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가장 시급한 과제1 (17쪽)―듀안 엘진Duane Elgin

2021. 3. 10. 16:22기린을 위한 주스

인류의 가장 시급한 과제1 (17)

듀안 엘진Duane Elgin

 

 

인류는 최소한 지난 5만년을 분리의 길을 걸어왔다. 자연과 멀어지고, 서로를 남남으로 구별을 하면서, 힘을 키워갔다. 최근 몇 십년간 인간은 지배적인 종이 되어 지구 온난화나 종들의 소멸, 지속 가능하지 않은 많은 인구, 대규모 기근, 파도같이 밀려오는 이주민 같은 지구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런 것들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로 지금 우리는 우리가 걸어온 익숙한 분리의 길에서 전 지구적 돌봄과 협동이라는 낯선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도전을 받고 있다. 이것은 그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저마다 자기 이익을 차리는 분리에서 세상을 위한 협동으로 옮겨갈 때 우리는 진화적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떤 우주에서 살고 있는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인류라는 짐을 떠안은 지구 생태계는 지금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그 때문에 우주의 본질과 인류의 진화 여정에 대해 우리가 세워놓은 가정에도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인류와는 다르며 대부분 죽은 물질과 텅 빈 공간으로 채워져 있다는 가설을 근거로, 우리는 물질주의를 향한 속보 행진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과학과 전 세계의 영적 가르침이 결합된 지혜에서 얻은 통찰을 받아들여 스스로 탈바꿈하려 하는가? 우주는 그 근본이 살아있는 것이며, 인간은 그 큰 살아있는 체계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우주는 모든 생명체를 품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다.” 생명 안에 있는 생명.

 

우리가 우주를 어떻게 보는가는 우리가 지구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의미도 목적도 없는 무생물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그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존재인 인간,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죽어있는 것들을 착취하는 게 이해가 된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자연 안의 생동감과, 주위 세계와 직접 연결하는 경험을 한다면, 살아있는 것의 수많은 표현방식을 존중하고 돌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극적으로 다른 두 가지 견해는 놀라운 결론으로 이어진다. 인류의 발등에 떨어진 불은 기후변화나 종들의 멸종, 또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인구 증가와 같은 문제보다도 우주를 이해하고 우주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선택은 바로 이 핵심 이해에서 나온다.

 

 

진화의 갈림길에서

 

인류가 진화하는 도중에 어쩌다 이토록 중대한 갈림길에 들어섰을까? 첫째,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간은 소수의 인구에게 단기간에 걸쳐 유례없는 물질적 번영을 안겨 주기 위해 지구 자원을 착취하는 데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이 폭발적인 풍요는 과학적 유물론이라 일컬어지는 세계관에서 비롯되었다. 이 세계관은, 목적도 의미도 없는 시스템 안에서 죽은 입자들이 생각 없이 느낌 없이 떠돌고 있는 우주는 인간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고 여겼다. 둘째, 이 세계관을 바탕으로 우리는 지구의 재생산 능력이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지구 자원을 줄곧 소비하고 있다. 단기간의 번영은 장기간 생태를 파괴한 대가로 얻어지고 있는 것이다. 웬델 베리Wendell Berry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듯, 자연은 더 많은 투표권과 더 긴 기억, 그리고 우리보다 더 엄격한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앞으로 인간 문명의 발전이 용서가 안 될 정도로 인간이 살기 힘든 미래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환경은 우리에게 함께 모여서 신속히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그치고 있다. 심각한 기후 혼란, 인간들의 대규모 이주, 지속 가능하지 않는 인구 증가, 물 같은 핵심 자원의 심각한 부족, 동물과 식물을 비롯한 모든 종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멸종 위기에 있는 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추세들이 모여 서로에게 작용을 하여 그 영향이 증폭하고 있다. 그 때문에 깨어나서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는 건 지독하게 상처 입은 지구와 빈곤해진 미래를 자손들에게 물려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앞에 놓인 단호한 현실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 이 길은, “문제를 만들어낼 때 썼던 것과 같은 생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지구자체가 변하는 매우 위험한 단계를 지나고 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생활방식을 깊이 그리고 구조적으로 변화시켜서 좀 더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해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종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인간 문명의 붕괴와 더 나아가 인간의 멸종이 앞에 놓여있다. 역사적으로 문명의 붕괴가 수없이 일어났다. 로마제국, 마야 문명, 아스텍 문명, 이스터제도 문명, 아나사지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소련을 비롯하여 20개가 넘는 주요 문명이 수천 년 동안에 붕괴되었다. 중요한 것은 붕괴한 많은 사례에 기후변화가 핵심 요인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수없이 많은 붕괴가 일어났었지만, 오늘날은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다르다. 더 이상 미개척지가 없어 갈 데가 없다는 점이다. 원이 닫혔다. 전 세계가 경제적, 생태학적, 사회적으로 통합된 한 시스템이 되었다. 행성 전체가 붕괴 위험에 처했던 적은 없었으며, 모든 세계 문명이 한꺼번에 무너진 전례가 없다. 인류는 오늘날 존재하는 것과 같은, 초기이긴 하나 전 지구적 문명이 붕괴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없다. 지구가 바뀌어가고 있는 우리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적인 미래를 형성하는 데 있어 심오하게 중요한 대전환기다.

