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우리의 이야기 - 자살예방센터 교육을 마치고

2020. 8. 10. 11:45기린 활동_NGO/활동 현장

그와 우리의 이야기

- 자살예방센터 교육을 마치고

 

김영옥(한국비폭력대화교육원 강사)

 

 

그의 이야기

 

“40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사람에게 말해보는 거에요. 내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나도 몰랐어요.”

한참을 꺽꺽 울던 그가 평생 가슴에 묻은 이야기를 꺼내놓은 후 한 말이다.

 

동그랗게 모여앉아 한사람씩 인사를 하고 있었고 그의 차례가 되었을 때였다.
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따라 나갔다.

회의실 모퉁이 바닥에 웅크리고 앉은채 그는 등과 어깨를 들썩이며 꺽꺽 울고 있었다.
가녀린 등에서 평생동안 꾹꾹 눌러놓은 울음이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곁에 가만 앉아있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울음이 나오고 멈춰지질 않아요.”

그렇게 한동안을 꺽꺽 울던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면서 그는 40년 동안 가슴에 묻어놓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 아빠가 죽을거 같다는 걸 알았는데, 말리지 않았어요. 내가 붙잡기만 했어도 아빠가 죽지 않았을지 몰라요.”

그의 나이 8, 그의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이 붙잡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며 40여년을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가족에게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담은 채 버거운 삶을 이어갔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얘기를 할 줄 몰랐어요.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분 앞에서요.”

한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풀어낸 그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두 손을 꼬옥 잡았다.
들어주어 고마워요.”

 

 

우리의 이야기

 

캐서린, 효선, 경숙과 나, 우리 넷은 한달 동안 회의를 하며 자살유가족과 자살의도를 가진 분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자살예방센터에서 교육의뢰가 들어온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고, 비폭력대화NVC가 필요한 분들이 이분들 일거라는 생각에 준비하는 우리 마음도 각별했던 거 같다.

5분 단위로 타임스케줄을 짜며 어떤 프로세스가 도움이 될지 토론하며 프로그램을 짰다. 한 회 한 회 마치고나면 다시 모여 점검하고 다음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3회기 길지 않은 만남이었기에 무얼 얼마나 전달할 수 있을지, 어떤 변화를 맛볼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매회기 만날 때마다 그들이 꺼내는 진솔한 이야기와 진심들에 우리는 숨을 죽였고 함께 울었다.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55:45였는데, 오늘 이후 45:55로 바뀌었어요.”,

내가 쓸모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어디서도 말할 수 없는 걸 말할 수 있어 좋았어요

딸자식 먼저 보내고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고마웠어요.”

마지막 시간, 그들이 주는 피드백에 우리 가슴은 벅차올랐다.

 

저희가 드리고 싶은 말은, 당신이 이곳에, 우리와 함께, 계셔주셨으면 하는거예요. 함께 살아가요, 우리. 당신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워크샵을 이끌어 준 캐서린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부탁했다. 캐서린 선생님은 평소 단 한 사람이라도 진정 공감하며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 있다며 비폭력대화NVC가 필요한 분들이 이분들이라고 여러번 강조했었다.

 

매번 올 때마다 그분들 얼굴이 밝아지고, 그걸 볼때마다 나도 가슴이 벅찼어. 특히 소영샘(가명)이 세 번째 여기 왔을 때 얼굴이 너무 밝고 예뻐져서 내가 못알아봤다니까.”

피드백을 나누며 경숙 선생님은 신이 나서 얘기했다.

 

우리 넷이 각자 역할을 맡아 구멍을 메꾸고 함께 만들어나간 게 지금 이순간 가장 크게 남아.”

멀리 제주도에서 매번 새벽같이 날아온 효선 선생님은 특히 우리 한명 한명이 나름 역할을 하며 있어 준 것을 뿌듯해했다.

 

코로나로 무기력해 있던 나는 이곳에 다녀오는 날이면 땅위에 두 발이 단단히 닿아있는 느낌으로 눈에 힘이 들어가고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났다. 그들과 만남이 오히려 내게 힘과 에너지를 준 것이다.

이 일의 의미와 보람이 그 어느 때보다 진하게 다가왔다. 그들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덩달아 피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