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적 사법] 이야기 _ 임수희 판사 기고글 (2)

2019. 3. 1. 01:06기린을 위한 주스

임수희 판사님이 <법률저널>에 2018년 12월 27일부터 3회에 걸쳐 기고한 글을 싣습니다.

지난글에 이어 두번째 글입니다. 

2013년에 한국NVC센터가 법원의 [회복적 사법 시범실시사업]에 참여하여 진행된 사례로

캐서린한과 이연미가 피고인과 피고인의 아내, 피해자 아버지와 또 다른 딸 등 유족과 상담하고 

그들 사이를 NVC Mediation으로 형사적인 조정을 하게 된 과정입니다.


- 편집자



대화로 나아가는 용기


임수희 부장판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1.
“저한테는 하늘같은 딸인데, 거기다 대놓고 험한 말이나 하고 그래서, 도저히 용서가 안 돼서 그럽니다.”

잔뜩 인상 쓴 어두운 낯빛으로 증인석에 앉아 있던 아버지는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며 힘들게 답변을 했습니다.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지요. 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버지로서, 사고를 낸 피고인에 대한 형사재판에 양형증인(양형사유의 심리를 위하여 채택된 증인)으로 소환된 터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피고인의 얼굴은 안 그래도 괴로워 보이는 표정이 더 일그러졌습니다. 형사 피고인이 되었지만, 피해자 과실이 훨씬 큰 교통사고였기에 억울하기 짝이 없었겠지요. 게다가 만약 피해자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피고인에게 형사처벌이 무겁게 내려진다면, 그의 두 딸과 아내도 끝이라는 생각에 가장으로서 두렵고 절망스러웠을 겁니다.

그런데 담당 판사였던 저는 피해자 아버지의 답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용서가 안 되니 처벌을 해 달라?! 그렇다면 용서를 하게 되면 처벌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용서를 해 주고는 싶은데 용서받을 행동을 안 해서 용서를 못하니 처벌을 해 달라는 뜻인가. 혹시 용서를 절대 안 할 생각이니 무조건 처벌을 해 달라는 뜻인가. 대체 무슨 말이지?’

저에게는 피해자 아버지의 말이 모호하게 들렸습니다. 무엇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피고인에 대한 처벌에 관해서 왜 ‘용서’를 연관시킬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2.
지난 회 열여섯 번째 회복적 사법 이야기 - 당사자의 의사(意思) vs. 당사자의 니즈(Needs) - 에 이어서 계속 우리는 지금 교통사고로 딸을 잃은 한 아버지와 피고인, 역시 두 딸의 아버지였던 한 피고인의 재판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판사라면, 어찌되었든 피해자 아버지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의사를 밝히고 있으니, 그에 따라 재판해서 판결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피해자 아버지의 말뜻을 고민하는 저를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실 수도 있고, 제가 쓸데없는 고민을 한다고 비춰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담당 판사로서 양형증인으로 소환한 피해자 아버지의 위와 같은 말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소 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형사재판의 ‘양형심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니 찬찬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3.
피고인에 대한 유무죄 판단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형사재판에서 양형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3심제 법제에서 양형심리는 3심인 법률심을 제외하고 2심까지 할 수 있고, 이 사건은 이제 1심 양형심리를 시작하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양형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1심을 지나 2심 변론종결시까지의 양형심리 과정에서,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2심 판결 선고 직전까지의 시한 동안, 양형사유들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변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양형사유 중 피해자가 있는 범죄에 있어서 ‘피해’의 ‘크기와 경중 등’은 양형이 늘고 주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즉 피고인의 ‘행위’가 고의에 의한 것이냐, 과실에 의한 것이냐, 또는 행위 자체가 중한가, 경한가 하는 것과 별도로, ‘결과’ 발생인 ‘피해’의 크기나 경중 등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중요한 양형 판단 기준이 된다는 것이지요. 형법학자들은 이를 ‘행위불법’과 ‘결과불법’으로 나누어 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하기에 그 피해를 피고인이 범죄 이후에 없애 버렸느냐 또는 좀 줄이기라도 했느냐, 그대로 두었느냐, 아니면 오히려 범죄 이후에도 어떠한 행위를 통해 피해를 더 확대시켰느냐 하는 ‘피고인의 피해회복 여부 및 정도’ 또는 ‘피고인의 실질적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 등은 매우 중요한 양형사유가 됩니다. 그리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해 준 결과, 피해자가 재판부에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피해자로서는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처벌불원의 의사표시를 해 주는 것이 피고인에 대한 중요한 감형사유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중요한 양형사유인 ‘피해회복’에 관한 심리를 이제 시작한 1심 단계에서, 피해자 아버지가 만약,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과도 배상금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피고인을 형사처벌해 주시기를 원합니다’라는 확정적이고 최종적인 의사표현을 했다면 1심 양형심리를 마무리하고 변론을 종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피해자 아버지와 가족들은 지난 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여러 차례 진정서를 내면서, ‘진정한 사과를 원하는데 하지 않으니 처벌해 달라’고 반복해서 말했고, 법정에 양형증인으로 나와서도 ‘용서를 못하겠으니 처벌을 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그 이후 1심 변론종결 전까지 또는 1심 판결에 있어서 최종적으로는 1심 판결 선고 직전까지라도, 피고인이 피해자 유족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고 피해자 측이 이를 받아들여 피고인을 용서한다면 피해자 측은 피고인에 대해 처벌불원 의사를 표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면 판사는 그러한 내용을 양형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다시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피고인 역시 만약, ‘나는 전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따라서 피해자 측에 사과할 생각도 배상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라고 피해회복 의사가 없다는 확정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마찬가지로 ‘피고인의 피해회복’ 관련 양형사유의 변화가능성이 없으니, 그 상태를 전제로 변론을 종결하고 양형을 정하여 판결을 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피고인은 사고에 있어서 비록 피해자 과실이 더 컸다 해도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고, 사고 직후부터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 유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했으며 어느 정도의 배상도 하고 싶어 했으나 그것이 좌절되면서 피해자 측을 도리어 원망하게 된 것이었지요.