 

매우 위험한 이 시기를 신속하게 지나가려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전례 없는 돌파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해체되고 있는 세상에서, 사람들 대부분이 지구적 규모의 만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협동하는 게 쉽지 않다. 파괴적인 변천의 폭풍이 세상을 휩쓸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안전한 섬을 찾아 숨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하고 자신을 고립시킴으로써 자기만의 안전을 추구한다면, 시스템 상의 문제가 분명 증가할 터이고,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파멸적인 붕괴라는 바로 그 미래를 만들어낼 것이다.

 

 

놀라운 초대

 

단호하게 현실을 바라 볼 때, 지금 가고 있는 분리의 길(깊어가는 불공평함과 자원의 과잉 소비, 그리고 지구에 깊은 상처를 주고 있는)에서 우리가 스스로 돌아설 것 같지는 않다. 단 놀랍고, 혁신적이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미래의 초대를 발견하면 그 초대의 규모와 약속에 모두가 함께 이끌릴 것이다. 때마침 과학과 세계의 지혜로운 가르침이 한데 모여 일어난 통찰이 그 길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죽은 우주 안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는 대신 살아있는 우주의 깊은 생태계 안에서 영원히 배우고 성장하도록 초대받고 있다. 이 초대는 살아있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여정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역사의 상처를 넘어 치유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시작하라고 우리를 초대하는 놀라운 여정이다. 우리가 함께해야만 이룰 수 있는 놀라운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우주적인 집의 본성

 

이 새로운 진화 여정으로 돌아서는 대전환을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는 정말로 플라톤이 말한 대로 그 안에 모든 생명체를 담고 있는 하나의 생명체인가? 우주를 살아있는 생명력이 스며들어 있는 거대한 살아있는 체계로 보는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것은 약 300년 전 과학적 유물론으로 점차 대체되기 전까지 수만 년 동안 인류가 우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이해다. 그 이후로 과학계는 점점 더 강력한 도구를 사용하며 현실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우주의 놀라운 깊이와 신비함을 발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주가 살아있는 체계라는 오래된 직관이 이제 새롭게 다시 빛을 받고 있다. 과학이 미신적인 믿음을 제거하면서, 우주의 예상치 못한 경이로움과 깊이, 세련된 정교함을 드러내 보여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과학과 우주론이 말하는, 살아있는 체계로서 우주가 가지고 있는 6가지 속성이다.

 

하나인 전체 A Unified Whole: 지난 몇 십 년 동안 과학실험이 반복해서 확인한 것은 비국소성non-locality‘이다. 양자 수준에서 우주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거리를 가로질러 즉시 소통하는 완전히 하나로 되어있는 시스템이라는 발견이다. 예를 들어, 광자가 빛의 속도로 태양에서 지구로 이동하는 데 8분 조금 넘게 걸리며,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를 가로질러 이동하는 데 140억 년이 걸린다. 그러나 양자 영역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를 한 순간에 초월하여 가로지른다는 것을 양자물리학이 보여준다. 과학은 이제 더 이상 우주를 따로따로 떠돌고 있는 행성과 별, 물질 파편들의 단절된 집합체로 보지 않는다. 대신, 우주는 온전히 하나이고 매순간, 항상 그 안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말에 따르면, 우주는 흐르는 움직임 안에 있는 나뉘지 않은 전체.

 

우주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Empty Space is Not Empty: 수 세기 동안 과학자들은 우주가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발견한 것은 엄청난 양의 배경 에너지가 우주에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알려져 있는 우주의 약 95%를 차지한다. 다시 말해, 보이는 우주(원자, 사람, 행성, , 은하)를 다 합친 것이 우주 전체에서 겨우 5%를 차지한다. 이 보이지 않는 에너지는 두 가지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흑 물질(수축하는 힘)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약 26%를 차지하고, 암흑 에너지(확장하는 힘)가 우주의 약 69%를 차지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고 미묘하지만 놀랍도록 강력한 에너지의 광대한 바다에 잠겨 있다. 이제 막 발견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서 말이다.

