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2. 12:05ㆍ기린 Life
온전한 나를 경험하기
-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 NVC 집중 트레이닝 워크샵 참여 후기
글 : 정하린 (리디아)
독일에 머물던 지난 4월 초, 벨기에에서 CNVC 주관으로 8일간 열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교육(Life-Enriching Education Lab 이하 LEE LAB)’ 워크숍에 참여하였다. 기차를 놓치기도 하고, 몇 번씩 버스를 갈아타는 우여곡절 끝에 벨기에의 북동쪽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Ratie' 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도심이 아닌 작은 마을까지 잘 찾아가야한다는 긴장감에 계속 시계와 지도를 살피기에 바빴지만, 아름답고 깨끗한 풍경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옅은 미소를 보여주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환대는 다시 나를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LEE lab workshop 이 열렸던 벨기에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Corsendonk de linde 입구>
19개 나라의 50명 참가자, 6명의 메인 트레이너(Marianne, Gabriela, Corrylaura, Giacomo, Towe, Shona)를 포함한 12명의 운영팀, 총 60여명이 함께하여 7박8일간의 배움과 성장, 연결의 여정을 풍요롭게 해주었다.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서로가 서로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호성이 이 시간에 가능하려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배움은 먼 곳이 아닌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여기 모인 한 명 한 명의 경험이 모두 소중합니다. 우리 트레이너들은 그 모험이 안전하고 즐겁도록 전적으로 도울 것입니다.”라는 말로 Marianne 이 시작을 열었다.
그 말을 기억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나로 그곳에 머물고자 했다. ‘나는 영어가 원활하지 않아서 많이 참여하기 힘들거야.‘ 라는 생각으로 굳어 있던 몸과 마음이 천천히 열리며, ’내가 이곳에 있는 자체로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선물할 수 있어. 나는 선물이야.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처음 보는 이 사람도 나를 위한 선물이야.‘로 전환되었다.
< 샤르프네크 학교에 있었던 트레이너 마리안과 슬로바키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NVC를 나누고 있는 레베카>
나는 가장 저렴하면서도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3인실을 선택했는데, 그리스에서 배우활동을 하고 있는 에바Eva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NVC를 나누고 있는 아나히Anahi 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우리는 또래였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무엇보다 NVC를 삶의 도구로 생각하고, 많이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우리를 금방 친해지게 했다. 매일 밤마다 각자 참여했던 세션을 서로에게 나누어 주었고, 워크숍을 마친 후에 함께 여행을 하기도 했다.
워크숍은 정말 풍성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에 열리는 메인 트레이너들의 세션과 오후와 저녁에 열렸던 '열린 세션open sessions'으로 이루어졌다. 여느 IIT (International Intensive Training)처럼 오후와 저녁 세션은 참여자들도 본인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열 수 있었다. 관심 있는 주제를 적어두면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답을 주고, 누군가가 이런 주제로 열고 싶다고 하면 그 밑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는 방식으로 워크숍 이곳 저곳에서 상호 배움이 일어났다. 메인 트레이너들은 ‘교육’이라는 큰 주제에 맞게 교육현장에서 받게 되는 도전에 관한 세션을 꾸준히 열었고, 그 외의 다양한 주제의 세션들도 꾸준히 열렸다.
<한 쪽 벽면에 빼곡히 채워졌던 프로그램 시간표>
아침마다 참여할 곳을 고르는 즐거운 고민이 이어졌다. 메인 세션은 다 참여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제목들이었고 매번 큰 울림과 자각이 있었다. 세션 밖에서의 배움 역시도 살아있는 경험이 되어주었다. 예를 들면, 두 번째 날 아침부터 트레이너팀은 그 안의 갈등을 전체에게 오픈하며 공동의 지혜를 구했는데, 그 모습이 큰 배움이 되었다. 1시간 가량의 아침서클에서 60명의 참가자는 갈등 안에서 연결을 유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호성이 무엇인지, power with가 무엇인지, 소시오크라시 회의방식이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8일의 시간 동안 배움은 내가 깨어있는 만큼 끊임없이 일어났다.
< 매일 아침,저녁으로 있던 전체 연결의 시간- 축하,감사,애도를 나누었다.>
오픈 세션에서의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에서 10년 넘게 교도소에서 NVC를 나누는 분의 경험, 네덜란드에서 소시오크라시, 홀리크라시, NVC를 기반으로 하는 ‘Life’ 라는 이름의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이야기, 슬로바키아에서 1년간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한 NVC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6명의 슬로바키아 선생님들이 발표해 준 미니 다큐멘터리, 벨기에에서 20년간 NVC를 나눈 ‘Blablabla 센터’의 대표 트레이너의 경험, 아빠들을 대상으로 NVC를 교육하고 있는 ‘Daddycation’팀의 경험, 성별sex/gender을 넘어선 화합에 NVC를 접목한 워크숍을 남아프리카에서 진행하고 있는 분의 경험, 스페인에서 학교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NVC 진행 경험, 몸과 NVC를 결합한 ‘Body NVC’, CNVC 인증트레이너에 초대 받고자 하는 4명의 벨기에와 네덜란드 활동가의 프리젠테이션과 피드백 자리, 다양한 나라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NVC를 나누는 시간 ....... 다 적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웠다.