따라서 피고인으로서도 방법만 있다면, 기회만 주어진다면, 피해자 측이 받아 줄 사과를 하고 적정한 배상도 하고자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 당시는 아직 그럴 시간도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담당 판사였던 저는 양형증인이었던 피해자 아버지의 ‘용서가 안 돼서 처벌을 원합니다’라는 말의 뜻을 고심하며 들여다 볼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피해자 측이 ‘자식 잃은 부모로서 진정한 사과와 용서를 바라는데 적반하장이니 합의나 용서를 못하겠습니다’라고 숱하게 써 낸 진정서의 내용들과 종합해서 볼 때 위 말의 뜻은 결국, ‘딸을 잃은 부모로서 피고인의 진심어린 죄송하다는 말을 원한다. 피고인인 진정한 사과를 한다면 피고인에 대한 처벌까지는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지요.

자, 여러분 생각에는 어떠신가요.

4.
피해자 아버지에 대한 양형증인신문이 끝나자, 법정의 공기는 무겁게 눌려 있었습니다.

피해회복이 필요한데, 피해자 유족에게는 당연히, 또한 무거운 양형을 피해야 하는 피고인에게도 역시 피해회복은 꼭 되어야 하는 것인데, 사고 직후부터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회복은커녕 오히려 피고인과 피해자 측의 마음이 엇갈리고 도리어 반대 방향으로 꼬여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채로 갈등의 골만 깊게 패여 고착되어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쌍방이 교착상태임을 확인하면서 1심 재판이 마무리 되려 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은 더 진행할 것이 없었고, 마지막 절차인 피고인신문과 검사의 구형 및 피고인의 최후진술만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피고인, 변론이 종결되더라도 판결 선고 전까지 피해회복에 관한 유리한 양형자료가 있다면 제출하도록 하세요” 따위의 국선변호인이나 피고인도 이미 알고 있을 형식적인 말을 굳이 판사가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럼, 피고인은 피해자 측에 좀 더 피해회복 노력을 하시고, 피해자 측은 피고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진정성을 좀 받아 주셔서, 서로 잘 얘기해 보도록 하시죠” 같은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을 판사가 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 답답함 역시 법정에서 모두가 느끼고 있었지요.

‘서로 잘 얘기’해 보려고, 사고 직후부터 경찰, 검찰을 거쳐 법정에 오기까지 이미 당사자들끼리 애를 안 써 본 것이 아니고, 서로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벼랑 끝에 있는 심정으로 이미 최선의 노력을 했을 터인데도 그것이 잘 되지 않아 그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모르고 또 다시 ‘얘기 잘 해 보세요’란 말을 한다면 판사가 바보로 보일 것이 뻔하고 그 본인들은 힘만 빠질 것 같았습니다.

5.
“여기 안내문을 드릴 테니 피고인은 잘 읽어보고 변호인과 상의해 보시고, 피해자 아버지께도 피해자용 안내문을 드릴 테니 가족 분들과 함께 읽어 보고 같이 한번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 무의미한 말들을 뒤로 치우고 저는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에 관한 안내문>을 그 두 분의 아버지께 내밀었습니다.

당시 법원에서 회복적 사법을 형사재판에 적용하는 시범적인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혹시 도움이 될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채로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것이기에 공판검사의 동의 하에 피고인과 피해자가 자유로운 의사로 참여하는 경우, 중립적이고 전문적으로 훈련된 전문가(facilitator)들이 피고인 측과 피해자 측을 중재하여 대화를 도와 드리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던 피고인은 마지못해 안내문을 받아들었습니다만,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으려나’ 생각하는 듯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였습니다. 뭘 해도 피해자 아버지의 마음은 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포기해 버렸고 그래서 피해자 아버지를 원망하고 비난해서 그를 더 화나게 해 버렸으니, 뭔가 방법이 있을 거라고 다시 희망적인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요. 이해가 되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는 안내문이고 뭐고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는 눈치였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피고인을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 필요 없고 그냥 처벌을 원한다고 고쳐 말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 분은 그냥 고통 속에 있었고 그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 보였고 더구나 ‘가해자와 대화’라는 것은 그동안 상처를 더욱 후비고 더 아프게 했던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말만 들어도 고통스러운 것,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너무나 이해가 되었습니다.

“네, 일단 안내문은 가져가시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생각해 보시고, 저희 프로그램 전문가 분이 전화를 한번 드릴 텐데 그 때 그 분께 최종적으로 ‘안 하시겠다’는 의사를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주실 수 있을까요?”

그 아버지는 이 말에는 알았다고 끄덕이고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요한 얘기를 시작하려 하는데 벌써 또 이렇게 지면이 차버렸네요. 이제 두 분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죽을 것 같은 고통,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절망 속에서 과연 다시 대화로 나아가는 용기를 내실 수 있었을까요.

네, 지난 회에 이미 말씀드렸지만, 판사도 감동하고 존경이 우러났던 용기를 그 두 분은 보여 주시게 됩니다. 한 달 후 판결선고기일에 못 알아 볼 정도로 달라진 두 분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자, 다음 회에 계속 이어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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