 

함께 생겨나는 우주 A Co-Arising Universe: 매순간 우주 전체가 하나의 오케스트라로 새롭게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연주자로 참여하는 그랜드 심포니가 있고, 매순간 새롭게 등장하는 단 하나의 창조적 표현한 음으로 연주하는 Uni-verse (-음절)가 있다. 팽창하는 우주는 시간을 가로지르며 펼쳐지는 수평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편, 새롭게 나타나는 우주에 관한 통찰은 시간 속에서 계속해서 발생하는 우주의 수직차원을 더해준다. 견고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외양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완전히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흐름이다. 우주학자 브라이언 스윔Brian Swimme의 말에 따르면, “우주는 138억 년 전에 딱 한 번 출현한 것이 아니라, 매순간 자양분이 넘치는 심연에서 새롭게 출현한다.”²

 

모든 규모에 의식이 있다 Consciusness at Every Scale: 과학자들은 우주 전체에 의식 또는 아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있다. 원자 수준에서부터 은하 규모에 이르기까지 자기조직화, 중심화 능력이 각 규모에 맞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조직하고 중심으로 향하는 능력은 상당한 수준의 아는 능력이 있음을 가리킨다. 물리학자이자 우주론자인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이렇게 말했다. 원자 수준에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으로 분명히 알 수 있듯, 모든 전자에 어느 정도까지는 정신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³ 이것은 원자가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원자가 자기 형태와 기능에 맞는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양자이론을 발전시킨 막스 플랑크Max Plank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의식이 근본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은 의식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존재한다고 여기는 모든 것은 의식이 있다는 것을 자명하게 들어내 준다.”의식의 생태가 우주에 스며들어 있다.

 

근본에 자유가 있다 Freedom at the Foundations: 양자물리학은 확실성이 아닌 확률로 현실을 설명한다. 이것은 존재의 근본에 불확실성과 자유가 내재되어 있음을 뜻한다. 우주의 어떤 한 부분도 우주 전체의 기능을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서로 연결되어, 우주를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으로 엮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부분의 일정한 상호작용이 전체가 계속되는reproduce 조건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큰 생명의 그물망으로 설정된 한계 안에서 행동할 더 큰 자유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 재생할 수 있다 Able to Reproduce Itrself: 살아있는 모든 시스템에 꼭 필요한 능력은 재생산 능력이다. 우주론에 널리 퍼진 견해 하나는 우리 우주가 블랙홀의 기능을 통해 스스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블랙홀은 씨앗이며, 그 씨앗에서 새로운 우주가 꽃 피어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리학자 존 그리빈John Gribbi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은 연구자도 이제는 아무 데로도 가지 않는 일방통행 여정을 나타내는 블랙홀 대신, 어딘가로자신만의 차원에서 새로 팽창하는 우주로 가는 여정이라고 믿는다.”우리 우주에 수십억 개의 블랙홀이 존재한다면, 블랙홀이라는 산도를 통해 우리 우주에서 갈라져 나감으로써계속해서 탄생하는 다른 우주 시스템이 무한히 있을 수 있다. 그리빈은 우주는 살아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살아있는 시스템처럼 진화도 한다고 한다.시간을 통해 진화하고 있는 수많은 우주가 있다는 생각은 새로운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의 선구자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이었다. 그는 1779년에 이렇게 썼다. “이 시스템이 나오기 전에 영겁의 시간 동안 많은 세계가 망가져 엉망이 되었을 수도 있다. 많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많은 실험이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 만들기 기술은 무한한 시간 동안 느리지만 지속적인 향상이 이루어졌다.”

 

이런 특성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 우주의 놀라운 그림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일시적인 패러다임이긴 하나, 우리 우주를 가장 의미 있게 묘사하는 말은 살아있는 우주 홀로그램living cosmic hologram이라는 표현인 것 같다. , 계속해서 매순간 스스로 재생하고 의식, 곧 아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든 규모에서 스스로 중심으로 향하고 어느 정도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온전히 하나인 거대유기체라는 설명이다.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더 큰 다중우주정원에서 우리 우주는 수많은 다른 우주들 중 하나일 뿐이고, 다중우주의 블랙홀들을 통해 스스로를 재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반적으로, 과학에서 나타나는 우리 우주의 비전은 복잡성과 의식에서 진화하는 장엄한 초유기체의 비전이다. 우리는 이 재생산하는 홀로그램 우주 안에 있는 보금자리에 몸을 담고 있다.

