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VC중재자의 차담회, “삶의 순간, 우리는 연결을 선택합니다.”

2023. 12. 5. 20:09기린 활동_NGO/활동 현장

 

NVC중재자들의 차담회,

“삶의 순간, 우리는 연결을 선택합니다.”

 

 

“삶을 중재하기”라는 모토로 NVC Mediation 집중교육을 마친 NVC중재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재를 적용하고 경험한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연결의 따뜻한 경험과 실수했던 아쉬움까지 일상에서 갈등을 다룬 경험을 나누고자 모였다. 김경은, 김민원, 김형렬, 성영주, 신지예 이렇게 다섯 명이 참여하였고, 진행과 정리는 박성일이 맡았다.

 

 

 

질문 1: 어디에서 온 누구입니까? 이번 가을을 어떻게 만나고 있나요?

 

김민원: 안녕하세요~ 2016년부터 ‘느린 학습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2020년부터 3년간 아동권리보장원 사업으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느린 학습자 아이들과 관계 맺으며 인지 및 학습, 사회성향상을 위해 지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재미가 없고, 의욕이 안 생기는 거예요. 소진이 온 것은 아닌데 연구도 잘 안 되고…. 그런 상황입니다. 오늘 모임이 뭔가 전환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찾아온 만남의 기회가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아무 뜻이 없이 오는 것은 없더라고요. 특히 사람을 만나는 것은요. 그래서 기쁘게 왔습니다.

 

성영주: 저는 학교에서 기린마을에서 재밌고 즐겁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는 서울시교육청과의 협력사업인 ‘관계가꿈 프로그램’으로 아이들 교육에 참여했고, 회복적 경찰활동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했던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가지를 뻗어가는 것 같아요. NVC중재자들이 각자 흩어져서 활동하다가 오늘 모이니 따뜻하고, 안정감이 들어요.

 

김형렬: 이곳에 3분 만에 걸어서 온 김형렬입니다. 이번 가을을 좀 힘들게 맞이하고 있어요. 비폭력대화를 공부하면서 이 평화의 언어가 사적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공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앞으로 은퇴를 하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2019년 회복적 경찰활동이 생기고 진행자로 위촉이 되었어요. 하지만 직장인이라 주중에 활동을 전혀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2023년에는 ‘내가 뭔가 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회복적 경찰활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올해 대화모임을 3건 진행했어요. 공교롭게 성영주님과 함께 진행했고, 많이 배웠고, 고마웠습니다. 뿌듯해요. 여건상 주말에만 활동할 수 있어서 ‘1건만 참여해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앞으로 현장 경험이 더 많이 쌓이면 법원 등에서도 활동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른바 양극화가 굉장히 심하잖아요. 정치권의 진영 싸움부터 시작해서 우리 공동체가 같이 가는 것을 모색하지 않고, ‘각자도생, 각자 살아야겠다, 각자 살아남아야겠다.’ 이렇게 접근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결국, 대화가 없어지게 되고, 우리 공동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 중에서 큰 위험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서 사는 것이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호모사피엔스가 대화를 하지 않고 각자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 크게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면에서 2017년에 처음 중재를 배웠는데 그때는 사실 중재가 뭔지 몰랐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올해 중재교육에 다시 참여하고 있습니다. 저도 은퇴할 나이가 별로 안 남았거든요. 그래서 조금 더 준비해서 보람을 느끼며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습니다.

 

김경은: 저는 작년에 중재교육을 마쳤고, 오늘 사랑받고 싶어서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중재교육 마지막 세션에서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이 소아암 친구들을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소아암 친구들이 잘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병원 인근에 편안하고 안전한 주거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 원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저는 명상을 안내하는 일을 하고 있고, 경제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을 함께 하면서 아주 즐겁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수학 교사로 학교에 근무했었고 결혼, 출산, 아이를 낳고 하면서 이제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고 감사한 것으로 NVC공동체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어요. 내면에 불을 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거 같아요. 너무 신비롭고, 재밌고, 든든합니다.

