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2024. 5. 6. 17:56기린을 위한 주스/캐서린의 나누는 글

공감

 

여러분과 소식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지난달에 마당의 작은 텃밭에 상추, 토마토, 고추, 호박, 가지, 베이질, 오이, 로스메리를 심었고, 그리고 깻잎, 돼지감자도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흙을 파고 다지고, 덥고, 돌은 던지고.....심은 것 하나하나가 스스로 알아서 자라는 것이 예쁘고, 존경스럽고, 감사하고, 신비롭습니다. 그리고 이미 따 먹은 상추는 맛이 있는데 나비가 될 애벌레들도 좋아합니다.

 

근자에 ‘공감’에 대해 생각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동네 티셔츠 가게 광고에도 ‘공감’이 들어가 있고, 지난달 선거 동안에 ‘공감’이라는 말에 귀가 가끔 쫑긋해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공감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합니다. 뇌 과학자에 따라 우리 뇌에 공감을 받으면 활성화되는 곳이 여섯에서 열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따뜻한 공감의 말 보다는 자칼 말을 듣고 자라면서 그 능력을 잃어버려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폭력대화를 만났을 때 그렇게 반갑습니다. 우리 뇌에 잠들어 있던 곳이 깨어나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빛을 보일 때 우리 안에 마술이 일어납니다. 제가 처음 깊은 공감을 받았을 때 제가 오래 믿고 있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내 안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습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믿어도 되나, 오래 갈까,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술은 계속 되었습니다.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깊은 슬픔의 이유가 분명해지면서 위로가 되고, 상처가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 기술을 배워 자연스러워지면 어디든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 또한 마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이미 연결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공감은 pass 하고 문제 해결로 바로 가곤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문제 해결로 가는 것이 쉽거든요, 공감의 다른 마술은 힐링의 힘입니다. 깊은 주의로 누군가 나를 들어 줄 때 우리가 몸과 마음에서 느끼는 에너지는 어는 약도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공감은 느낌과 욕구에 중점을 두고 하지만 자기 말로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기술입니다. 그런 기술이 없으면 귀에 거슬리기도 하고, 거북합니다. 자연스럽게 자기 말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공감이 제 일상의 한 부분이 되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택시를 타면 거의 언제나 기사님들에게 공감을 합니다. 기회는 항상 있습니다. 다른 차가 급히 끼어들었을 때,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앞차가 꿈지럭거릴 때, 길을 비켜주지 안을 때 등. “저럴 때는 짜증나시겠어요.”, “답답하시죠.”, “놀라셨겠어요.”. 등 대개 느낌 한마디로 시작합니다. 거의 평생 감정을 눌러 감추고 느낌 같은 것은 없는 것처럼 사신 분들에게 적절한 순간의 느낌 한마디는 다른 세상을 열어줍니다. 반응은 거의 언제나 기대 이상입니다. 오래 가슴 깊이 숨겨 두었던 것 같은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기사님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샬이 정신병원에서 일을 하다가 그곳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지가 않고 환자 리포트를 매일 거의 2시간씩 쓰는 것도 지겹고, 이미 인간중심상담연구를 시작한 때라 병원을 그만두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한동안 택시운전을 하셨거든요.

 

여러 가지 힘 power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보니, 공감이 많은 곳에서는 규칙이나 법규가 적고 규칙이나 통제가 많은 곳에서는 공감이 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부장적인 시스템에서는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칭찬하고 끌어올려서 많은 결정을 하고 다른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 시스템에서 일하면 어떤 느낌인지 아시지요. 공감은 그런 모든 힘을 넘는 super power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개인적으로 공감에 관해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한 10년쯤 전 일 것 같습니다. 이문동에 사시던 큰 무선 김금화 님을 뵈려 간 적이 있었습니다. 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을 만난 것은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댁에 도착해서 계신 방에 안내를 받아 문을 옆으로 밀고 방에 들어서니 방 건너편 쪽 보료 위에 있는 큰 탁자 뒤에 앉아 계셨습니다. 문을 닫고 인사를 드리려고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선님께서 쩡쩡 울리는 큰소리로, “아, 무당이 돼야 할 사람이 딴짓을 하니 문제가 생기는 거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인사도 못한 채로 서 있으면서 그 순간 나의 의식은 어떤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앉아서 40분쯤 이야기를 했는데 기억나는 것은 외국인이 굿을 청했을 때 제가 통역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독일 분들이 굿을 청하셔서 강화도에 있는 금화당에 친구와 함께 통역을 하러 갔지요. 보통 굿에 가면 보는 것에 주의가 다 가 있어서 많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통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귀를 기울여 잘 들어야 했지요. 현란한 의상으로 김금화 님께서 춤을 추기도 하고 어떤 때는 노래로, 어떤 째는 야단을 치는 투로, 어떤 때는 얼리는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중간에 제가 깜짝 놀란 순간이 있었습니다. 공감을 하시는구나!!! 꾸미는 것 하나도 없이 적나라한 우리말로 하시는 공감이었습니다. “그래... 가슴이 오그라들어서...”라는 말로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주셨고 듣는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정신과나 상담이 생기기 전에 오래 동안 그 순수한 우리말 공감으로 우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돌보신 것이 그분들이라는 것이 보였고 우리 안에는 그런 공감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안 깊은 곳에서 감사가 올라왔습니다.

 

“아, 무당이 돼야 할 사람이...” 이런 인사말을 들으신 분들이 또 간간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르지만 어딘가에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캐서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