 

 

세계의 지혜로운 전통들이 보는 우주

 

살아있는 우주라는 새로운 과학적 관점이 세계 주요 영적 가르침의 근원적 통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각각의 견해가 만나는 지점이 있을까?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 영적 전통을 깊이 들어가 보면 우주에 관한 이해가 과학의 선구자들이 얻은 통찰과 놀랍게 일치한다. 그 만나는 지점은 - 우리는 엄청난 정확성과 힘을 지닌 형언할 수 없이 광대한 과정 속에서 나뉘지 않은 온전한 하나의 전체로서, 시시각각 생겨나고 있는 살아있는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 인용구들은 이 주목할 만한 이해가 어떻게 세계 주요 종교들을 가로질러 나타나고 있는지 보여준다.

 

기독교: 하느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온 우주를 완전하게 창조하고 계신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하느님은 지금 모든 것을 한꺼번에 창조하신다.”⁸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기독교 신비주의자.

 

이슬람교: 모든 순간에 죽음과 귀환이 있다세상은 매순간 새롭게 바뀌지만, 계속 이어지는 겉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이 새롭게 바뀌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⁹ ―루미, 13세기 수피 스승이자 시인.

 

불교: 매순간 새로운 우주가 창조되고 있다고 나는 엄숙히 선언한다.”10

D.T. 스즈키, 선사이며 학자.

 

힌두교: 우주 전체가 당신 존재에 끊임없이 기여한다. 그러므로 온 우주가 당신 몸이다.”11 스리 니사르가다타, 힌두교 교사.

 

도교: 도는 삶을 이어가게 하는 생명력이며 만물의 어머니다. 도에서 모든 것이 멈춤 없이 생겨나고 사라진다.”12 도덕경

 

북미 원주민: 세상에 텅 빈 것은 없었다. 하늘에도 빈 곳이 없었다. 모든 곳에 생명이 있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13 루터 서 있는 곰, 라코타 족 장로.

 

동서고금의 가르침들이 표현은 다르지만, 공통된 비전을 말하고 있다. 우주는 매순간 새로운 모양으로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우주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영원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 대신 우주는 매순간 계속해서 다시 새로워지고 유지되는 우주 홀로그램과 같다.14 전 세계의 모든 지혜로운 영적 가르침이 주는 격려는 지금에서 살라는 것이다. 이 핵심 통찰은 물리학의 바탕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은 계속해서 생겨나는 전체 우주와 직접 연결되는 지점이다. 매순간 우주는 새롭게 형성되며, 흠 없이 완전하게 생겨난다. 지금 이 순간에 있을 때, 우리는 문자 그대로 계속 이어지는 우주의 창조라는 물결을 타고 있는 것이다. 즉 현실 서핑이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살아있는 우주

 

우리 나날의 인간적인 경험과 살아있는 우주라는 관점이 어떻게 맞아 어울릴까? 일체의 존재가 이미 항상 새롭게 스스로 구현하고 있는 현상이라면, 이런 것을 사람들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일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을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날의 세계를 살아있는 것으로 경험하는 사람이 많을까? 과학적 조사를 통해 이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다.

 

17개국 7,000명의 젊은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2008년에 실시되었다. 75%'더 높은 힘'을 믿고 있으며, 대다수가 초월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죽음 이후의 삶을 믿고, 또 살아있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아마도 사실일 거라고 생각한다고 나타났다.15 이런 견해는 살아있음의 패러다임과 일치한다.

 

주류 사람들의 의식 안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미국 내 여러 과학적 조사에서 더 많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

 

1962년에 미국 성인 인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2%가 우주와 심오한 교감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보고했다. 2009년에 신비한 경험을 했다는 인구 비율은 성인 인구의 49%로 급격히 증가했다.16

 

2014년 전 미국 조사에서, 성인의 거의 60%가 정기적으로 깊은 영적 평화와 행복감을 느낀다고 했고, 그 중 46%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우주의 경이를 느끼는 경험을 한다고 했다.17

 

2002, 전 미국 갤럽 조사는,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깊은 영적 경험이나 깨어남을 경험했다라는 진술을 평가해달라고 응답자들에게 요청했다. 놀랍게도 미국인의 41%(당시로는 8천만 명 가량이다) 자신은 그런 경험이 있다고 했다.18

 

이런 설문조사들이 보여주는 것은 우주의 살아있음과 깊이 교감하는 경험이 비주류 현상이 아니라, 일반인 상당수가 익숙하게 마주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생물-우주 관점으로 보는 시각에 깨어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우주의 일체성과 지적 살아있음에 깨어날 때, 커다란 기쁨과 무한한 사랑, 그리고 미묘하게 빛나는 빛의 느낌이 함께 온다. 아래는 문득 깨어나는 경험에 관한 전형적인 이야기이다. 대학생 시절, 해폴드F.C. Happold는 스며들어 있는 우주의 살아있음과 교감하는 이 경험을 했다.