 

신지예: 경은님 이야기를 들으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웃음이 나요. 저는 요즘 도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또래 상담을 했고, ‘중재를 알게 되면 또래 상담하는 친구들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겠다.’라고 단순한 기대로 중재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렇게 한가운데에 와 있더라고요. 회복적 경찰활동을 시작으로 기린마을 활동도 하고 있고, 한국NVC중재협회에서 활동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파주의 한 학교에서 기린마을 활동을 새롭게 열게 되어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비폭력대화를 잘 모르는 내가 이렇게 여러 곳에 발을 담가도 될까?’ 하는 약간의 걱정이 훅 드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 다시 중재공부를 시작했고, 다음 달이면 끝나요. 다시 공부를 하다보니 너무 새로워요. ^^

 

감사하더라고요. 여기저기에서 불러주시고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고 ‘그래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흐뭇합니다. 요즘 가을을 느껴보려고 주말마다 남편이랑 새로 생긴 신상 베이커리 카페를 다니고 있어요.

 

성영주: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린마을’이 점조직처럼 퍼져나가는 거 같아요. 마치 민들레 홀씨처럼, 시흥에 배곧중학교도 인근의 해솔중학교의 기린마을 경험을 듣고 시작했고, 이곳의 교감 선생님이 파주의 교감 선생님을 만나서 파주에도 기린마을이 열리게 되었어요. 점처럼 있다가 이렇게 거미줄처럼 연결되고 있어요. 경은님 이야기처럼 자기 안에 빛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연결되고 펴지는 것 같아요. ^^

 

박성일: 기린마을이 일선 학교에서 시작되어 하나씩 하나씩 퍼져나가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학교 공동체성을 향상시키는 근본적인 변화의 노력이라고 생각됩니다.

 

 

 

질문 2: 그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나의 일상에서의 중재 경험을 말씀해주시겠어요?

 

김민원: 나를 치유할 목적으로 NVC중재교육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이제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뜻을 갖게 되었어요. 개인상담, 집단상담, 교육현장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한번은 7살 아들을 키우며 힘들어하는 어머니와 함께 그로그 카드를 활용해서 느낌 욕구를 찾는 작업을 세 번을 했어요. 그런데 껍질이 하나씩 하나씩 벗겨지듯 어머니가 자신의 욕구를 찾아가시더라고요. 결론은 아이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 본인이 쉬지를 못했구나, 쉼과 휴식, 돌봄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교육현장, 사회복지현장, 의료현장에서 Mediation의 의미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말하는 Mediation이 한계를 넘어 전문성을 가지고 더 다양한 대상과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느린 학습자는 100명 중에 12~14명 정도로 우리 주변에 많이 있어요. 또래 친구들과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하곤 해요. 한 명이라도 느린 학습자 친구들을 수업 시간에 만나면 충분히 얘기를 들으려고 해요. 그때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내려놔야 가능하더라고요. 쉬운 단어로 눈높이에 맞추어서 지속적으로 얘기를 하니까 나중에 분별력이 생기더라고요. 그 부분이 보람이 있었어요.

 

성영주: 처음 2015년에 중재를 배우고 “이게 뭐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2016년에 중재를 다시 참여했고, 그다음 해에 연습모임을 하고, 2018년에 세 번째 중재교육에 들어가니, “아, 이게 중재라는 거구나” 조금 알 것 같더라고요. 내 삶 안에서 내면의 갈등 중재를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내 안에 여러 가지 나와 화해하는 시간들이 있었고 치유되기도 하고, 지금도 계속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이 재밌고 마음도 평화롭고, 상대도 사랑스럽고,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 남편, 그리고 우리 엄마와의 관계에도 계속 연쇄반응을 일으켰어요.

