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의 풍경

2026. 2. 5. 21:51기린 활동_NGO/활동 현장

안개 속의 풍경

 

소망교도소를 가기 위해 광주원주 고속도로를 탄다. 광주원주 고속도로는 성남이나 광주시 도로보다 한적하다. 9월 중순부터 가을로 접어들면서 안개가 자욱해지던 날이 많았다. 여러 터널을 지나는데 터널을 나올 때마다 안개 속에서 높은 산들의 풍광이 시야에 들어온다.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국내 여행에서 흔히 보던 논과 밭의 시골 풍경이다. 10분 정도 국도를 타다가 외재로에서 ‘아가페랜드 소망교도소’라는 표지판을 보고 2km 쯤 올라가면 소망교도소가 나온다.

 

소망교도소 수업 제목은 <인간관계와 의사소통을 위한 소망의 씨앗, 삶의 언어>이다. NVC 1 과정으로, 관찰-느낌-욕구-부탁을 배우고 실습한다. 느낌 단어 게임, 욕구 빙고, 느낌 욕구 찾기 등 활동을 하며 느낌과 욕구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한다. 매시간 체크인에서 간단한 명상을 하고 오늘 어떤 기대가 있는지, 지금 어떤 느낌인지를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4차시에서 수강생 중 나이가 제일 많았던 Y가 쉬는 시간에 질문한다. “교도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보기 싫은 사람도 계속 만나야 해요. 느낌과 욕구를 일일이 살피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NVC를 처음 배울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느낌과 욕구였다. 속 시끄럽고 자책과 원망이 터져나오는 일을 만날 때 일기에 쏟아내는 것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았다. 그때 내 느낌이 무엇인지, 도대체 내가 왜 그토록 화가 났는지 욕구를 찾아보면서 내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내 감정을 언어화하고, 충족되지 않았던, 간절히 충족하고 싶었던 욕구를 선명하게 알아차리고 나서야 가슴을 답답하게 막고 있던 덩어리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든 해볼 방도를 찾을 기력이 생겼다. 모든 문제가 싹~ 해결되는 일은 없었지만, 다시 마음을 고쳐먹을 수는 있었다.

 

나에게 힘이 되었던 NVC가 수용자들에게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목격하고 싶어 소망교도소 교육에 협력강사로 자원했지만, 딱맞는 답을 할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Y의 말을 듣고서야 그들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수용자들은 6~7명이 한방을 사용한다. 작업을 하거나 교육을 받는 일과 시간을 제외하면 방에서 마주본 채 시간을 보낸다(맘대로 누울 수도 없다). 좋든 싫든 동일한 사람과 계속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한다. 교도소 바깥에서는 정말 싫은 사람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지만, 이들은 공간의 자유도 회피할 기회도 없는 갇힌 생활을 한다.

 

수강생 중 T는 방에서 책을 읽고 싶은데 계속 말하는 사람이 있어 도저히 집중하기가 어려워 화가 난다고 했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수용자들 사이의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압력이 존재했다. 실체를 단언할 수 없지만, 신체적 차이, 물리력, 성격, 파워, 집단 내 그룹과 그룹의 관계, 나이 등에 따른 역동이 느껴졌다. Y의 질문처럼 은연중에 압박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곤란하다면? 이럴 때 NVC는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지? 관찰-느낌-욕구-부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기’를 해도 괜찮을까? 괜히 말했다가 더 욕먹는 거 아니야? 약해보이진 않을까? 느낌, 욕구 알면 뭐해, 그거 알면 더 속만 터지지 않나? 그렇다고 감옥생활이 달라져?

 

Y의 질문을 받았을 때 나를 돌이켜본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놀라고 진땀이 난다. 어쩔 줄 몰라 신경 쓰인다. 그에게 도움될만한 답을 알지 못해 미안하고 그의 상황이 안타깝고 잘 모르는 내가 아쉽다. 나는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그를 잘 공감해주고 싶으나, 그의 얘기를 듣고 그랬냐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슬프다.

 

강의시간에 그 얘기를 하는 Y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첫 시간부터 네 번째까지 느낌과 욕구를 계속 얘기하라는데 이것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몰라 답답하다.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니 염려되고 불안하다. 내 느낌을 알아차리니 더 신경이 쓰인다. 이게 진짜 도움이 되는건지 명료하게 알고 싶다. 이렇게 반복하는 걸 보면 중요한가 본데, 나도 도움을 받아서 안심하고 감방 생활을 하고 싶다.” 방에서 불안하고 불편했고, 편안함과 안전함, 자유로운 선택, 보호를 원했을 Y의 마음에 이제야 가닿는다.

 

느낌을 알았을 때 안개가 걷히고 시야가 선명해지는 시원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분명해져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 느낌의 이면에 있는 욕구를 알아차리면, 무엇이 필요했는지, 무엇이 채워지지 못해 그토록 좌절했는지 자기 마음에 좀더 다가가게 된다. 욕구를 알아도 당장 그 욕구를 충족할 수 없음이 자각될 때 지금 맞닥뜨린 현실이 야속하고 더 좌절스러워질 수도 있다. 내가 그토록 충족하고 싶었던 그 욕구가 자신에게 어떤 것인지, 어떤 의미인지, 내 삶에서 그 욕구가 충족되던 순간은 언제인지, 그 순간에 내 몸과 마음의 감각은 어땠는지 떠올린다. 시간을 두고 욕구에 머무르고 나면, 고통 속에 있는 나를 마주하고 나의 고통을 연민으로 품을 수는 있다.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 상황 속에 있는 나에게 내가 따뜻한 목격자가 되어줄 수는 있다. 외로운 나를 혼자 내버려두거나 미워하거나 냅두고 도망치지 않을 수는 있다. 고통 속의 나와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내가 견딜 기력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Y는 자유와 자율성이 제한되는 현실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때 Y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그의 욕구를 함께 느끼지 못했음이 아쉽다. 느낌과 욕구를 알아차리고, 느낌과 욕구를 보고 나니 어떤지, 그런 자신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은지 물었다면 좋았을텐데.

 

‘아가페랜드 소망교도소’ 표지판부터는 집도, 건물도 없는 외딴 길이다. 네비게이션이 없거나 주소를 몰랐다면 길을 잘못 들었을 때나 갈법한 위치이다. 실제론 5분도 안되는 짧은 거리지만, 처음엔 긴가민가하며 한참을 올라간 것 같다. 교도소 건물 입구에서 ‘소망교도소’를 보고서야 잘 도착했구나 안심한다. 자극을 받는 내 마음은 안개 속의 풍경을 걷듯, 모르는 길을 가듯 모호하고 갈피를 못 잡는다. 느낌과 욕구를 찾는 것도 처음엔 낯설지만, 네비처럼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네비를 따라가도 처음에 헤매고 여러번 가봤어도 어떤 날은 완전히 길을 잘못 들기도 하지만 차츰 익숙해지는 것처럼, 느낌과 욕구과 네비가 되어줄 수 있기를, 나뿐 아니라 그들도 그러하길 바란다.

 

글. 박지연

 

‘공감’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표현한 수용자들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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