 

그 방에는 허름한 가구가 있었고, 벽난로에서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으며, 붉은 갓을 씌운 램프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그냥 방이었다. 그러나 어떤 현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현존은 빛이나 온기처럼 신기하게 내 주위에 있기도 하고 내 안에 있기도 했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압도적으로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으로 있었다. 나는 강렬한 행복감으로 넘쳐흘렀고,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평화와 안전과 확신에 대한 깊은 느낌이 있었다.19

 

이렇게 어쩌다 문득 일어나는 깨어남에서 방향을 돌려 의식을 의도적으로 탐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2,000년 넘게 현실의 본질을 직접 경험하기 위해 홀로 명상을 하고 있는 선구자들이 있다. 이 의식 탐구자들이 발견한 것은 우주가 살아있지 않은 잿빛이나 윙윙대는 기계음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과 빛의 바다, 그 본성이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고 창조적인 지성이었다.20 우리 개인의 생명력이 우주의 생명력에 투명하게 비춰질 때, 경이로움과 놀라움을 지닌 깨어나는 경험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우리 존재의 우주적 차원에 마음을 열 때, 더 많이 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자기에게 덜 몰입하며, 다른 사람에게 더 공감하고, 삶에 더 많이 기여하고 싶어진다. 이런 시각 전환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지고 중요한 것이다.

 

가상현실 기술로 인류의 깨어남은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경험하는데 몰입하게 하고, 우리 주변의 평범한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확장시킨다.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갖춘 비싸지 않은 헤드셋만 있으면 교육과 의학, 게임, 도시계획 등에 널리 이용할 수 있다. 시뮬레이션 안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실제로존재하는 현실은 없다. 그러나 VR 헤드셋을 쓰면 몇 초 안에 우리 감각 경험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제처럼 느낀다. 무엇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인가? 우리 감각에 현실로 느껴지는 대체 현실 안에서 몰입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일상의 경험이라는 현실에 관한 우리 호기심이 깨어날 수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진화의 촉매제로서, 주류 문화를 각성시켜 우주를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우주 홀로그램으로 보게 한다. 이 우주 홀로그램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직접 알 수 있다. 우리는 우주를 구성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우주 자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한 깨어남의 흐름들이 모이면서, 세계의 의식과 문화를 바꾸는 지혜의 강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생물-우주 정체성과 진화 여정

 

세계의 주류 문화에서 살아있는 우주라는 패러다임을 깨우기 위해 강력한 트렌드가 모이고 있다. 그것은 과학 발견을 통해서 몰랐던 우주의 신비한 속성에 깜짝 놀라고, 세계의 지혜로운 가르침에서 얻은 통찰을 확인하고, 전 세계에서 급속히 늘고 있는 깨어남의 경험이 가상현실 기술 등등을 통해 배움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 결합된 지혜는 우리 정체성과 진화 여정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것일까?

 