 

이제 우리 남편은 거의 중재자예요. 아들과 저 사이에서 너무 중재를 잘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막 질러대도 남편이 중간에서 잘 정리해줘요. 학교에서 갈등을 중재하는 것도 피곤하지 않고 힘들지 않아요. 본 모임에서 두 당사자가 연결되는 걸 보는 것은 정말 정말 행복한 일이에요. 그래서 중독처럼 계속하게 돼요. 제 내면 안에서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행복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성일: 가족 안에서 불편할 때 서로서로 돌보고 지원하는 가족문화가 되었군요~

 

성영주: 네, 아들이 전역하고 4박 5일간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제가 걱정하며 아들에게 “여행 가서 아빠랑 싸우면 어떻게?”라고 했더니 아들이 “엄마, 내가 있잖아~”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 네가 있으면 좀 편하겠다.”하고 여행을 갔어요. 여행 중에 두 명이 부딪히면 또 다른 한 명이 중재자가 되어주고, 유기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지원하는 거에요. 편안했어요.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어요. 여동생과의 관계에서는 제가 갈등의 당사자이면서 중재자 역할을 해요.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여동생의 이야기도 들은 후, “그럼 이제 내 얘기도 들어볼래?”하면서 내 표현도 하고 그래요. 중재를 알지 못했다면 일어날 수 없었을 거예요. 내 안에 ‘말’이 없으면 그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김형렬: 직장에서 갈등을 우리가 배운 중재모델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어색할 수 있고, 제안하기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근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있는 회사가 스타트업인데 처음에 같이 세웠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중 한 사람이 화를 엄청나게 내면서 더는 회사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언을 한 거예요. 이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었고, 이 사람이 빠지면 타격이 커지는 상황이었어요. 대표가 제 얼굴을 이렇게 딱 쳐다보는 거예요. 좀 도와달라는 눈빛이었어요. 저도 그 상황들을 이전부터 알고 있어서 같이 쫓겨 나가서 복도에 서서 한참 얘기를 했어요.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깨진 거고, 사실상 한 사람이 나갈 정도가 됐으니까 더는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그때 제가 이분을 공감했어요. 공감하고 나니 제 얘기를 좀 듣게 되었고, 저랑 얘기하면서 감정이 조금씩 내려가니까 대표와도 얘기하게 되었어요. 결과적으로는 회사를 나가게 되었으나 이분이 자기표현을 좀 할 수 있었어요. 제가 느꼈던 것은 이분이 나한테는 얘기할 마음이 있구나. 그런 안전하다는 표정,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일이 끝나고 나서 ‘내가 배운 것들을 지금 쓰고 있구나~’ 그때 좀 인상적이었어요. 중재라고 하기엔 그렇고, NVC의 공감을 적용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경험했어요. 저는 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박성일: 그 긴박한 상황에서 응급공감이 발휘가 되었네요. 직장에서는 중재를 적용할 때, 공식적으로 제도화해서 하는 방법과 비공식적으로 자연스럽게 중재를 활용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김형렬: 나 혼자서 하는 것보다 모여서 했을 때 더 많은 성과가 나오기 때문에 회사가 성립된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더 잘한다고 한다면 회사를 만들 이유가 없는 거죠. 그렇다고 한다면 그 회사 내의 공동체에서도 이런 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젊은 층이 이직할 때 보는 것이 옛날에는 회사 이름이라든가 회사 규모라든가 연봉을 얼마 받을까? 였는데 요즘에 면접을 하면 이 회사의 문화가 어떤지를 꼭 물어봐요. ‘이 회사는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느냐, 어떤 복지를 가지고 있느냐, 워라벨은 되느냐’를 꼭 물어보거든요. 만약에 그 회사의 문화가 위계질서가 굉장히 강조되는 회사라고 하면 말하기가 굉장히 곤란하죠.

 

그래서 스타트업들이 제품을 만들고, 비즈니스 모델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수평적인 문화 그리고 수평적인 언어를 지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직 내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때 비폭력대화가 도입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가 동료이고, 같은 배를 탔으면, 우리는 같이 가는 건데, 우리가 이 사실을 알지만 다툼이 있고, 수단 방법에서 문제가 생기곤 해요. 그럴 때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회사에서 소통의 문화가 ‘바로잡기 전에 연결이 먼저이다. (Connection before Correction!)’라는 것이 문화로 자리잡히게 되면 소통의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일: 네, 기업에서 수평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참여적이면서 효과를 내는 기업문화가 필요하고, 그런 문화를 만드는데 비폭력대화의 의식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비단 일터뿐만 아니라 가정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자녀들을 대할 때 즉각적으로 바로잡으려는 반응이 강하게 일어나곤 해요. 바로잡으려는 습관이 깊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아요.