< 매끼 영혼을 치유해주었던 코르센동크 쉐프들의 음식>
나도 용기를 내어 청소년들과 NVC를 나눌 때 했던 활동 한 가지를 그곳에서 나누었다. 짧은 활동이었지만, 20분간 영어로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정말 컸다. 해보겠다고 자원해 놓고서 한 시간 전까지 취소할까 말까하는 나 자신과의 싸움. 세션 후에 엄청 울고 나서도 매번 밥은 두 접시씩 먹고 "유럽음식 최고!"를 외치던 먹성이 당일 점심은 입맛을 잃고 한 접시만 먹고 멈출 정도로 긴장되었다. 두근거리는 심장과 덜덜 떨리는 손을 '구글'과 '파파고'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영어가 편한 몇몇 친구들의 기여로 도전 할 수 있었다.
같은 활동을 4번 진행했다. 참여자들만 계속 바뀌었는데, 뒤로 갈수록 편안해졌다. 더듬 더듬 말하는 내 영어를 알아듣고 그걸 또 같이 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고맙고, "네 말은 이런 뜻이지?"라면서 다시 차근히 가르쳐주는 모습이 호의와 감사로 다가왔다. 도전, 성취, 인생예찬, 수용과 만난 경험이었다.
< 짧은 활동을 나누기 위해 세팅한 자리>
나의 축하와 감사는 도전과 수용, 자유라고 요약 할 수 있겠다.
그 중 한 가지는 ‘내가 원래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것을 온전하게 드러내고 어떤 꼬리표도 스스로에게 달지 않는 경험을 한 것. 그곳에서 나는 그냥 온전한 '나'였다. 나흘째 새벽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나 자신을 만나 화해하는 경험을 한 후 나는 자의,타의에 의해 붙여두었던 거의 모든 꼬리표와 편안하게 이별 할 수 있었다. 나이, 전공, 두 아이의 엄마, 한국 사람, 심지어 여자라는 것도 의식하지 않았다.
심지어 타인이 나를 부르는 이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시간의 경험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신비롭다. 그저 태어날 때부터 연민과 호기심을 가지고 생기 있게 살고자 하는.. 작은 기린의 심장을 가진, 인간 ‘나'로 워크숍을 마칠 때까지 있을 수 있었다.
<워크숍 동안 웃고, 울며 우정을 나누었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 Iris, Kara, 나, Anahi, Eva, Miet>
워크숍 초반까지는 느낌과 욕구 목록을 영어로 만들어서 내내 들고 다녔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을 표현하려고 영어 단어를 찾는 순간 현존이 안되고 생각으로 가버려서 김이 빠지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5일째 밤에 참여했던 ‘자유 freedom’에 관한 세션에서 내가 지금 나에게 선물할 수 있는 자유를 선택했다. 체크아웃을 천천히 한국말로 했다.
‘난 지금 내 가슴으로부터 걸림 없이 말하고 싶어. 여러분들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가슴을 열어서 들어줄 것을 믿어. 너희들과 함께 한 오늘의 이 시간이 정말 즐겁고, 의미 있었어. 여러분들의 말을 아마도 나는 다 이해 못 했을거야. 하지만, 그래도 아무렇지 않아. 한국말로 들어도 모든 걸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연결되는것도 아니니까.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곳에서 배우고 있어. 그리고.... 나는 지금의 이런 내가 좋아. 이렇게 말하는 이 순간 여기서 나는 자유를 느껴. 나는 지금 자유 그 자체야!! ’
대충 이런 말이었던 것 같다. 체크아웃을 마치자 어떤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고 어떤 친구는 웃으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몇몇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한국말은 정말 아름다워’, ‘너가 한국 말할 때의 목소리가 정말 좋아’, ‘계속 한국말 들려줘’, ‘나는 너가 자유롭다는 것을 들었어’ 등등이 체크아웃 후에 받은 피드백이다.
< 워크숍 공간 여기 저기서 만날 수 있었던 NVC 관련 책과 교구, 포스터들>
서로 처음 만나고 영어로 이야기하려니 그야말로 어떤 면에서는 현존 할 수 밖에 없었고, 그 어떤 조언과 충고도 주고 받기 힘들었다. ^^ 덕분에 말뿐 아니라 그 사람의 표정과 몸짓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자 온 존재로 내 앞에 있는 사람과 같이 공감의 파도를 탔다. 시간이 흐를수록 언어 자체를 얼마나 알아듣고 못 알아 듣는 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 노탈랜트 쑈에서 둥지그룹(홈그룹) 친구들과 동물NVC 퀴즈를 준비했다.>
마지막 날 밤의 ‘노 탈랜트 쇼 No-talent show’ 와 축하파티를 마지막으로 7박8일간의 여정은 마무리 되었다.
8일 간의 경험을 뒤로 하고 몇몇 친구들과 브뤼셀에서 여행을 하며 여운을 즐기고,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국에 있다.
이별 한 줄 알았던 꼬리표들 몇몇과 재회하고, 때로는 생기 있고, 때로는 생기 없이 지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파워언더하고, 누군가에게는 파워오버한다. 그러다가 잠시 루미의 시에 나오는 '옳고 그름이 없는 들판'에서 나 자신과 혹은 누군가와 만나기도 한다. 자책과 비난 사이를 오가다 후회하며 자기공감을 하며 잠들기도하고, 연민의 마음이 찾아오면 내 앞의 누군가를 기꺼이 공감하며 연결되기도 한다.
삶이 이런 시간의 연속이라는 것을 조금은 수용하게 된 것 같다.
내 어딘가에 벨기에에서 했던 경험이 아름다운 '결'로 남아 짬짬이 피어나기를 희망한다.
<2018 NVC LEE Lab in Belgium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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