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24. 12:37ㆍ기린을 위한 주스
치매는 계속 사람의 허를 찔렀다.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나는 치매를 ‘늙음’—노인—과 관계있는 것, 죽음과 관계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소수’의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고 인생사 전반으로 보자면 사소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었다. 둘 다 착각이었다. (19쪽)
돌봄은 본질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돌봄을 고통 받는 누군가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쯤으로 여기곤 한다. 일방통행 관계로.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도전하려는 통념이다. (22쪽)
우리는 사랑하는 이가 치매에 걸렸다고 단념하고 저버리지는 않지만, 그 사람이 벌써 떠나 버린 것처럼 느낀다. 그 사람과의 연결을 상실할 때, 혹은 언제나 희망해 왔던 연결이 더는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이젠 너무 늦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적어도 상황을 이렇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눈감은 채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니면 눈물이 눈을 가렸거나 (33쪽)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이다. 이 고통으로 인해서 치매가 더 악화되기도 한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 이유로 악화된 사람은 자신을 돌보는 사람에게 심적으로 더 의존하게 되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도 더 비협조적으로 군다. 그리하여 단절은 모든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노력, 더 많은 비용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만들며, 모든 사람이 마음의 상처만 얻게 된다. (52쪽)
치매를 겪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세계를 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비누 거품 가득한 욕조인데, 그들은 거기에서 부글거리는 화산을 볼 수 있다. 지금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상력에 집중하는 것이다. (56쪽)
치매는 증상을 겪는 사람이 한 사람뿐일지라도 두 사람이 함께 겪는 질환이다. 이 질환으로 나타나는 증상의 영향을 두 사람이 함께 겪는 것이다. 그렇기에 치매에 중점을 두고 두 사람이 함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치매관계라고 부르는 것, 치매를 겪는 사람과 겪지 않는 사람이 함께 ‘우리’가 되는 관계이다. (93쪽)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 원리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의미 있다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게 해 준다. 비폭력대화 원리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충족하려는 욕구가 무엇인지 발견함으로써 모두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더 큰 시각을 제시한다. (110쪽)
사람들은 치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산 죽음’이라거나 ‘불치병’, ‘사형선고’ 같은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런 표현은 맞지 않을뿐더러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치매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진짜 가능성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든다. (120쪽)
삶의 언어인 비폭력대화는 고통을 없애 주지는 않으나 그 고통을 달콤하고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어 주는 소통의 길을 열어 준다. 비폭력대화는 마음 깊이 느껴지는 고통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연결시키는 소통 방법이다. (132쪽)
나처럼 비폭력대화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관계,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최상의 방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말하곤 한다. 관찰은 비폭력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첫 과정이며, 느낌, 욕구, 부탁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 네 요소가 우리가 자신과 연결하고 타인과 연결하기 위해서 실천하는 비폭력대화의 네 단계가 된다. 치매를 겪는 사람과 소통하려면 여기에 공감적 상상력을 추가해야 한다. (2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