김경은: 결혼을 하고 남편이 제 마음을 다 알아줄 줄 알았어요. 연애할 때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고, 시댁과 문화가 너무 달랐기 때문에 서운하다고 얘기를 하면 남편은 말을 안 하는 거에요. 저는 무시받는 것 같으니까 더 크게 소리치고 더 험한 말을 하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었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이야기해주면 내가 노력해볼게”라고 얘기를 했고, 저는 그때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몰라?”라고 답했어요. 실은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다시 비폭력대화를 공부했고, 중재까지 했어요. 근데 이제는 남편이 딸과 제가 마찰이 있을 때 중재를 해주고 있어요.

 

딸 아이가 지금 5살이에요. 올해 여름이었죠. 남편이 피곤한 몸에 아이 양치를 시키려고 했는데 아이도 자다가 아빠가 양치하자는 말 때문에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던 거죠. 딸은 “하기 싫어요.”라고 하면서 몸을 돌리다가 아빠의 머리를 '탁' 치게 된 거에요. 남편도 평소 같으면 괜찮았을 텐데 피곤한 상태에 그러니까 화가 난 거예요. 남편은 “사과해! 사과하지 않으면 미안하다고 해! 그렇지 않으면 나도 똑같이 할 거야.”라고 했어요. 딸은 끝내 안 했어요. 그러자 남편도 똑같이 딸의 머리를 톡 쳤어요.

 

아이에게 아빠는 엄청나게 허용적인 사람이고, 자기를 품어주는 사람이에요. 제가 최근에 딸한테 “왜 엄마한테는 뽀뽀 안 해주고 아빠한테는 뽀뽀해줘~ 서운해~”라고 했더니 딸이 “엄마는 나의 실수를 아주 강하게 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아빠는 그때 나를 잘 돌봐줬어. 아빠는 나를 정말 사랑해”라고 하는 거예요. 그만큼 아빠를 사랑하는 딸이 그 일을 겪고 말을 안 하는 거예요. 몸을 딱 돌리는 것에요.

 

그래서 우리가 배운 중재방식대로 “누가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지? 무엇을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지?”라고 물어봤을 때, 남편은 “그때 내가 너무나 불쾌했고 화가 났다.”라고 했어요. 딸의 입에서 ‘미안하다.’라는 표현을 해주길 바랬어요.

 

딸은 “아빠가 속상해하는 거는 충분히 알겠지만 나도 그때 아빠한테 맞아서 너무 상처가 크다. 하지만 아빠가 많이 속상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겠다.”라고 하더라고요. 그 생각과 표현이 너무 놀랍고, 귀한 존재로 존중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중재를 배우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뒤에 딸이 실수했을 때, 강하게 뭐라고 한 일에 대해서 “미안해~”라고 표현을 했는데 딸이 아무 말이 없어요. 며칠 지나서 다시 “미안해, 너의 실수를 그냥 실수였구나 하지 않고 화냈던 거 미안해, 엄마가 그때 너무 피곤했었나 봐 미안해~”라고 했는데 딸이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엄마도 실수였잖아. 아빠도 실수할 수 있고, 나도 실수할 수 있고 엄마도 실수할 수 있지. 우리는 실수 가족이네~”

 

박성일: 아이들 표현이 참 귀하네요.

 

신지예: 중재를 배우고 제일 크게 다가온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라는 거에요. 시댁과의 갈등, 남편과의 어려움이 많았어요. 집안 행사를 오롯이 저 혼자 해야 했어요. 이제는 남편이 요청하면 “그날 일이 있는데 어떡하지~, 일정을 잡으려면 미리 얘기해 줄래~”라고 눈치 보지 않고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하니까 뭔가를 하더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는 제가 미친 짓을 했어요. 한 달 일정이 꽉 차 있었고, 딱 하루가 빈 거예요. 그런데 드는 생각이 ‘내가 어머님, 아버님 댁을 너무 안 갔네, 너무 연락을 안 드렸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날 아침 어머님께 “어머님, 오늘 뭐 하세요? 저랑 카페 가실래요?”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아가씨도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김밥을 싸서 아버님, 어머님을 모시고, 다 함께 카페에 가서 차 마시고, 놀다가 왔어요. 그런데 아버님이 생전 고맙다는 표현을 안 하셨는데 “고맙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몸은 힘들었지만, 무척 뿌듯한 하루를 보냈던 거 같아요. 내가 선택을 했을 때, 기꺼운 마음으로 뭔가를 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크게 경험할 수 있었어요.