생물-우주 정체성: 살아있는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정체성은 우리의 생물학적 존재보다 엄청나게 크다. 알려져 있는 우주의 95%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우주론을 다시 떠올려보자. 우리는 알려져 있는 우주의 뗄 수 없는 한 부분이며, 동시에 우리 존재의 95%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우리 존재의 5%는 우리의 물리 생물학physical biology으로 분명하게 볼 수 있고, 나머지 95%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존재한다. 우리는 피부로 감싸인 존재 그 이상이다. 우리의 생물학적 존재는 살아있는 우주라는 더 큰 살아있음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 자신을 창조하는 일부로 보면 삶의 전체와 연결을 느끼고, 삶 전체에 대한 연민으로 깨어난다. 우주학자 브라이언 스윔은, 매순간 우리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내밀한 자기 알아차림 감각은 우주가 처음 시작할 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주 중심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생겨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때는 우리가 물리적 육체보다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우주 전체가 계속해서 함께 생겨나는 일에 깊이 연결된 참여자임을 발견하고 있다. 우리가 고유하면서도 함께 생겨나는 우주와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의 더 큰 정체성에 깨어날 때 실존적으로 분리된 존재라는 느낌을 생물-우주적 존재로서 교감하는 경험으로 바꾸어준다.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더 깊고, 더 복잡하고, 더 살아있다. 직접 경험을 통해 이것을 발견하는 것은 탐험과 발견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주의 목적: 인간으로 몸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드물고 귀중한 선물이다. 생분해성의 우리 몸은 영혼이 성장하는 경험을 얻기 위한 운수수단 vehicle 이다. 경험을 축적하고 퇴비화가 가능한 도관인 우리 몸은, 거의 138억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우주가 자신을 돌아보고 반추하게 해주는 창조적인 우주의 현재 표현이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쌓아 둘 수 있는 몸이라는 선물을 받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우주적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마복음서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살아있는 동안 살아계신 하느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죽을 것이요, 그때서야 살아계신 하느님을 찾아보려고 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격언은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밤이 그대를 따라 잡기 전에 촛불을 켜라.” 우주가 살아있는 체계가 아니라면, 죽음의 순간에 멸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서 영원히 살아있는 천국(또는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는 데는 기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가 살아있는 체계라면, 우리는 이미 그 생명력 안에 있는 둥지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이 죽을 때, 우리 생명의 흐름은 더 큰 살아있는 생태 안에서 적합한 집으로 이동한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기적이 필요하지는 않다. 살아있는 체제를 유지하는 기적 안에서 이미 살고 있으니까. 죽음에서 구원받는 대신, 우리가 할 일은 지금 여기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우주에 깨어있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스스로를 의미도 목적도 없이 생명 없는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우연한 창조물로 보지 않는다. 이제는 스스로를 놀라운 깊이와 목적을 지닌 우주의 신성한 여정의 참여자로 보고 있다. “죽은 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다. 같은 식으로 말해보자면, “죽은 우주는 아무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있는 우주는 그 자체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광대한 스토리다. 그 안에서 수많은 등장인물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예술가의 창조성으로 매혹적인 깨어남의 드라마를 연기하고 있다. 우주는 살아 펼쳐지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다.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는 이것을 보고, “하느님도 여행 중이시다라고 썼다. 우리가 자신을 수십억 년 동안 끈기 있게 성장해온 우주 정원에 참여자로 본다면, 무관심과 두려움, 분리된 느낌에서 호기심과 사랑, 참여하는 느낌으로 방향을 돌리라는 우주의 초대를 받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안네마리 쉼멜Annemarie Shimmel"하느님을 향한 여정이 끝나고 나면 하느님 안에서 무한한 여정이 시작된다.” 라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윤리: 우리가 생물학적 개체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다른 생명체들의 고통과 단절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 모두가 미묘하게 살아있는 같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있다면, 저마다 더 큰 생명의 그물망과 직접 교감하는 경험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실존이라는 같은 매트릭스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미 삶의 전체와 접촉하고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존재하는 생명력의 장을 함께 창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감의 윤리는 살아있는 우주와 우리의 직관이 만나며 도덕적 소리굽쇠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각자 비국소적 삶의 장에 주파수를 맞출 수 있고, 무엇이 가전체의 안녕과 조화로운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들어 감지할 수 있다. 우리 주파수가 정렬해 있을 때, ‘연민이라 부를 수 있는 감각으로 따뜻하고 긍정적인 소리굽쇠의 소리를 듣는다. 같은 방식으로, 불화와 불만족의 불협화음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인류가 펼쳐지는 우주 진화 스토리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실존적 단절감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과의 친밀하게 교감하고 배려하는 느낌으로 나갈 수 있다.

 

지속가능한 생활: 우리의 최우선 관제가 살아있는 경험, 생동감을 늘리는 것이라면, 자신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 삶의 영역을 개발하는데 더 시간과 기회가 있는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것은 우리 시간을 자연에 투자하고, 관계와 공동체를 돌보고, 창조적인 표현과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등일 것이다. 우주를 살아있는 것으로 보면, 자연히 죽은 것을 소비하는 데 바탕을 둔 '에고 경제'에서 생명력을 바탕으로 하는 '살아있는 경제'로 우선순위를 바꾸게 된다. 살아있는 경제는 의미와 만족을 풍부하게 만들어내면서 지구와 좀 더 가볍게 접촉하려고 한다. 살아있는 생동감만이 진정한 재산이다.

 

