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4. 17:11ㆍ기린을 위한 주스
공감의 힘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부탁
이윤정
부모교육강사로 활동을 하던 나는 2004년에 어떤 단체에서 한 꼭지의 강의를 하면서 다른 꼭지로 열리는 “비폭력대화”를 알게 되었고 번역된 지 얼마 안 된 비폭력대화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 내용이 좋아서 동료들과 책으로 스터디를 하다가 2005년 봄에 이대에서 캐서린한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수업을 한 학기 들으면서 내 삶을 바꾸는 인연은 시작된다.
2006년 늦은 가을, 한국에 비폭력대화센터를 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러 갔다가 캐서린 선생님으로부터 2007년 1월에 있는 국제인증 트레이너 초청 워크샵 참가를 권유받았다.
당시만 해도 두 아들들이 초등학생과 중학생이었고, 참가비용도 큰 금액이어서 오래 망설이다가 참여하게 되었는데 형태나 내용이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 많이 아쉬워하고 있던 차에 나는 두 가지 경험을 통해서 비폭력대화로 내 삶을 살아보겠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 하나는 ‘공감의 힘’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부탁의 중요성’이었다.
워크샵 도중 통역의 오역으로 “당신들의 수준이 예상했던 것과 달라서 교육과정을 바꾸기로 했다”는 말을 들은 중년의 남성 참가자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시작한 세션에서 트레이너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희가 한국에 처음 왔다면서 한국 사람들을 본 지 며칠이나 됐다고 우리 수준을 아느냐?”, “평가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건 평가가 아니고 무엇이냐?”, “도저히 기분이 나빠서 더 이상 워크샵에 참여하지 못하겠다!” 등등의 불만을 화가 난 상태로 토해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한 여성 참가자가 “실은 제 직업이 동시통역사인데요, 아까 그 부분은 통역의 실수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라고 소통에 도움을 주려고 하자, 그 남성은 더욱 격앙된 말투로 “가만히 계세요, 당신한테 내가 도와달라고 안했잖아요!”라고 소리쳤다.
그 세션에는 20여 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었는데 불편하게 시작되었던 분위기는 더욱 긴장이 흐르게 되었다. 나는 짜증이 나서 ‘이게 얼마짜리 워크샵인데 저런 식으로 시간을 잡아먹는 거야, 저 사람 참 성질이 못됐네, 폭력적이구먼...불만을 저렇게 밖에 표현 못하나? ’라고 평가와 비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인증 트레이너인 ‘수잔’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그 사람의 불만을 차근차근 들으며 공감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당신은 굉장히 불쾌했나요?, 우리가 한국 사람을 잘 이해하고 이 일을 하기 바라는 건가요? 많이 화가 났나요? 예정된 것을 다 배우고 돌아가고 싶은 건가요?....”수잔은 자기에게 성을 내며 거침없이 불평을 해대는 대상에게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눈을 마주치며 한 마디 한 마디 정성스럽게 말을 건내기 시작했고 그 남성은 “그렇죠”, “맞아요”, “당연하지!”하면서 수잔과의 대화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분노는 가라앉았고 불을 뿜는 공룡같던 모습에서 아주 귀여운 아기 기린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당시 이미 ‘부모 자녀의 대화법’이라는 타이틀로 강의를 하고 있었고 그 자격을 갖기 위해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스승이나 선배강사로부터 그런 장면을 배워본 적이 없었다.
공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명료하게 알 수 있는 순간이었고 공감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공감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동으로 워크샵에 빠져들기 시작할 무렵에 또 하나의 감동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워크샵이 열리는 공간에는 두 장의 큰 종이가 붙어있었는데 왼쪽에는 “부탁하고 싶은 말”이었고 오른쪽에는 “기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워크샵이 진행되는 동안 ‘부탁하는 말’에는 주최측이나 공동체에게 원하는 부탁을 구체적으로 써놓기 시작했고, ‘기여할 수 있는 것’에는 자신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재능이나 관심꺼리에 관해서 쓰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종류의 워크샵을 경험했으나 이런 식의 표현을 주고받는 것은 처음이어서 신기해하며 오고 갈 때마다 그 종이를 쳐다보게 되었는데 일요일 오전쯤이었을 거다. 부탁하는 말에 “미사”라고 씌여있었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그 단어를 보고 반가우면서도 ‘아이고 참, 부탁하라고 한다고 저런 걸 다 부탁하냐...사람들 정말 너무하네!’라고 또 비난을 하며 지나갔는데 몇 시간 후 ‘기여할 수 있는 것’에 “오늘 저녁 7시 30분 미사 진행”이라고 써져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건 또 뭐야? 누가 미사를 할 건대? 미사가 뭔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참 이상한 사람들이군!’하고 진짜 미사가 열리냐고 물어보니 참가자 중에 스리랑카에서 온 ‘크리스’라는 분이 예수회 신부라고 했다.
내게는 허무맹랑하게 생각되었던 누군가의 부탁 덕에 나는 주일미사를 참여할 수 있었고 우리들은 종교를 초월해서 신기해하고 기뻐했다. 사람이 모이면 모두 자원이 될 수 있고, 부탁을 하면 기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며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두 번의 기적 같은 경험은 내가 익숙했던 일에서 벗어나는 준비를 하는 용기와 확신을 주었고 그 이후 나는 지금까지 비폭력대화를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삶의 철학이 바뀌고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한 것에 대해서, 일을 하는 것이 곧 평화의 가치에 깨어있고 삶에 실천할 수 있음에 축복이라 여기며 깊은 감사를 느낀다.
그리고 나의 워크샵에서도 누군가는 아주 짧은 순간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성과 사랑으로 내일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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