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랑하는 법

2022. 6. 2. 11:49기린 Life

5월, 강남의 한 도서관에서 <가족_사랑하는 법>을 가지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줌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한 달 동안 뜨문뜨문 떠올리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편안했던 마음이 강의 전날, 많이 긴장됐다.

 

몇 명이 듣는지 궁금해서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신청 현황이 나와있다. 공부 몰입 법, 스마트스토어를 차리는 법, 천연 샴푸바를 만들기 등 여러 강의 사이, <가족_사랑하는 법> 작가와의 만남이 있다. 다른 강의들은 신청자를 넘어 대기자가 가득이다. 근데 내 강의는 30명 신청 정원에 11명. 신경이 쓰인다.

 

그러고보니 이번 강의를 잘해서 앞으로 여러 곳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 긴장이 됐다. 책에 쓴 이야기를 중심으로 어린이들과 나눌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찬찬히 살펴보니 이 강의가 대상이 좀 애매하고,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잘 해야 해, 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보니 강의에서 채우고 싶은 부분도 어려운 부분도 보인다. 11명, 다른 강의들과 비교하면 적은 숫자지만 내가 짠 틀에서는 적당한 숫자다. 줌이지만, 일방적으로 쭉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참가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겠다고 생각했다. 줌으로 진행한 중재연습모임, 그림책 강의, 기린마을모임 등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나에게 쌓인 줌 경험이 든든하다.

 

강의에 들어온 어린이들과 사서 실습생들까지 함께 모여 자기 소개를 하고, 우리 가족 소개를 하고, 잘 싸우는 법도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지막에는 ‘서로에게 마법의 선물 주기’ 를 한다.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줌에서도 따뜻함은 전달됐다. 함께한 사람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강의를 한 날 기린마을 전체모임이 줌에서 열렸다. 근황을 이야기한 시간, 오늘 수업한 이야기를 나눴다. 2018년 책이 나오고 나서 민망함, 부끄러움이 더해져 막상 애정을 갖고 보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리고 내가 나를 인정하고 수용해주고 싶었던 마음을 나눴다. 나누고 보니, 이번 강의가 준 선물은 바로 전과 후 내 마음을 다른 사람과 나눈 시간이었다. 낯설고 새로운 걸 시도하고 있구나 하는 걸 발견했다. 그날 적은 일기에는 ‘오늘 한 이 경험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궁금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책 소개 원고 요청이 들어왔다.

 

 

2013년, 쌍둥이 남매 호밀이, 호두가 세상에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오래 기다린 임신, 출산이었고,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다. 그러나 실전은 달랐다.

 

남한테 부탁 잘 못하고, 아쉬운 소리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이었던 나는, 쌍둥이를 만났고, 절실하게 누군가와 함께 육아를 해야 했다. 이따금 인생에서 걸림돌이나 장애물이라 여겼던 것들이 가져다주는 선물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육아를 함께하자고 부탁하면서 내 삶에 초대한 인연들이 바로 그 선물이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이들을 내 삶에 자꾸 초대하게 만든, 아이들 그리고 자주 초대되는 가족들을 떠올리며 ‘가족이란 뭘까’ 고민을 시작했다. 30여 년을 남남으로 살아오다가 만나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일, 그리고 그 가족이 다양한 형태로 무한 변신하면서 이어지는 일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내 안에 생긴 의문들을 풀어나가기 위해 블로그에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은 <가족_사랑하는 법>을 쓸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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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오고 1년여가 지나 출판사로 독자 편지가 도착했다.

스물일곱 살 독자가 우연히 서점에서 제목에 끌려 책을 샀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가정폭력 문제로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와 동생들과 살았단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면서 유학을 다녀왔고,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 각자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어색하기도 하고 ‘과연 가족이라는 건 뭘까’ 하는 고민이 들 때 이 책을 만났다고 한다.

 

가족끼리는 당연히 서로 친하다고, 혹은 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관계는 잘 없다. 다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 때 맞춰야 하는 것들,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또 아이들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노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아이들은 이따금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의 순간, 많은 것을 내 탓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드러내놓고 하고 싶었다.

 

어린이 코너에 꽂혀 있었을 이 책을 성인 여성이 고른 걸 보면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만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 책이 만날 독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가족’을 주제로 한 책을 쓰면서, ‘혈연 중심의 가족’ 을 다루는 책이 아니길 바랐다. 내가 부부와 두 아이로 구성된 ‘전형적인 가족’ 안에 살고 있어서 혹시 놓치는 게 있을까 봐 걱정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조금만 눈을 돌리니 다양한 형태의 가족은 내 주변에 많다.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고 2년 뒤 시골로 삶터를 옮겼다. 서울을 떠나면서 조금 멀어진 것은 혈연 중심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이다. 대신 시골에서 얻은 것은 마을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이웃들이 많아 서로 도울 수 있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보다 더 자주 이웃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만난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전형적인 가족’이 아닌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전형적인 가족’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이 나오고 벌써 4년이 지났다. 그사이 비폭력대화가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따금 책을 펼칠 때면 부족한 부분, 잘못된 부분을 만날까 걱정되기도 했다.

강의 중에 3학년 친구가 질문을 한다. “아빠가 둘인 집도 있잖아요. 어떻게 그래요?”

그러고보니 책에서 글로 다루진 못했지만, 그림이 담고 있는 부분이 있고,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완벽하지 않은 책이라도 괜찮구나 받아들이게 된다.

이따금 어디 가서 내가 쓴 책 제목을 말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도 모르게 “제가 사랑하는 법을 알아서 글을 쓴 게 아니라요, 고민하고 있다고, 질문하고 있다고, 그렇게 살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예요.”라고 중언부언 덧붙인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질문하면서, 실수하면서, 함께 만들어 가는 진행형의 한순간이 <가족_사랑하는 법>에 담겨있다.

 

 

선혜연

 

대학을 졸업하고, 어린이 잡지 창간팀에 들어갔다. 막내 편집자로 시작해 편집장을 지내기까지 수십 권의 잡지를 만드는 동안, 어린이를 더 알게 되고 좋아하게 됐다. 지금은 시골에 내려와 살면서 마을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고, 텃밭 농사도 짓고 있다. 쌍둥이 남매 호밀이 호두를 만나면서 가족이란 뭘까 고민을 시작했다. <가족 사랑하는 법>은 글을 쓴 첫 책이다. 앞으로도 어린이들과 함께 읽을 글을 쓰고 싶다.

시골 마을에서 NVC 를 만나 공부하고, 연습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다. NVC로 아이들과 함께 평화와 성평등을 이야기하는 마을교사로 지내고 있다.