생태마을과 새로운 공동체: 격동의 시대에는 이 주는 친숙함과 안전을 찾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 시대에 은 어떤 의미일까? 집은 친숙한 거주지일까? 아니면 우리가 내면 깊은 곳에서 느끼는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것일까? 많은 사람에게 집은 안전하고, 그냥 자기 자신으로 수용 받는 느낌, 그리고 소속감을 느끼는 곳이다. 우리는 또한 자기 자신 안에서 깊이 이완될 때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안녕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을 때 에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 구세계의 경제, 사회, 환경이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이란 것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를 찾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이라는 직물의 끝이 풀려나가기 시작하며 무너지기 시작할 때는, 작은 지역 공동체들이 과도기의 폭풍을 무사히 헤쳐 나가는데 회복탄력성과 소속감을 주는 구명보트가 될 것이다. 대략 일,이백 명 정도인 마을규모의 공동체는 개인 관계와 다채로운 연결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작으며, 활기찬 미시경제와 다양한 사회활동을 지원할 수 있을 만큼 크다. 대규모 붕괴는 지역적인 생활패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시는 급속히 분산되어 비교적 자급 능력을 갖추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수천 개의 생태마을로 바뀔 수 있다. 이런 마을은 각각 건축과 문화,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표현이라는 독특한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은 아동 돌봄 시설과 놀이터, 공동체 모임과 축하 행사 및 정기적으로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주택, 공동체 정원, 재활용하고 퇴비를 만드는 구역, 태양에너지 시스템, 약간의 열린 공간, 그리고 워크숍일 것이다. 각각의 생태마을은 주변 생태마을에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친환경 정원 가꾸기, 녹색 건축, 갈등 해결, 건강 돌봄, 홈스쿨링, 노인 돌봄 등이다. 생태마을은 서로를 소외시키고 불안정한 대도시의 풍경을 온전한 정신과 보안을 갖추고 있는 탄력적인 공동체의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섬들로 바꿀 수 있다. 각 마을의 문화와 의식은 특유하고 고유하지만 그 내용의 방향은 살아있는 우주에서 가볍게 살아간다는 것으로 대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우주와 의식적으로 연결하게 될 때 우리의 관심과 연민의 범위는 자연스럽게 넓어진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전망이 밝아진다. 그러나 분리에서 연결로 방향을 전환하는 데서 우리 배움의 여정이 끝나는 게 아니다. 우주의 놀라운 깊이와 미묘함을 발견해갈수록 오랫동안 분리의 길을 걸어 온 여정에서만큼이나 방향을 돌려 되돌아가는 여정에서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드는 소식이다. 지금이 인간 진화의 정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의식이 깨어나 분리에서 공동체와 협동으로 돌아서는 여정에서 인간은 진화의 중간 지점쯤에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유아기, 청소년, 성인, 어른의 단계에서 겨우 청소년기를 벗어나고 있다. 역동적이면서도 안정된 여러 종의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성인의 성숙 초기에 이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배울 것이 많다.

 

 

인류의 선택

 

인간 공동체로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우리 바로 앞에 심오한 선택이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그 선택의 하나는, 우주를 그 근본에서 죽은 것이라고 보면서, 실존적 소외감과 불안감, 무서움, 두려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생명이 없는 물질, 텅 빈 공간의 차가운 무관심과 왜 연결하려 하겠는가? 만약 죽은 우주에 안주한다면, 우리는 실존적 절망에 빠져 표면적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른 선택은, 우주를 거대한 살아있는 체계로 보고 미묘한 연결감과 호기심과 감사가 자연히 생겨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수십 억 년 끈기 있게 발전하고 있는 우주 정원의 참여자로 보는 것이다. 인류의 앞날은 어느 쪽 이해가 우세하게 널리 퍼지는가에서 오는 선택에 달렸다.

 

인류와 지구의 안녕은 지금 세대가 깨어나고 성장해서 우리가 종으로서의 청소년기에서 초기 성인기로 이동하는데 달려있다. 자연과,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살아있는 우주와 새로운 성숙한 관계를 맺는데 달려 있다. 우리 주위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삶의 기적을 의식하고 환영하지 않는다면, 다른 길은 한 종으로서 사실상 멸종하는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후 혼란, 해수면 상승, 대규모 이주, 종의 멸종 등등이 가속화되어, 임계점을 지나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어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인류의 방향 전환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삶보다 파멸을 선택할까? 인류의 대부분 사람들이 분리와 생존차원에서 떠나 공동체와 동반진화의 매혹적인 미래로 건너 갈 수 있는 다리를 발견하여야만 영적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위에서 말한 다리란, 아직 우리 안에 개발되지 않고 있는 엄청난 진화의 잠재력이고, 그 것은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느끼고 있는 어떤 경험이다.

 

우리는 지금 유례없는 상황에 있다. 한 면에서는 지구 크기의 생태적 위기에 떠밀리고 있고, 동시에 우주 크기의 진화 기회에 끌리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살아있는 우주 안에서 살고 있다)에 대한 통찰이 있어야, 자신이 누구인지(생물학적 차원의 존재이자 우주 차원의 존재다)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살아있는 체계인 우주의 깊은 곳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에 대한 이해가 커진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살아있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존재의 깊은 생태, 즉 영원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것은 살아있는 우주의 깊은 연민이 우리에게 보내는 너무나 놀라운 부르는 소리이기 때문에, 이 값을 매길 수 없이 귀중한 초대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영적, 우주적 바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의식 진화 단계에서 초석을 굳히는 단계의 초기에 있다. 이제 막 성찰적 의식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있다. 우주는 수많은 생애를 걸쳐 인류를 성장시켜왔지만, 우리는 이제야 겨우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이며 무엇인지에 깨어나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여 우리 행성의 여정을 집합적으로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한 종으로서 스스로 얻은 이름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자기가 안다는 것을 아는존재라는 이름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다. ‘두 배로 현명해져가면서, 아는 능력을 자신에게 되돌려 스스로를 보고 있는, 궁극적으로 우리 자체가 바로 알아차림, 즉 살아있는 우주의 근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앎의 현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밖을 생태적 위기에서 오는 밀어대는 힘이 아직 개발되지 않은 내적 역량과 만나면서 인류는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급격한 기후변화 같은 역경이 몰려오는 추세가 더 빨라지면서, 실제로 인류의 대응이 너무 적거나 너무 늦다는 위험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갑자기 새로운 암흑시대로 들어설 수 있다. 우리가 산만해져서 주의를 딴 데로 돌려, 현재 진행 중인 대전환의 긴급성과 중요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간과한다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진화의 기회를 놓쳐버릴 것이다. 각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을 하고, 미래를 돌보아야한다. 지금 이 세대는 상처받은 지구에 떠밀리고 있고, 환영하는 우주에 이끌려가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념비적인 선물을 마련해야한다. 이 선물은, 우리의 생물-우주적 잠재력을 일깨워 살아있는 우주에서 살아가는 법을 평정심과 성숙한 태도로 함께 배우는 것이다.