 

김민원: 이야기를 듣다 보니, 깨달았어요. 내가 왜 이렇게 지쳤는지, 답이 왜 이렇게 명쾌하게 얻어지지? 6개월을 고민했어요. 여태까지 늘 타인의 문제만 해결하는 데 몰입해 있었어요. 정작 나를 돌아보지 않은 거예요. 제 문제, 내 욕구를, 그 생각이 딱 들었어요. 이거였어요. 감사하네요. 진짜 진짜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살았지? 그리고 거기 바탕에는 저는 남의 문제를 듣고 해결해 주려고 하고 기여했는데, 정작 제가 느끼는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내놓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제가 힘들었을 때 공감받고 싶었고, 위로도 받고 싶었고, 수용 받고 싶어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어려움을 얘기를 했는데 기대와 다른 반응이 온 거죠…. 그때의 아픔으로 얘기를 하기가 조심스럽고, 얘기할 데가 없으니 더 힘들고 그랬던 거 같아요. 주변에 가까이서 부담 없이 누군가가 있어서 이렇게 대화를 계속….

 

성영주: 저 남양주 살아요.

 

김민원: 감사해요. 힘들 때 달려갈게요. 옆 동네니까. ^^

박성일: 내가 설령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서로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선택할 수 있음을 의식하는 것과 안전한 관계에서 격려받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김경은: 동료, 친구가 한 명씩, 한 명씩 생기는 거, 안전한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 진짜 매력적인 거 같아요.

성영주: 나는 이 사람을 잘 몰라도 내가 먼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얘기하곤 해요. 얘기한 것이 돌아와도 내가 한 말이니까 내가 책임지면 되겠다는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박성일: 내가 먼저 안전을 주는 거, 신뢰를 주는 거, 나의 여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 사람을 내가 먼저 신뢰한다는 의미인 거 같아요.

 

신지예; 저는 중재하다가도 분위기가 무겁게 가는 것이 좀 힘들더라고요. 진지해야 할 때는 진지하게 하지만 중간중간에 약간 빵 터지는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전투태세에 있다가 좀 빵 터지고 나면 좀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한테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되게 꼰대 같은데 미안해~” 라고 일단 깔고 얘기를 하고, 어른들하고 얘기할 때는 “쟤가 이렇게 얘기하면 되게 눈치 없는 사람 같기는 한데….” 약간 이러면서 얘기를 하면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박성일: 그럼요. 유머는 굉장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긴장되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 같아요.

 

김형렬: 제가 실패한 사례가 떠오르는데요. 저희 부모님이 80대 초반이세요. 두 분만사세요. 연세가 드실수록 사이가 안 좋아지시는 거 같았어요. 이번 추석에 어머니가 불편해 보여서 “어머니, 무슨 일이 있으셨어요?” 했더니, 아버지가 도와주기는 하는데, 청소할 때 부분적으로만 해서 전체를 같이 해줬으면 하시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와 나누는 것이 좋겠다 싶었어요. 아버지는 건강하시거든요. 그래서 거실 식탁에 앉아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많이 힘드시데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청소를 좀 많이 해주시면 좋겠어요~”라고 했어요. 제 의도는 두 분이 서로 얘기가 잘 안 되니까 어머니의 얘기를 아버지한테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러면 아버지 얘기도 할 수 있게 되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께서 가만히 들으시더니 화를 버럭 내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 마누라는 내가 잘 알지, 니가 잘 아냐!, 나도 다 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중재를 좀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크게 화를 내시면서 나가셨어요. 제가 그 뒤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제가 어머니 편을 든다고 생각을 하셨을 거 같아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태도가 나왔던 거 같아요. 그걸 아버지께서 아신 거죠. 아버지께서는 귀가 잘 안 들리면서부터 화를 좀 많이 내세요. 잘 안 들리니까 답답해하세요. 어머니는 몇 번씩 얘기해야 하고, 아버지는 답답하니 화를 내시고, 그러면 어머니는 주눅이 들고 저는 중간에서 어떻게든지 해보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어머니 편에 마음이 있었던 거고, 그 순간에 어떤 태도로 나왔겠죠. 아마….

