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entia Together 공감모임을 다시 시작하며 _ 유문향

2021. 10. 2. 14:21기린 활동_NGO/활동 현장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치매증상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나는 ‘아버지의 보호자’에서 아버지와의 이별을 애도할 사이도 없이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얼굴은 날마다 퉁퉁 부어올랐다. 엄마는 집에서 울며 소리치고, 나는 양재천을 걸으며 소리를 질렀다.

속수무책(束手無策).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라는 말을 들었다.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는 것 뿐 일까? 혼란스럽고, 암담하고, 막막하고, 참담하고, 무기력하고 화가 나고, 슬프고, 외롭고 힘이 들었다.

 

엄마에게 찾아온 ‘치매’ 그와 함께 온 엄청난 혼돈과 격랑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비로소 나는, 약속을 하고 계획을 하고, 예측가능 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기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더불어,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매 순간 변화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삶이 본래 예측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바라보는 순간, 지금까지 지내온 내 삶의 모든 순간이 경이로움과 감사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흘려들었던 사연과 얼핏 만난 몇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가 그랬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온전히 들어 주는 곳이 나에게 필요했고, 그런 곳을 찾다 ‘필요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서로에게 그런 곳이 되자’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2018년 1월 무조건 몇 명이어도 시작하기로 하고, NVC센터에 열려있는 연습모임 중 매주 한 번은 치매환우 가족을 위한 연습모임으로 모이게 되었다.

 

“친정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시아버지 때문에 힘들어요.”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그 때 우리는 모두 너무 힘들었다. 우리에게는 자유로운 움직임과 혼자만의 시간과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불안과 두려움, 화, 분노, 슬픔, 죄책감, 과도한 책임과 의무.. 알 수 없음으로 가득 찬, 꽉 막힌 가슴속의 이야기들을 덜어 낼 안전한 무엇이 필요했다. 매주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되는 것만 같은 이야기를, 차고 넘쳐 누군가 ‘툭’치기만 해도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는 한 사람이 절실했다. ‘홀가분함’과 ‘인생예찬’이 너무나 그리웠다.

 

우리는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예측가능성이라고는 1도 없는, 변화무쌍한 시간들을 날것으로 마주해야 했다. 1주일에 한번 2시간 반. 우리는 만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지친 마음으로 간신히, 그렇게 만났다. ‘~ 때문에 힘들어요’로 시작하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어디쯤에서인가 어느 날 내 안의 어떤 장면과 어떤 목소리와 만났다. 어느덧 ‘나는 이런 것이 힘들었어요’, ‘나는 ~말을 들을 때 힘들어요’, ‘나는 ~모습을 볼 때 힘들어요’ 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듣고, 그로그 카드로 느낌과 욕구를 물어봐 주고 나누는 시간은 바람처럼 우리의 가슴을 통과했고, 놀랍게도 바람이 지난 그 자리는, ‘뻥’ 뚫려 ‘텅’ 비워졌다. 켜켜이 쌓여있던 억울함, 원망, 후회와 두려움, 불안과 걱정 혼란스러운 것들이 명료해 지며 빈 공간과 함께 가벼워졌다.

 

한국NVC출판사에서 최근 번역되어 출간된 ‘Dementia Together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 책을 읽으며 너무 반갑고 기뻤다. ‘비폭력대화로 치매에 말 걸기’. 정말 간절히 원하는 바였고, 날마다 연습중이다. 치매 돌봄 가족으로 사는 나의 하루는 연민의 언어, 공감의 언어를 새로 배워가는 시간임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다른 시선,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다시 9월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치매환우가족을 위한 공감모임이 줌으로 열리고 있다. ‘그저’ 모일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나의 엄마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물으신다. “아버지 어디 가셨냐?” 같은 말을 수 없이 반복해서 묻는 엄마에게 “엄마 이제 그만 물어봐. 내가 오늘 100번도 넘게 말했잖아!” “내가 너무 힘들어!” 실갱이를 하다가 불쑥 엄마가 “내가 물어볼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하신다. 이제는 “엄마 아버지 보고 싶어? 나도 보고 싶어!” “돌아가신지 4년이 넘었잖아!” “돌아가신지 오래 됐어!” “아버지는 좋겠다. 엄마가 잊지 않고 매일 찾으셔서!” 훨씬 다양하게 대답해 드리게 된다.

우리의 만남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어떤 다른 이야기로 시작을 해도 돌아와 ‘아버지는 어디 가셨냐?’를 묻는 엄마처럼, 우리는 그렇게 치매와 함께 사는 그 누구처럼, 치매인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가 다 조금씩 아프고, 아프면서 크고, 아프면서 늙는 존재들이므로. 어디를 걸으며, 어느 산을 오르며 혼자 소리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Dementia Together’, 화요일 저녁 8시 NVC센터 줌 공감모임으로 오시기를 초대한다.

 

 

유 문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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