 

 

 

각주

 

나의 책, ‘Humanity’s Joureny Home: Leaning to Live in a Living Universe‘ 인류의 고향으로 가는 여정:살 아있는 우주에서 사는 법을 배우기에서 발취한 것임

2. Brian Swimme, (1996). The hidden heart of the cosmos(우주의 숨겨진 심장) (p. 100). 뉴욕: Orbis Books.

3. Freeman Dyson, (1998). Infinite in all directions(모든 방향의 무한대) (p. 297). 뉴욕: Harper & Row.

4. Max Plank, (1931). The Observer(관찰자).

5. John Gribbin, (1993). In the beginning: The birth of the living universe(태초에: 살아있는 우주의 탄생) (p. 244). 뉴욕: Little Brown and Co.

6. 같은 책, p. 252.

7. David Hume, 디자인 논쟁 비판.

http://phylosophy.lander.edu/intro/introbook2.1/x4211.html에서 구매가능.

8. M. Fox, (1983). Meditations with Meister Eckhart(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함께하는 명상) (p. 24). 산타페, 뉴멕시코: Bear & Co.

9. 예를 들어, Barks, Co. (1995). The essential Rumi(루미의 시 모음). 샌프란시스코: Harper & Son.

10. Suzuki, D.T. (1970). Zen and Japanese culture(선과 일본 문화) (p. 364). 뉴저지, 프린스턴: 프린스턴 대학교 출판부.

11. Maharaj, S.N. (1973). I am that(내가 그것이다) 1(p. 289) (모리스 프리드먼 번역,). 인도, 봄베이: 체타나

12. 노자, (1972). 도덕경(Gia-Fu FengJane English 번역). 뉴욕: Vintage Books.

13. Luther Standing bear, Brown J.E., Modes of contemplation through actions: North American Indians. In Main Currents in Modern Thought(행동을 통한 명상 방식: 북미 원주민들. 현대 사상의 주류에서)에서 인용. (p. 194). 뉴욕: November-December, 1973.

14. 우리 우주를 우주 홀로그램으로 보는 시각은 쥬드 커리반의 최근 저서 코스믹 우주(2020, 이균형 번역, 정신세계사)에 기술되어 있다. 또한 마이클 탤보트, 홀로그램 우주, (2013, 이균형 번역, 정신세계사)도 참조.

15. Roehlkepartain, E.C., Benson, P.L., Scales, P.C., Kimball, L., & King, P.E. (2008). "그들만의 목소리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정신발달에 대해 어떻게 경험하고 생각하는지에 관한 탐구“, www.spiritualdevelopmentcenter.org.에서 검색됨. Also, see article by Jane Lampman in the November 6, 2008 edition of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16. Greeley, A., & McCready, W. (1975, January 26). “우리는 신비주의 국가인가?”, 뉴욕타임즈 매거진 .

17. Pew Research Center. (2015). “미국 대중이 덜 종교적이 된다”, http://www.pewforum.org/2015/11/03/u-s-public-becoming-less-religious.에서 검색됨.

18. 조지 갤럽 2, “종교적 깨어남이 미국인의 신앙을 강화한다갤럽연구소 http://www.gallup.com/poll/7582/religious-awakenings-bolster-americans-faith.aspx

19. Happold, F.C. (1975). Greeley and McCready, op.cit.에서 인용.

20. 우주의 생성 기원에 관한 설명. The living universe, 86-89.

 

** 듀안 엘진의 책을 더 보고 싶으면, 단순한 삶뜨거운 지구에서 쿨하게 사는 법을 보세요.

 

인류의 발등에 떨어진 불_듀안 엘진.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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