 

성영주: 네, 저도 여러 번 실패하고 나서 알게 된 것으로 중재를 할 때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이고, 공평하게 들으려고 한다는 걸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성일: 느낌과 욕구를 담아서 이야기해도 비난으로 듣는 경우가 있는 거 같아요. ‘이해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대단히 큰 거 같아요. 아버님 입장에서도 이해받고 싶으셨나봐요~

 

김경은: 저는 요즘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 고민 상담을 하면 “그거 좀 내려놔, 좀 비워” 이런 말들을 저 역시 했고, 들어왔었는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예전에는 어떤 상황에서 ‘속상하다 화나다 혼란스럽다.’까지였는데, 이제 비폭력대화를 알고 ‘지금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그렇구나’까지 알게 되었고, 이제는 ‘내 삶의 욕구가 정말 중요하고 하지만 이것에 대해서 내가 집착하고 있으니 이렇게 괴롭구나’가 되면서 그것을 놓는데 예전에는 이걸 억압하고 안 보려고 했다면 이제는 이 삶이 얼마나 이렇게 소중한지 가슴 깊이 느끼면서 스르르 손이 펴지는 거 있잖아요. ‘내가 너무 이렇게 붙들고 있으니 이렇게 고통스러웠구나’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애도가 일어나면서 스르르 손이 펴지며 내려놓는…. 요즘 그런 경험하고 있어서 참 감사해요. 구체적으로 느낌과 욕구를 안다는 것과 다른 차원인 것 같아요.

김민원: 저는 NVC중재를 배우고 좋았던 점은 ‘관점’을 바꿀 수 있었어요. 삶에 대한 관점, 가정 내의 어려움에도 연민을 유지할 수 있었고, 배우지 않았다면 상처로만 남았을 거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연민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NVC중재를 통해서 이 부분이 가장 소중해요. NVC를 알기 이전의 제 삶과 알고 나서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완전히.

 

김형렬: 저도 선생님처럼 제 인생의 NVC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가장 큰 차이는 내 안에 내가 있다는 걸 예전에 몰랐어요. 예전에는 항상 바깥을 향해 책 보고, 뉴스 보고, 영화 보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보며 살아왔는데, NVC를 알게 되면서 내 안에 내가 있구나~, 내 안에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되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도 다르게 보이는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박성일: 네, 오늘 의도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중요한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비폭력대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가치들이 오랜 학습과 연습을 통해 NVC중재자들에게 내재화되고 자기 삶의 일상에서 소중한 가족, 이웃, 동료들에게 번져가며 더 깊은 관계로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결의 순간을 경험하고, 어렵고 힘들고 지칠 때는 공감과 지원을 받을 기린 친구들, 기린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질문 3: 차담회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이 시간 어떠셨나요?

 

성영주: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면서 재미나기도 하고 경은님이 충분히 사랑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김형렬: 여기 와서 별로 할 얘기가 없을 줄 알았어요. 얘기하다가 보니까 처음 뵙는 분도 있었는데 어떤 공동체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김경은: 문을 열고 한 발을 딱 내딛는 순간 이미 충만했습니다. 이곳을 나가면 다시 만날 많은 갈등과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들 속에서 오늘 이 시간이 저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 같아요.

 

신지예: 새롭게 알게 되어서 반갑고, 고민했던 것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김민원: 제가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어요.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을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걸 발견했어요. 저의 관심이 타인한테만 가 있었고 정작 나를 돌보지 못했어요. 앞으로는 저를 좀 더 깊이 보고 싶어요. 오늘 힘이 돼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박성일: 갑작스럽게 요청을 드렸는데 흔쾌하게 화답해주시고,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시고, 소중한 경험을 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같은 중재자들의 작은 대화모임을 종종 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경은, 김민원, 김형렬, 성영주, 신지예, 박성일이 함께

2023년 10월 7일 (토) 16:00~18:30, 문화공간 길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