들에게 보내줄 돈이다. 현재 이들은 제주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1차 산업과 서비스업에서만 일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어디에서든 이들이 원하는 직업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는 무엇인가
통역을 위해 함께 온 활동가 호수 씨는 “이제 제주도는 무비자 예멘인들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하며, “우리나라의 난민 심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난민 인정률도 4% 정도여서, 난민 인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은 한국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난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했다. 그들의 삶을 알았다고 하기엔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 역시 가족과 함께 살며, 일상의 평화와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역시 직접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낯선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인가?’
‘우리 사회가 세계인들과 함께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 것인가?’
이순호
도움이 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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