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3. 14:35ㆍ기린 Life
(토닥~토닥~ 응원하는 마음으로 함께 머물다 갑니다.)
첫눈이 오는 날
첫눈이 내렸다. 여기 산골로 이사오던 3월 달부터 걱정을 하던 눈이 드디어 결국 내린다. 주위에서 하는 말들. "눈이 오면 2-3일 정도 고립된다." "차가 위에 있으면 오도가도 못하니 밑에 내려놔야한다."(여기는 2차선 도로까지는 1키로 정도 떨어지고, 그중 400미터는 비포장 도로이다.) "니가 안겪어봐서 모른다. 얼마니 힘든지...."등등..
봄부터 시작된 겨울에 대한 걱정이 항상 베이스에 깔려있었고, 난 본격적으로 가을부터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 큰 전기장판, 실내용 텐트, 침낭, 마스크, 장갑, 보일러 기름도 넉넉하게, 가스도 넉넉히 준비, 먹을 것들도 냉장고에 꽉꽉 채워놓고.
아침에 8시50분쯤 문을 여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와 눈이다. 따뜻한 곳에서 만 살던 나와 아이들은 신비로운 첫 눈에 대한 기쁨도 잠깐뿐이다. 일기예보에는 많은 눈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차를 어떻게 해야하는지가 걱정이 올라온다. 유치원에 주차하고 와야겠다. 빨리빨리 챙겨서 애들과 내려 가야했다. 매일매일 지각이지만, 또 "빨리빨리 챙겨. 이러다가 걸어서 내려가야할지도 몰라." 하면서 애들을 바삐 재촉한다. 걱정된다. 애들 데려다 주고 올라올때 걸어 올라와야하니 나는 10년도 지난, 결혼전에 사뒀던 스키복을 드디어 꺼내입었다.
나의 소화력에 웃어본다. 10년도 넘었는데 한번도 안입다가 10년이나 묵혀서 입게 되는나.
입어보니, 작다. 겨우겨우 입었는데, 잘못하다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까지한다. 10년이 지나서 이렇게 입어보니, 없는 것 보다 낫지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짝은 뿌듯한 마음이 있기도 하다. 옷이 얇다. 요즘엔 기모도 빵빵한데, 그땐 그런 것도 없었는지 얇다. 춥다. 다리가 시리다.
내 인생은 이런거 같다. 항상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빨리 뛰어가다가, 소화도 못시키고 그냥 가면서 속이 부대끼고 그냥 힘들고 지치고 그랬다. 그러다가 NVC를 만나고, 나에게 새로운 신세계에서 놀라서 무엇에 홀린 듯 전력질주 했다. NVC 1,2,3, 라이프,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온갖 코스란 코스를 쫓아다니면서 꺼내고 찾고, 소화시키고, 또 찾고, 소화시키고, 끝이 없다. 아무리 해도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노력을 해봐도 안 된다. 와 이제는 이정도면 정말 괜찮겠지 하고 싶었다가도 언제 그랬냐 듯이 살면서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대체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나? 죽을 때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좌절하고,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만들어 공부만 더 많이 하게하고, 자기는 편한 저세상으로 가버린 마샬을 원망하면서 울고 불고 욕도 무진장 해봤다. 그래도 소용없다. 결국 나는 NVC를 끊기로 했다. 정말 좋은 건 알겠는데, 시간 돈 투자해도 결과는 안나오고, 나랑은 안 맞는 NVC를 잡지 않기로 했다. 연습모임도 안녕, 교육도 안녕.
NVC를 만나면서 계속계속 올라오던 한 가지, 좀 쉬고 싶다. 천천히 하고 싶다.
그래서 올해는 쉬고 있다. 지금은 소가 되새김질 하듯이, 다시 내 인생을 꺼내서 소화시키는 중이다. 예전이랑 변한 것도 없이 지금도 똑같다. 폭탄처럼 미쳐 날뛰다가 터지고, 소화된 줄 알았다가 또 올라 오고 올라 오고,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좌절스럽지는 않다. 좋아지는 중. 괜찮아지는 중. 아프면 아픈 만큼 성장하는 중. 그렇게 내 속도 대로 배우는 중이다. 이제껏 남들 속도에 따라간다고 무진장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면서. 누군가 '이미 강을 건너와 버려서 되돌아 갈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와 닿는다. 나도 이미 NVC의 강을 건너와 버렸구나? 싶다. 한 6개월 넘게 NVC를 끊었더니, 안되겠다, 다시 하고 싶다, 아직 혼자서는 부족하다, 누군가의 지원지지를 받으면서 같이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다시 코스를 쫓아다닌다. 아이들에게는 "엄마 공부하러간다. 엄마 괴물로 안 바뀌게 되는 공부하러 간다."
라고 하면서 ...
아쉽다. 눈이 조금만 오고 햇빛이 나온다.
아침에 눈 올 때 좀 더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렇게 눈을 기다린 아이들이였는데, 두 아들과 함께 나는 그 눈을 즐기지 못했다. "유치원 갔다 오면 눈 사람 만들자"고 했는데, 눈이 녹고 없다. 난 맨 날 이렇지 하면서 웃으면서 나를 봐준다. 아니 노력한다. 그리고 다음번 눈이 올 때는 제대로 놀아야겠다고 또 다짐을 해본다. 다음번에 또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그 다음번이 있을 테니깐, 눈은 계속 내리니까.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2016년 12월 산골에 첫 눈 내리는 날 두 아들을 가진 자칼 엄마,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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